천헌옥 목사
천헌옥 목사

전편에서 목욕탕 이야기를 했으니 한 번 더 목욕탕 이야기를 하고 가야겠다. 며칠 뒤 목욕탕에 들어서면서 깜짝 놀라는 일이 발생했다. 말로만 듣던 그 혼탕이 언제부터 시행되었을까 하고 의심할 정도로 한 여인이 머리를 숙인 채 처렁처렁한 긴 머리를 감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잘못 들어왔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남자들뿐이라 남탕이 맞기는 맞았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런 표정도 없어 보였다. 나만 이상해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여자가 아니라 머리털만 긴 남자였다. 나는 긴 머리를 감는 그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불편할까? 머리를 감는데도 저렇게 힘든 고생(?)을 하는데 그 긴 머리를 간수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것인가?

물론 자기만족이나 또한 필요에 의하여 그러기는 하겠지만 참으로 취향도 여러 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긴 머리를 간수하기에는 많은 수고와 귀찮음이 있기에 많은 여성이 머리를 짧게 단장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파마를 하면서 머리 손질은 더욱 간편하여졌으리라.

그런데 그 힘든 긴 머리를 남자가 하고 있다니 나로서는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머리를 감고 그 긴 머리를 뒤로 젖혀 끈으로 묶고 황토방으로 가는 뒷모습은 그 옛날 긴 머리 곱게 묶은 처녀가 영락없었다. 그렇게 그에게 눈길이 멈춰 있을 때 내 시선을 빼앗아 가는 일이 또 하나 생겨났다.

내 옆자리에 탕에서 금방 나온 한 젊은이가 앉았는데 그는 목욕탕 의자를 하나 가져다가 앉을 부분을 비누로 칠해서 샤워기로 열심히 물을 뿌려 닦는 것이었다. 정말 어떤 귀빈이 앉을 자리기에 저럴까 했는데 그 자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그의 아이였다. 이제 한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머리칼이 치렁한 여아였었다.

내 시선을 붙잡아 놓은 것은 그 아이가 팬티를 벗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의자는 신경이 쓰였든지 깨끗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아빠와 함께 욕탕에 들어갔다가 이제 막 나온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팬티를 입은 채로 욕탕에 들어갔다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 아이는 아빠가 그의 몸을 다 닦아 줄 때까지 팬티를 입고 있었고 팬티를 입은 채로 아빠를 따라 온탕 냉탕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로서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풍경이었다. 그 아이가 목욕탕에 올 때 새 팬티를 입고 왔을까? 입고 있던 팬티가 아니었을까? 타월도 욕탕에 가지고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터에 설혹 새 팬티를 입고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다른 손님들에게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세상이 많이 변하고 바뀌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현장이었다. 옛날에는 주로 엄마들이 남자아이를 데리고 여탕에 갔었다. 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아이가 싫다고 하는데도 그 아이를 여탕에 데리고 들어가서 때를 씻겨야만 직성이 풀리던 엄마들이었다. 아니 어떤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도 엄마가 여탕에 데리고 가서 그만 벌거벗은 채로 여자 짝꿍을 만나버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다 큰 여아들도 아빠의 손에 맡겨 남탕에 보내는 시절이 되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왜 팬티를 벗지 않았을까? 많은 여아들이 아빠를 따라 남탕에 와도 아직은 팬티를 벗지 않은 아이는 보지 못하였는데 유독 이 아이는 끝까지 벗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특별히 다른 이유는 없어 보였다. 남에게 보이지 못할 만큼의 흉터가 있었을까? 그러나 그 아이에게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만약 질병이 있었다면 아예 욕탕에 데리고 오지를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그 아이가 자기 자신에 대한 수치를 느껴서가 아니었을까? 틀림없이 아이는 남자와 여자에 대해 구별을 하고 있었고 남자와는 다르다는 사실이 아이로 하여금 팬티를 내리지 못 하게 했던 진정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나는 스스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 보았다. 과연 아들이나 딸을 바꾸어 욕탕에 데리고 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 만약 허용한다면 몇 살까지가 적정선일까? 아니면 그냥 남자 여자 구분 없이 막 데리고 다녀서 일본이나 서구에서처럼 혼탕의 문화로 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 마치 화장실을 남녀 구분 없이 사용하는 미국의 All Gender Restroom처럼 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정리해 보았다. 남아나 여아를 바꾸어 데리고 다닐 수는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알고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그래서 팬티를 벗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면 중단하여야 하는 것이 옳은 태도가 아닐까?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다.

사실 어린 여아가 남탕에서 자기의 성이 구별되는 것을 인지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다고 여기는 현상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오히려 그것이 정상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억지 주장으로 남녀를 구별하여 대하는 것이 차별이라고 하면서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에 우리는 반론 없이 동의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개인적인 생각을 물어보고 싶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과연 성으로 오는 인격적인 혹은 권리의 차별은 없애야 하겠지만 구별까지 모호하게 만들어서 남자와 여자는 똑같은 사람이기에 같은 사람끼리 사랑할 수 있다는 동성연애, 동성결혼까지 허용하고 싶은지 말이다.

인문학적으로는 가능하다 할 것이다. 남자도 여자도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의 논리로 보면 틀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는 만고불변의 하나님 말씀에 금지하여 놓으신 일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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