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서 목사 특별기고

3. 신학적인 공세

박광서 목사(큰사랑교회 담임)

미국의 동성애자들은 동성혼 합법화를 위해 세 측면의 공세를 강화해갔다. 의학적 목적은 3년 만에 이뤘고, 법적 공세는 50여년의 긴 싸움 끝에 성공했다. 문제는 동성애를 죄(罪)라 정죄하는 기독교였다. 저들은 종교적 싸움이 간단하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교회를 무너뜨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뭘까? 그것은 신학의 타락에 있었다. 그래서 저들은 동성애 신학자 혹은 친동성애적 신학자들을 활용하여 성경을 왜곡함으로 신학적 변질을 이끌었다. 이런 흐름에서 등장한 신학이 ‘퀴어 신학’(queer theology)이다.

동성애자들이 세속적 교인들을 다루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보수적 교회인데 동성애자들은 좌파 언론들과 연대하여 목회자의 성(性), 물질, 혹은 교회의 리더십 이양과 관련된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반기독교 정서를 확산시켰다. 이런 운동에 앞장 선 이들이 개혁, 갱신, 윤리라는 이름을 붙인 시민단체들이다. 저들은 교회를 제거해야 할 사회적 암 덩어리로 여겼다. 이런 분위기에 신학자들의 타락은 치명적이다. 신학의 타락은 교회의 미래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성경의 권위와 가치를 부인하는 신학자들

문화막시즘의 영향을 받은 좌파 신학자들이 동성애 옹호에 앞장섰다. Colman, Boswell, Gagnon, Vasey 등은 Bailey가 1955년에 ‘동성애와 서구 기독교 전통’에서 소돔의 죄는 동성애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한국에서는 허호익, 김경진, 김근주 등이 같은 생각이다. 저들은 4가지 적용원리를 내세운다. 첫째, 동성애는 바울시대의 소수의 사람들의 성적 일탈이기에 동성애 자체는 죄가 아니다. 둘째, 바울이 동성애를 죄로 여긴 것은 동성애가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지 알았다면 죄로 여기지 않았다. 셋째, 성경은 과학시대의 최종권위가 아니며 그 시대 문화의 산물일 뿐이다. 넷째, 동성애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성의 일부로서 죄가 아니며 또한 치유해야 할 중독성 있는 병도 아니다.

 

왜곡된 성경 해석의 예

그렇다면 저들이 주로 인용하는 성구들은 무엇일까? 첫째는 창세기 9:20-27로, ‘함이 노아와 성관계 했다’고 해석한다. 게그논은 함이 노아의 하체를 보았다는 구절을 함이 형들의 권위를 빼앗고 족장이 되려고 아버지 노아를 성폭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둘째는 창세기 19:4-11로, 소돔 사람들의 죄는 소돔을 방문한 두 천사에게 성폭행하려 한 것이 아니고 손님대접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불친절의 죄’라 해석한다. 셋째는 레위기 17-26장으로, 동성애금지는 ‘그 시대의 문화’일 뿐이라고 해석한다. 저들은 성결법전의 관심사는 우상숭배 금지이지 상호합의하에 이루어지는 동성애를 금한 것은 아니며, 동성애도 근친상간만 아니면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넷째는 로마서 1:24-27로, 이 구절을 사회-문화적 상황으로 해석했다. 즉, 비과학적인 바울의 평가를 과학문명이 발달한 현대사회가 따라야 할 필요는 없으며, 바울이 소수 특정개인의 성적일탈을 지적한 것을 왜 모든 동성애로 확대 해석하느냐는 것이다.

 

퀴어 신학적 성경해석

이런 성경왜곡 현상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동성애의 세계적 확산과 함께 퀴어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신학계를 타락시켰다. 퀴어신학은 특정 개인의 요구를 중시하고, 성별과 관계된 사회 문화 규범을 반대하며, 성 정체성의 해체를 목적하며 다양한 성애를 인정하려 했다. 존 맥네일, 다니엘 헬미니악, 데오도르 제닝스 등이 대표적인 신학자들이다. 저들은 예수님과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를 동성애 관계로 해석했다. 하나같이 ‘예수님은 전통적인 가족제도를 부인하셨다. 게이와 레즈비언 부부 등 다양한 가족형태를 정당화해야 한다’며 전통적인 가족질서를 해체하려 했다. 헬미니악의 경우는 ‘동성애를 왜 옳고 그름의 윤리적 잣대로 평가하느냐. 항문 성관계가 더럽긴 하지만 도덕적인 문제는 결코 아니다. 여성 간의 성관계는 삽입이 아니기에 진정한 섹스가 아니다. 동성 간의 성행위가 옳은지 그른지를 분명히 알려면 성경이 아닌 다른 곳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궤변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지금까지 친동성애적인 신학의 흐름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성경을 왜곡하는 현상은 이제 도를 넘고 있다. 저들은 하나같이 이단적, 자의적, 인본주의적인 성경해석을 한다. 저들이 단순히 동성애 옹호만을 목적으로 할까?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왜곡함으로 성경의 권위를 허물고 기독교회를 파괴하기 위함이다. 신학의 타락을 통해 교회를 해체하려는 악한 영의 역사다. 결국 퀴어 신학을 추종한다는 것은 저들이 성령과는 관계없는 거듭나지 않은 인생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저들의 판단의 기초는 구조주의 철학과 포스트모던 신학과 문화막시즘이다. 즉, 인간의 이성과 본능이 판단의 절대기준이다.

신학적 싸움은 의학이나 법적 싸움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신학적 싸움은 주의 재림 때까지 계속될 악한 영과의 전투다. 하지만 저들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 이유는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상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조물이 창조주와 대적하여 이길 수 있겠는가? 그의 원리를 거스를 수 있겠는가? 그런 차원에서 교회는 사라지지 않는다. 기독교 역사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비록 청교도 신앙의 꽃을 피웠던 화란과 미국과 같은 나라가 동성혼에 무너지는 일시적 패배와 타락은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교회는 영원하다.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것만큼 가장 어리석은 짓은 없다. 저들은 지금 그 어리석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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