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태 목사(뉴질랜드 선교센터 이사장)
이은태 목사(뉴질랜드 선교센터 이사장)

뉴질랜드에서 신학 공부를 하는 동안이 나에게는 일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첫째는 경제적인 어려움이고, 둘째는 영어로 학업을 따라가는 것이고, 셋째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었다.1달러 쓰는 것도 두려워서 최대한 아끼고 또 아끼며 살았다. 학교에 갈 때도 기름값을 아끼려고 4명이 차 한 대로 카풀을 했다.

그러나 신학생들 중에는 우리보다 더 어려운 학생들도 있었다. 남태평양 국가인 피지나 솔로몬 등 빈민 국가에서 유학을 온 학생들이다. 이들은 항상 배고파했다. 그래서 나도 어려웠지만 어려운 중에도 한 번씩 집에 데려와 배를 채워 주곤 했다.

그런데 어느 때인가 한국 학생 한 명이 입학했다.30대 초반으로 아주 어려 보였다. 연민이 갈 정도로 바싹 말라 있었다. 더군다나 가진 돈이 없어 교회 예배당에서 먹고 자곤 했다. 시간이 좀 흘러 왜 이곳에 신학 공부를 하러 왔는지 물어보았다. 오랜 침묵 끝에 어렵게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참 파란만장한 인생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무당이었고, 평생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다. 머리는 좋아서 서울대학교에 다녔다. 사회에서 이런저런 사업을 하다 사기에 연루되어 몇 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 감옥에 있는 동안 복음을 듣고 신학을 하기로 결심하고 뉴질랜드까지 왔다고 했다. 너무 안타까워서 잘 챙겨 주었다. 나를 늘 형님이라고 불렀다.

하루는 본인이 가장 아끼는 것인데 나에게 선물로 주고 싶다고 가져왔다. 시편 23장을 그린 커다란 유화였다. 보기에도 보통 그림은 아닌 것 같았다. 그가 그림에 대한 사연을 들려주었다. 감옥에서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한 화가를 만났다고 했다. 무슨 이유인지 이 화가도 수감 생활을 했는데, 함께 신앙을 가지게 되고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 친구에게 선물로 이 그림을 그려 주었다고 했다. 감옥에서 재료가 없어 박스를 뜯어 붙여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작가를 절대 밝히지 않도록 신신당부를 했다고 했다.

평생 본인이 간직할 것이라고 다짐을 하고 이곳 뉴질랜드까지 그림을 가져왔는데 내가 베풀어 준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이 귀한 그림을 나에게 꼭 주고 싶다고 했다. 지금도 이 그림은 내 사무실에 걸려 있다.

이은태 목사 사무실에 걸려있는 그림.
이은태 목사 사무실에 걸려있는 그림.

그는 힘들게 신학 공부를 하는 중에 어느 교회에서 한 자매를 만났다. 그리고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뉴질랜드는 돈이 없어도 누구나 쉽게 결혼식을 하고 가정을 이룰 수 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친구가 갑자기 날을 잡고 결혼을 하겠다고 하니, 무엇이라도 도와줘야 할 것 같아서 물어보았다. 결혼반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난감했다. 나도 학생으로 1달러도 함부로 쓰지 못하는 상황이니 결혼반지는 너무나 버거운 부담이었다.

그러나 결혼반지도 없이 어떻게 결혼을 할 수 있겠나? 그래서 최소의 비용으로 결혼반지를 장만해 주었다.500달러가 들었다. 일반인들에게는 하찮은 예물로 보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전 재산과 같은 귀한 선물이었다. 이 반지를 끼고 둘은 결혼을 했다. 일평생 믿음 안에서 행복하기를 간절히 빌어 주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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