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Wright) 박사, “미혹과 허구적 안정 문화 속의 하나님 말씀: 예레미야 7”

존 스토트((John R. W. Stott, 1921~2011)의 후계자로 알려진 선교학자이며 구약학자인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Wright) 박사의 내한 강연이 지난 117~10일 여주에 있는 마임비전빌리지에서 열렸다.

"소망의 복음: 환경재해와 인적재난에 대한 선교적 대응"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KGMLF 포럼이 열린 마임비전빌리지 현장. 2023.11.9./ 사진@김대진
"소망의 복음: 환경재해와 인적재난에 대한 선교적 대응"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KGMLF 포럼이 열린 마임비전빌리지 현장. 2023.11.9./ 사진@김대진

"소망의 복음: 환경재해와 인적재난에 대한 선교적 대응"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KGMLF(Korean Global Mission Leaders Forum/이사장: 조나단 봉크 박사, 대표: 김진봉 박사) 포럼 셋째 날(9) 아침(오전 9) 라이트 박사의 2번째 발제가 시작되었다.

발제하는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Wright) 박사 2023.11.9./ 사진@김대진
발제하는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Wright) 박사 2023.11.9./ 사진@김대진

다음은 라이트 박사의 미혹과 허구적 안정 문화 속의 하나님 말씀: 예레미야 7(God’s Word in a Culture of Delusion and False Security: Jeremiah 7” 발제문 요약.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여호와의 성전 뜰에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여호와의 성전에 와서 예배하는 자에게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게 한 모든 말을 전하되 한 마디도 감하지 말라.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돌아오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예레미야 26:2-3).

예레미야를 통해 전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당시 유대 백성들은 완전히 잘못된 안일함에 빠져 진리의 말씀을 기괴한 거짓말로 바꾸었다.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그 당시 국가 전체의 정책 방향이 이러한 자기기만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 편에 계시기 때문에 자신의 거짓된 삶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을 것이고, 바벨론에 대항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그들은 유다 민족주의 깃발을 흔들며, 다윗과 솔로몬 시대처럼 유다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바벨론이 앗수르처럼 북쪽에서 내려올 수도 있지만, 그대로 놔두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보호하실 것이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증명할 성경 말씀이 이사야서에 기록되어 있기에 주님이 주시는 평화를 외치며 걱정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잘못된 안일함에 기초하여 선지자 예레미야가 촉구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한 그들의 행동과 선택은 결국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를 자기 기만적으로 왜곡시키는 거짓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금 이 시대에 우리는 기독교인 개인 한 사람 한 사람, 교회들 그리고 기독교 전체의 전통과 문화를 통해서 기독교인들이 만들어낸 진실을 거짓으로 바꾸어 보려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에게 헛된 안일함, 헛된 소망, 헛된 위로를 주는 것들이다. 인간의 번영과 믿음에 대한 보상, 그에 대한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을 기반으로 한 번영 신학은 왜곡된 속임수로 우리를 잔혹하게 속인다.

이번 포럼의 주요 쟁점인 환경위기와 관련해서도 그렇다. 그럴듯한 교리적 논리로 말미암아, 환경위기와 기후 변화와 관련된 올바른 조치들을 거부하는 것이 정당화되고 있지 않은가?

이 지점에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하는 첫 번째는 노아의 언약이다. 창세기 9:1~3의 그 언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조건들을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여기에 근거해서 환경에 관련된 이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 이 주장에 따르자면, 이 지구의 미래는 우리 손에 달려있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지구를 구원하실 것이고, 우리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순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구 전체에 닥친 위험한 생태적 위기에 대해 우리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으며 그냥 앉아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할 것이다.

두 번째로 이러한 주장과 정반대되는 주장이 있다. 베드로후서 3장에 베드로가 심판 때에 땅과 불로 소멸되는 모든 것들을 묘사한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이다. 이 경우에 사람들은 결국 그때 다 타버릴 것이라면, 왜 굳이 지금 우리는 지구의 환경과 자연들을 보존하고 보살펴야 하는 걸 까라는 질문을 한다.

이러한 논리는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참으로 어리석고 비합리적으로 해석된다. 비록 현재 이 땅의 모든 만물이 베드로가 언급하듯이 하나님의 새 창조의 수단이 되에 불과 함께 사라질 것이라 할지라도, 이는 우리는 그것들을 다스리고 돌보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해야 한다는 근거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는 지금 이 땅의 모든 만물과 땅 자체에

대한 책임을 성경본문의 자의적 해석으로 아주 인간 중심적, 자기 기만적으로 만들어 버려 포기하게 한다.

지금 이 창조물을 위해. 이는 마치 의사가 확실하게 아픈 환자에게 글쎄요. 당신은 언젠가 죽을 것이고 죽은 후에 화장터에서 몸이 모두 불에 타버릴 것인데, 왜 제가 지금 당신을 돌보아야 합니까?”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세 번째로 또 다른 경우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선교요. 사명이다라고 생각하며 선교에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예수님의 지상명령이 복음 전파와 제자화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말한다. 특별히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모든 성경 말씀과 마찬가지로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고, “순종해야 하는 위대한 진리이다. 그러나 지상명령에 대한 제한된 해석을 성경 전체로부터 이끌어 낸 더 넓은 선교적 책임으로부터 자기 자신이나 교회를 자기변명을 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은 내게는 자기 기만적으로 위험해 보인다.

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예레미야 7:8~10)

예레미야가 전하고 있는 핵심을 진지하고 깊게 생각해보자. 급박하게 다가오는 재앙에 직면한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이러한 재난을 피하거나 감소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을 무시하고 거부하는 백성들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러한 안일함의 이유 중 하나는 조상들이 남겨준 믿음의 유산이 있기에 어떻게 살든 어떠한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자신들의 안전은 보존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레미야의 경고와 호소에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발제하는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Wright) 박사 2023.11.9./ 사진@김대진
발제하는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Wright) 박사 2023.11.9./ 사진@김대진

지금 우리 모두, 우리 교회들, 그리고 선교단체는 어떤 면에서 알지 못하게 자기 기만적인 죄를 범하고 있지 않을까?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그러한 면을 분별하고 그에 따른 위험을 일깨워 주시는 음성을 들려주시기를 원한다.

놀랍게도 이러한 모든 냉혹하고 참담한 예레미야의 설교 여정의 끝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었다. 아시다시피, 예레미야는 자신의 말이 전해지지 않을 것이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눈물을 흘리게 되는 재난이 반드시 닥칠 것임을 점점 더 확신했지만, 그것이 마지막이 아닐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 세대에 대한 종말의 메시지였다. 앞으로 몇 년 동안, 그들은 죽음이나 유배 외에는 직면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 그 땅을 향한 마지막은 아니었다. 앞으로 그들에게 닥칠 심판은 그 규모가 총체적으로 끔찍할 것인데, 예루살렘은 포위되어 모든 백성은 학살과 강간, 괴롭힘을 당하고 포로가 될 것이고, 성전은 약탈당하고 무너질 것이며, 도시 전체는 불타 없어질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어두움의 공격이 지나고 멸망의 끝이 가까워지자 예레미야는 밭을 샀다. 그 이야기는 예레미야 32장에 있는 놀라운 이야기로서 그것은 너무나 확실하게도 아무런 유익도 없는 행위였다.

예레미야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느니라 이르시기를 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하리라하시더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나에게 와서 이르되 청하노니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하는지라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십칠 세겔을 달아 주되 증서를 써서 봉인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고 (예레미야32:6~10).

아나돗에 있는 그 땅은 아무 쓸모가 없었고 바벨론 군대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또한 예레미야는 미혼이었기에 그 땅을 물려줄 상속자도 없었다. 그러나 이는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아주 뚜렷한 예언적 희망의 행위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신의 순종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예레미야에게 땅이 회복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소망은 우리에게 이렇게 전한다. 그 누가 이 경이로운 지구, 하나님의 땅, 우리 땅에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있는가? 아무도 알 수 없다.

환경오염과 온난화 등으로, 인류가 고통을 받으며 피조물이 살아가기에 힘든 땅으로 변한 것 또한 하나님에 주권 안에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여 이 땅을 돌보아야 한다.

예레미야가 그 밭을 사들인 것과 같은 행위는 세상의 끝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지침으로 가치가 있다. 출처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마틴 루터가 내일 세상이 끝나리라는 것을 안다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나무를 심겠다라고 답한 것과 같은 의미였을까? 그렇다. 나무 한 그루조차도 새 창조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땅과 거기 충만한 모든 것이 여호와의 것이다. 우리 모두 이 땅의 모든 피조물과 함께 우리의 부패한 어리석음과 그로 인한 저주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를 고대한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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