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희 / 행복한교회 담임목사, 총신대학교(B.A.)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M.div)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Th.D.)
최광희 / 행복한교회 담임목사, 총신대학교(B.A.)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M.div)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Th.D.)

최근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는 글자 한 자()의 의미가 큰 쟁점이 되고 있는데 그 사연은 이러하다. 2022년 봄에 국회는 일명 검수완박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이라고 불리는 검찰청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개정안은 검찰의 직접수사권 범위를 기존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에서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대폭 축소하는 것이 골자이다. 검찰청법 개정안, 일명 검수완박법안은 법안이 상정되고 논의되는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국회를 통과하고 국무회의에서 법률공포안을 의결함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이 문제가 다시 주목받게 된 이유는 법률에 있는 한 글자에 관한 해석이 그 의미를 극과 극의 차이를 만들어 내었기 때문이다. 검수완박법의 애초 문구에서는 검찰의 수사 범위를 기존 6대 범죄에서 2대 범죄로 한정하는 의미로 부패범죄, 경제범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되어 있었는데 민주당이 제출한 최종안에는 부패범죄, 경제범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수정되었고 그대로 국회를 통과되었다고 한다.

이 짧은 문구 속에 들어 있는 글자 중에 으로 바뀐 것은 유심히 보지 않으면 놓치고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작은 문제로 보인다. 하지만 내용을 따져보면 이는 정반대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어떤 단어를 두 개 나열한 후에 을 붙이는 경우 그 두 단어 안으로 한정한다는 의미이지만 을 붙이면 그 두 단어 외에 다른 단어를 계속해서 붙일 수 있도록 확장한다는 의미가 된다.

현 정부의 법무부장관은 이라는 글자의 의미를 근거로 대통령령을 개정해서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범죄의 범위를 필요에 따라 확장하려고 하는데 이에 대하여 야당은 법안의 취지를 무력화시킨다면서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문서와 문구가 가지는 힘은 절대적이어서 여러 사람의 주장과 증언을 무력화시키는 일은 사회 여러 곳에서 목도(目睹)한다. 일례로 어떤 분은 몇 대째 농사짓던 농토를 누군가가 면사무소의 서류를 조작해 놓는 바람에 빼앗기고 말았노라고 탄식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검찰청법 개정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으로 바꾼 사람은 누구이며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한 실수일까? 상대 당의 반발을 달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일단은 상대 당이 받아들이기 쉽도록 법을 만들고 후에 대통령령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일반 서민의 처지에서 다 알 수 없는 부분이다. 하여간 애써 만든 검수완박법의 칼날은 많이 무디어져 버린 모양새이다.

 

정치권의 이런 논란을 접할 때 설교학자로서 성경 해석에 있어서 글자 한 자의 중요성에 주목하게 된다. 특히 글을 쓸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함을 일깨워준다. 우리나라 말에는 이나 외에도 , , , 라는 주격 조사(助詞)는 주어를 제한하거나 확장하는 등 큰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 외에도 접속사 하나의 차이가 앞 문맥과 뒤 문맥의 원인과 결과를 뒤바꾸어버리기도 한다. 성경 기록 언어인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경우 시제(時制)가 매우 민감한 의미 차이를 만들기도 한다. 그 외에도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해석학적 법칙들이 있다.

설교자들은 모두 본문에 대하여는 해석자이며 설교문에 대하여는 저자이다. 그러므로 저자이며 해석자인 설교자는 본문 해석과 설교문 작성 및 전달에서 한 글자의 차이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하나님과 성경 저자가 말하려는 본래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종종 어떤 설교자의 해석과 전달에서는 종종 그런 세심함이 결여된 현상을 발견한다.

즉석에서 연설하거나 전달할 때는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의도와는 다른 단어를 내뱉는 슬픈 일이 발생한다. 하지만 글을 쓸 때는 여러 번 다시 읽으면서 의미를 파괴하는 잘못된 표현은 없는지 점검할 수 있다. 이렇게 글 쓰는 연습을 많이 하다 보면 말을 할 때 실수할 가능성도 줄어드는 것을 경험한다. 설교자에게는 말을 잘하는 것도 좋지만 잘못된 말과 이상한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또한 중요하다. ‘의 차이로 논쟁거리가 되는 정치권을 보면서 설교자의 사명이 무거움을 재삼 돌아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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