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의 개혁과제 2

재정비리, 쉽지 않은 단속과 처벌

돈은 어디서나 문제꺼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돈에 맑고 깨끗한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1-20년 전만해도 돈에 얽힌 비리는 주로 정치인들의 단골메뉴와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종교인들이 더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정경유착이나 정치인들의 불법적인 금전수수는 김영삼 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전격적으로 도입하면서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하였고, 나아가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공영제를 강화하여 정부가 선거비용을 보전해주는 정책을 시행하면서 크게 개선되었다.

그리고 일반 사회는 사법기관의 단속과 언론의 감시가 점점 더 철저해짐에 따라 정치인들의 금권선거운동이나 공무원들의 뇌물수수는 많이 줄어들었다. 물론 아직도 다른 선진국들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종교계는 그 동안 특별한 반성이나 제도적인 개혁 없이 지나오면서 여전한 구태와 타락이 계속돼왔다.

특히 종교단체는 신앙과 양심을 존중하며 각자가 스스로를 단속하도록 양심의 재량권을 인정하고 있고, 거기다 경찰권을 행사하여 범죄자의 인신을 구속하거나 처벌할 수 있는 성격의 단체가 아니다보니 돈과 관련된 범죄행위를 단속하는 것이 쉽지 않다. 또 재정관리를 위한 규칙(법)이나 시스템 등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그러다보니 교회 안에서도 알게 모르게 재정비리가 잡초처럼 자라더니 가끔은 대형사건으로 터져 나와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 - 돈 쓰는 선거운동

돈 쓰는 문제와 관련하여 가장 두려운 일 중 하나는 한국교회에서 금권선거가 관행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총회나 교회연합단체에서 돈을 쓰며 선거운동을 하는 것을 예사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금권선거 이전에 교회에서 어떤 사람이 직분자가 되기 위해 선거운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리스도의 주권을 훼손하는 극히 무엄한 행위이다. 교회의 직분은 교회의 주이신 그리스도께서 부르시고 세우시기 때문이다.(엡 4:11)

교회에서 직분자를 세우는 일을 위해 투표하는 것은 성령의 내적인 부르심을 확인하는 외적 부르심의 절차이다. 따라서 교회의 회의나 투표는 주님의 뜻을 찾는 기도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무슨 일을 하든지 그리스도가 우리 각인의 주가 되실 뿐 아니라 교회의 주시며 만유의 주시라는 신앙고백과 함께 엄중한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 이런 경건이 없으면 일반사회에서 하는 회의나 투표와 아무 차이가 없다. 국가에서는 주권재민사상에 의해 국민들의 여론을 알려고 투표하지만 교회에서는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 투표한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선거운동을 한다든가 지지자들을 포섭하고 모은다는 것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무서운 범죄행위이다.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교회 안에서는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그런데 돈, 그것도 하나님께 드린 연보를 사용해서 선거운동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이것이 예사롭게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돈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윤리적인 범죄행위 정도가 아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주권을 침해하고 조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교회의 지도자들이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인사권을 이런 식으로 농단하고 있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이 벌인 국정농단은 하나님나라에서 목사 장로들이 벌이고 있는 그것에 비하면 약과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일 개체교회 안에서 교인들이 직분자가 되기 위해 돈을 나눠주고 밥을 사주면서 선거운동을 하고 다닌다면 어떻겠는가? 그러나 노회나 총회에서는 이런 일이 아주 예사롭게 행해지고 있다.

노회나 총회는 교회가 아니란 말인가? 작년에 어느 교단의 총회장이 돈을 쓰며 선거운동을 한 죄를 자백하며 회개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쓴 돈이 약 수억 원이나 된다고 알려졌다. 큰 교단이다 보니 그 정도까지 많은 돈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 돈의 거의 두 배나 써야 총회장에 당선될 수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았다. 이런 면에서 비교적 깨끗하다고 알려진 고신총회에서는 과연 어떨까?

알려진 바로는 부총회장 후보가 두 사람이상 되면 선거운동비용이 최소 오천만 원에서 일억 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이 돈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마 교회에서 음성적인 방법으로 지원한 돈일 것이다. (선거관리에 관한 규칙에서는 교회의 이런 재정지원을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후보자로 나선 사람의 사적인 돈일 것이다. 그러나 목사들이 쓰는 돈이 순수하게 자기 개인 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자기 돈이면 이런데 써도 된단 말인가?

고신은? 완급과 대소의 차이일 뿐?

선거운동에 들어가는 돈만 문제 되는 것은 아니다. 이상하게도, 참으로 이상하게도 목사들이 성도들에게 헌금을 하라고 할 때는 엄청 거룩함을 강조하면서 왜 쓸 때는 하늘에서 우연히 떨어진 공돈처럼 여기는지 모르겠다. 노회나 총회로 올라갈수록 연보는 연보다움을 잃어버린다. 각 상비부들에서 지출되는 돈을 보면 일반 회사들에서는 횡령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는 돈들이 있다.

세미나다 수련회다 하면서 위원들이 명분 없이 돈을 나누어 갖는 일들도 일어나고 있다. 또 예산으로 배정된 금액이라도 쓰다가 남으면 정산하여 반납하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데 대부분 무슨 명분이나 이유를 붙여서라도 다 지출해서 낭비해버린다. 보다 더한 일들도 있다. 시찰회나 노회에서 상회비를 받아 부서원들이나 임원들이 적당한(?) 이름을 붙여 향락성 해외여행을 하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 가난한 목회자들인지라 평생 성지순례 한 번 못 하는 목사들이 많아 그들을 도우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 변명하지만 과연 그런가? 설사 그런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교인들의 동의를 얻어서 떳떳하고 투명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오래 전부터 고신의 안팎에서 회자되어온 말이 있었다. “자유주의 신학을 허용하는 교단이나 엄격한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고신이나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다만 완급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앞선 교단들은 급행열차를 타고 가고 고신은 완행열차를 탔을 뿐이다.”라고.

재정관리는 영수증 처리가 기본이다

어떤 단체의 재정이든 지출은 영수증으로 확인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일이 가장 잘 안 되는 곳이 종교단체라고 한다. 다른 종교는 잘 모르겠지만 교회서는 확실히 그런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구제비나 접대를 위해 지출되는 금액들, 교인이나 직원들의 경조사에 지출되는 축하금이나 조위금 등은 영수증을 받을 수 없거나 받기 어려운 경우들이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교회의 상회기관인 노회나 총회에서는 영수증 없이 재정이 지출되는 일들이 거의 일반화돼 있다. 회의비나 여비 지급이 그러하고, 다른 지출에서도 그런 경우가 많다. 총회나 노회는 전체 모임도 있지만 상비부들과 각종 위원회들의 모임들은 수시로 있다. 그래서 우선 재정 낭비가 크다는 점이 일차적인 문제이고, 이어 더 심각한 문제는 비윤리적인 행위가 일어날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이 때 참석자들에게 지급되는 여비는 실비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여비규정에 따라 일정하게 정해진 금액으로 일괄하여 지급된다. 그러다보니 그 금액이 교통비라기보다는 일당(?)을 주는 것 같은 성격이 강하다. 만약 이를 영수증 처리로 전환한다면 아마 엄청난 금액의 재정을 아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아껴진 재정을 교육, 선교, 복지 등의 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한다면 거룩한 연보의 목적을 제대로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설사 여비를 영수증을 근거로 하는 실비로 처리로 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면 영수증처리가 정착될 때까지라도 금액을 실비수준으로 낮추는 방법이 있고, 또 여비를 개교회가 부담토록 하는 방안도 있다. 그런데 총회나 노회의 상비부나 위원회 위원들의 여비를 개체교회가 지급토록 하면 미자립교회의 목사 장로들은 돈 때문에 총대가 될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기는데, 이 경우 이들은 영수증을 제출하게 하고 이 금액을 노회에서 지급하면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요즘 불평이 많은 것 중 하나가 목사청빙을 위한 노회나 임원회의 소집청원비용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담임목사청빙의 경우 보통 두 노회 - 청빙하는 노회와 소속노회 - 가 소집되어야 하는데 이 비용이 만만치 않다. 우선 노회소집을 위해 임원회가 모여야 하므로 50-100만 원 회의비를 내야하고, 이어 노회를 소집하는데 큰 노회들은 150-200만 원 정도, 작은 노회들도 100만 원 이상 회의비를 주담해야 한다. 그래서 담임목사를 청빙하는 교회는 회의비만 약 500만 원 이상 부담해야 한다.

부목사의 경우는 임원회에서 청빙조회가 가능하므로 담임목사의 청빙보다는 부담이 적지만 그러나 작은 교회들의 경우는 이것까지도 큰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회의비를 총회 전체로 보면 연간 수천만 원에서 억 단위의 헌금이 사용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비용들을 조금만 연구하면 줄일 수 있는 방안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임원회나 상비부의 경우 SNS 등을 통하여 회의를 할 수 있고, 특히 단순한 행정절차에 지나지 않은 문제들일 경우는 위원장과 서기에게 맡겨 처리하게 할 수도 있다.

연보를 연보답게 쓰자

우리가 이렇게 까다로운 주장을 하는 것은 우리가 쓰는 돈이 연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드려진 하나님의 돈을 쓰는데 우리가 예사로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자기의 돈이 아니고 공적인 돈일 경우는 여유 있게 쓰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 이런 경향은 교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하나님께 드려진 헌금을 어찌 예사로 다룰 수 있겠는가? 회의비나 여비 등 소모성 경비를 최대한 아껴 연보답게 생명을 살리는 일들에 사용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다음은 “총회본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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