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의 시

학원복음화협의회(이하 학복협)가 서울제일교회(김동춘목사)에 입주했다. 김동춘목사가 학신(SFC)대표를 역임했고, 학신도 학복협에 가입되어 있어 김목사가 대표간사를 사임하고 서울제일교회에 부임한 후 2020년 학복협이 들어왔다. 당시 2020년에 학복협에서 독서운동을 했다. 선교단체 대표들 중심으로 구성된 학복협도 이때 독서모임이 매주 한번 가지게 되었다. 독서운동의 일환으로 대표들이 독서모임을 시작한 것이다.

학복협 중심 독서 모임 현장
학복협 중심 독서 모임 현장

처음에는 학복협의 단체 대표들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다가 김동춘목사와 같은 목회자들도 참여하게 되었다. 22년부터 교회 목회자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지금은 목회자가 반이다. 김현섭(하늘시민), 서연우(통합 보내심을 받은) 허신욱(합동영동) 등이다. 학복협 대표들은 상임대표 장근성(IVF출신 통합 나누는), 김성희목사(esf 대표), 김태구목사(cmI대표), 도기현목사(dfc대표), 박해근목사(DSM대표), 최욥목사(선교한국대표), 등이다. 기타 4명 정도 더 있다.

지난 3년 동안 열권 정도 읽었다. 두 달에 한 권 정도 읽은 셈이다. 첫 책은 본회퍼의 성도의 공동생활부터 읽기 시작했다. 읽은 책들은 다음과 같다. 북간도 기독교운동사(김동춘), 기독교가 직면한 12가지 질문(레베카 맥클리플린),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서(피터 워커), 탕부 하나님(팀 켈러), 시대가 묻고 성경이 답하다(톰 라이트), 거꾸로 읽는 세계사(유시민), 연해주의 기독교 형성사(김동춘), 한국 초대교회사 (옥성득), 내몸을 사랑하라(낸시 피어스) 칭의와 하나님의 나라 (김세윤), 2030 트렌트(목회연구소), 현재는 기독교가 직면한 12가지 질문을 읽고 있다.

모임은 매주 목요일 11시부터 12:30분까지 진행한다. 다양한 배경과 출신들이 모였기에 서로 치열하게 토론하면서도 균형을 잡는다. 읽은 책은 기독교와 관련한 부분, 역사, 인문학책들을 돌아가면서 읽고 나눈다.

성경은 노예제를 옹호하지 않는가?

기자가 참여한 주에 읽고 논의할 부분은 노예제에 관한 것이다. 먼저 노예제가 로마 시대뿐 아니라 근대사까지 영향을 미쳤음을 역사적으로 정리한다. 노예제가 1800년 중반까지 영국의 주 산업이고, 미국의 남북전쟁도 노예제 때문에 생겼다. 150년 동안 큰 변화를 겪은 부분이다. 서론적 환기를 한 다음 서로 돌아가면서 읽은 부분 중에서 대화하고 싶은 부분들을 돌아가면서 나누면서 대화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A 목사

책의 한 부분(261)을 언급하면서 율법이 주어졌을 때 자신들이 노예였음을 기억하게 하였다는 말씀을 지적한다. 죄인임을 기억하지 않는 순간 자기기만에 빠진다. 기억하라.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따뜻하게 전하려고 한다. 그런데 죄를 다룰 때도 그렇게 따뜻하게만 다룰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 이번 주 죄를 다루는 설교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고민을 나눈다.

그리고 노예를 구별해야 한다. 강제성이 있는가를 구별한다. 전쟁이나 아프리카 등에서 폭력적 방식으로 이루어진 노예가 있는 반면, 생활이 안 돼서 주인의 집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과 구별한다. 여기서는 강제성 있는 노예를 말한다. 성경에서도 자의로 종이 되는 자가 있다.

B목사

다른 이가 질문을 한다. 종을 아는가? 대학 4학년때 IVF 동료들과 양구에서 탈출하신 분을 춘천에서 만났다. 자취방에 모시고 가서 하룻밤을 지내게 했고, 친척집으로 갔다. 주인집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 탈출해서 나왔다. 이런 강제적인 노예와 같은 상태가 최근에도 염전 노예들의 경우이다. 이주민 노동자들에 대해서 악덕 고용주가 여권도 빼앗고 하는 행위와 비슷하다. 그래서 노예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발적 필요로 종이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C목사

역시 한 부분(266)을 언급하면서 성경이 종과 노예 됨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고 말한다. 기독교인은 종에 대해 남다른 관심과 대우를 한다. 시드기야 시대에 노예해방을 하기도 했다.

또한 노예제를 반대하는 교회의 역사가 있다. 3,7,9세기에 있었다. 그리고 근대에 윌버포스 등이 반대했다. 그리고 왜 교회가 반대했을까? 기독교가 노예제를 옹호하기도 했는데, 이는 기독교 세계관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노예제를 보고 받았다.

조나단 에드워드의 경우 개인은 노예에 대해 관대했지만, 사회적으로 활동하지 않았다. 바울도 마찬가지다. 제도적으로 개혁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존 뉴턴은 노예상으로 있다가 회심하고 나서 노예를 해방하고, 윌버포스에게 영향을 받았다. 죄를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2장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마귀와 사탄. 구조나 가치관적이다. 죄는 영적이나 구조적이고 또한 개인적이다.

다른 이가 어떤 부분(274쪽 밑에서 5번째 줄)을 언급한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성경을 남용하여 정당화하는 자들이 많았다. 인종을 구분해서 당연시했다. 성경의 오용 부분이 있다. 여성 안수도 그렇게 불 수 있지 않은가? 성경에 있는가? 문화적 맥락이다. 차별적 구조를 만드는 것과 권위의 정당성을 추구하는 것과 다르다. 차별과 차이를 구별해야 한다.

D 목사

노예제도를 끌고 가는 일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지만 주로 백인 기독인들이 중심으로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노예제를 운용했다. 그런데 흑인 노예들이 더 종교적이고 비중이 많은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에 대해 정당화했지만 잘못된 것이라고 다른 이가 주장한다. 그런데도 핍박받는 자들이 더 신앙에 섰다. 이런 모순이 어떤 영향이 있었을까?

흑인 중에서 말콤엑스는 무슬림으로 급진 운동을 했고 젊은이들이 따라갔다. 소수의 사람이 이들의 편을 들어주었다.

흑인 영가 등의 보급. 노예들이 모여서 종의 역할을 더 강조한다. 남부 지역이 신앙으로 감당하려고 했다.

빌레몬서 오네시모를 해방하지 않으면 수치를 당한다. 주인을 공경하라. 점진적 변화가 있다. 노예제도가 합당치 않다고 가르쳐 왔다.

학복협 중심 독서 모임 현장
학복협 중심 독서 모임 현장

이런 구조적인 변화를 위한 노력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구조적으로 데모해서 바꾸어 가야 하는가? 데모해서 하나님 영광이 드러나지 못할 때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바울은 이방 교회에서 영향이 컸다. 전쟁해서 전리품을 얻는 노예제도에 대해 저항했는가? 사회의 악을 해결하는 방식이 무엇인가?

빌레몬의 예가 다가오지 않는다. 노예의 보편성이 아니라 특수성을 표현한다. 바울이 노예제를 잘못했다고 구체적으로 표명했는가? 인물에 대해 너무 기대를 많이 하는가? 과거를 전부 보는 입장을 투영하는가? 시대에 역할을 하는가?

 

구조의 현실을 어떻게 대하는가? 동성애의 경우 다양하게 활동한다.

노예제를 어떻게 대하는가? 그러면 안 되지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모든 것이 과정 속에 있다. 구조적 악을 없애는 것이 무엇인가? 접근하는 방식이 다양하다. 성명서를 발표하지 않는다. 한국의 계급제가 폐지된 것은 만민 공동회가 고종에게 상소를 해서 폐지했다. 제도 개혁은 정치가들이 하는 역할인가?

바울과 윌버포스, 노예제가 문화이고 관습인 상황에서 살았다. 바울은 선교사의 사명이 있다. 윌버포스는 노예제를 반대하기에 위험이 많았다. 자기의 미션으로 영국의 개혁과 노예제 폐지를 삼았다. 오네시모를 일반화하면 모든 종을 형제로 받으라고 적용한다. 오네시모의 경우가 일반화 될 수 없는가? 바울이 가르친 것은 무엇인가? 노예제도를 놓고 운동을 했는가? 바울을 참조할 수 있지만 최종의 권위로 받을 수 없다. 노예를 인정하는 해석과 친구로 삼으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노예제도의 참조점이 되지는 못한다.

사도 바울의 생각속에 노예제도가 틀렸다라고 생각했다. 그렇수 있지만 그래서는 안되었다. 구조적으로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클램팜 당이 있다. 그 사람의 밋션(사명)에 따라서 행동한다. 우리가 모든 일을 다할 수 없다.

 

현실적인 적용으로 최근 동성애에 대한 관점을 논의한다.

동성애에 대해서는 왜 제도적인 저항을 하지 않는가? 없애려고 하지 않는가? 이에 대해 노예는 사회적 약자라고 주장한다. 동성애에 대한 최근의 논의들은 정치적이고 과도한 측면이 있다. 진리의 형평성과 청년 선교적 관점에서 동성애를 논의하기 어려운 형편이 있다. 그러나 과정속에 복음이 들어가야만 한다.

카톨릭은 상부에게 복음 전해서 전체를 변화시킨다. 그러나 이런 정책의 부정적인 측면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주인이 예배 나오라고 명령하고 노예들이 나와서 예배 드린다. 이게 옳은가?

 

변증의 필요성을 논의하다.

어떤 참석자가 다른 부분을 언급하면서(258) 논의를 이어간다. 노예들이 기독교에 마음이 끌렸을까? 피해를 많이 받은 흑인들이 왜 기독교에 왔는가? 기독교의 본질적인 메시지는 노예제를 반대한다. 로마의 폭압적 시대이다. 바울은 비주류이다. 파문 정도이다.

선교지에서 복음 전하고 믿는 사람들이 생기고, 세력이 생기면 갈등과 문화 변혁이 생긴다. 그러면 잇슈가 나온다. 복음 메시지에는 노예제도의 내용이 없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노예해방에 대해서 과격해진다. 기독교가 기독교 국가를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복음을 전하지만 사회 문제를 전하는 입장은 달라진다. 윌버포스에서 달라진다.

불신자들이 역사적인 기독교가 오류를 지적할 때, 인정을 한다. 노예들이 기독교에 반감을 가지지 않는 이유는 기독교가 노예제를 옹호하는 것같은 메시지도 있지만 그러나 노예제를 옹호하지 않은 이들로 인해서 위로를 받았다.

신학을 형성할 때 성경, 전통, 문화, 역사, 경험 등이 기반이나 재료가 된다. 성경만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이 한계가 있다. 교부전통, 문화 등이 필요하다. 노예제가 문제인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본다. 구조가 문제이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일로 논의가 옮겨간다. 갑질의 문제이다. 교사의 죽음이 노예제와 관련해서 적용하는 시사점이 있다. 갑질의 경험을 딸의 직장 생활로 설명을 하기도 한다. 딸이 30대 말단이다. 부장, 차장, 팀장이 있다. 차장이 갈구면 당할 수밖에 없다. 힘든다. 자기가 할 일을 딸에게 시킨다. 차장의 지위로 갑질을 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계급 의식이 있다. 돈이 중심이 되어.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상호 존중이 일어나야 한다. 역할의 차이가 있지만 서로 존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 복음의 총체적 이해가 있어야 한다. 문화의 영역에서 바닥을 치는 삶이 필요하다. 인간의 죄성이 있다. 우리 사회가 다문화를 용납하는가? 더불어 살고 있는가? 장애인 시위와 관련해서 인내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하는 저항이다.(끝)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