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표현의 자유 침해 지나쳐"

7대2 위헌 결정…법 개정 2년 9개월 만에 전단살포 금지 조항 효력 상실

북한의 도발로 인한 책임을 전단 등 살포 행위자에게 전가하는 것

접경지역에서의 대북전단 살포를 규제하는 '대북전단 금지법'이 헌법재판소(헌재)에서 29개월 만에 위헌 결정을 받았다. 헌재는 926일 대북전단 금지법으로 불리는 남북관계발전법 2413호 등에 대해 재판관 72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교계는 대체로 이번 위헌 결정을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헌재, '대북전단 금지법' 헌법소원 선고(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6일 오후 헌법소원 사건 선고가 열리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의 재판관석에 앉아 있다.이날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 2조·7조 등에 대한 헌법소원·위헌법률심판과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헌법소원 심판 등의 선고를 내린다. 2023.9.26
헌재, '대북전단 금지법' 헌법소원 선고(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6일 오후 헌법소원 사건 선고가 열리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의 재판관석에 앉아 있다.이날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 2조·7조 등에 대한 헌법소원·위헌법률심판과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헌법소원 심판 등의 선고를 내린다. 2023.9.26

남북관계발전법 241항은 북한을 향해 특정한 행위를 함으로써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키는 행위를 금지한다. 이를 어기면 최대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이중 헌재 심판대에 오른 것은 3호가 정한 '전단 등 살포' 행위를 금지한 부분이다.

재판관 7명은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한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연합뉴스의 보도에 의하면 유남석·이미선·정정미 재판관은 "북한의 특성상 북한을 자극해 도발을 일으킬 수 있을 만한 표현의 내용은 상당히 포괄적"이라며 "심판 대상 조항에 의해 제한되는 표현 내용이 광범위하고 그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지나치게 제한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심판 대상 조항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 보장은 중대한 공익에 해당하고 국가는 남북 간 평화통일을 지향할 책무가 있으나, 표현 행위자가 받게 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약은 그 표현의 의미와 역할의 중요성에 비해 매우 크다"고 밝혔다.

재판관들은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신체의 안전 보장'이라는 입법 목적은 전단 살포를 일률적으로 금지하지 않더라도 경찰관이 경우에 따라 경고·제지하거나 사전 신고 및 금지 통고 제도 등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대안 수단이 있는데도 표현의 자유를 일괄 금지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취지다.

이은애·이종석·이영진·김형두 재판관은 나아가 "심판 대상 조항은 북한의 도발로 인한 책임을 전단 등 살포 행위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며 "비난 가능성이 없는 자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는 것은 북한인데 위해 유발에 대한 책임을 전단 살포자에게 묻는 것은 '책임 없이는 형벌도 없다'는 헌법 원칙에 위배된다고 보았다.

헌재의 위헌 결정에 따라 대북 전단 살포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은 즉시 효력을 잃는다.

2020년 6월 25일, 한국 VOM CEO 에릭 폴리 목사가 성경이 담긴 풍선을 북한에 띄우고 있다.사진출처: NK News 
2020년 6월 25일, 한국 VOM CEO 에릭 폴리 목사가 성경이 담긴 풍선을 북한에 띄우고 있다.사진출처: NK News 

대북전단 금지법 위헌 결정에 교계는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특히 풍선으로 성경 보내기 운동을 지속해서 하고 있는 순교자의소리(대표 에릭 폴리 목사)927일 성명서를 내고 지금까지 늘 해왔던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전했다.

한국 순교자의 소리는 대북전단 금지법이 시행되기 전에도 현지 사법당국 및 지역사회와 상호 존중하는 훌륭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안전하고 조용하며 정확하고 합법적이며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풍선을 통해 대북 성경 보내기를 진행해왔습니다. 오늘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우리가 해왔던 방식이 가장 좋은 접근 방식이었음을 확인해줍니다. 한국 순교자의소리와 함께하는 이들의 안전과 보안을 위해, 풍선과 관련된 향후 활동이나 계획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우리는 지금까지 늘 해왔던 일을 계속할 것이라는 사실만 말씀드립니다."

한편, 남북 접경지역에서 각종 선전물을 풍선에 달아 띄워 보내는 대북 전단은 뜨거운 이슈였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2004년 고위군사회담 합의서, 2018년 판문점선언에 이르기까지 남북은 상호 비방과 전단 살포 중단을 여러 차례 약속해왔다.

문재인 정부와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남북 긴장 완화 분위기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기 위해 야권의 반대를 뚫고 202012월 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큰샘·물망초 등 북한인권단체 27곳과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해 위헌이라며 개정안이 공포된 같은해 1229일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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