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들의 유토피아가 열리는 것 같아도

그것이 죄라는 영혼의 울림은 피할 수 없다

2. 법적 공세

박광서 목사(큰사랑교회 담임)

1969년 6월 스톤월 항거 이후 3년간의 의학적 싸움에서 승리한 동성애 진영은 그 여세를 몰아 법적인 투쟁에 돌입했다. 법적 싸움에서의 승리는 동성혼이 인간의 자연스런 결혼방식 중 하나임을 공인받는 것이며, 더 나아가 전통적 보편가치와 체제를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강제력을 확보함을 의미했다. 동성혼이 공인되면 국가, 사회, 그리고 교회의 기초인 가족을 해체시킬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이다. 저들은 이 싸움이 단기간의 싸움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이에 따라 동성애자들은 차별금지법→ 생활동반자법→ 시민결합법→ 동성결혼 합법화라는 수순을 밟아갔다. 이것은 유럽과 미주 국가뿐만 아니라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10년간 좌익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목을 맸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말하듯, ‘하나를 열어주면 모든 것을 열어주는 지경에 이른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68혁명부터 2015년까지 약 50여년동안 미국인들의 동성혼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변해 왔을까? 미국의 동성혼 합법화 과정은 우리에게 타산지석(他山之石)과 같다.

동성애자들의 주장을 담은 각종 포스터

68혁명에서 1980년대까지 미국인들의 동성애 인식은 대체로 보수적이고 단호했다. 그럼에도 동성애자들은 계속해서 혼인관계증명서 발급을 요구했고, 그것이 거부되면 패소를 각오하고 소송을 반복했다. 그들이 주로 인용한 판결은 1967년 흑백 인종간의 결혼을 금지했던 법을 폐기시킨 Loving v. Virginia 판결이었다. 개인의 행복과 결혼이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듯이, 동성애자도 평등하게 대우받아야하며 동성 성행위는 범죄가 아니고 동성혼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소송이 Bowers v. Hardwick사건이다. 저들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대법관들이 5:4로 나누어졌다는 점은 위기의 전조였다. 1980년대까지 미국인들의 정서는 동성애를 반대했고 전통적인 결혼제도를 지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이 1990년대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빌 클린턴이 8년간 집권하면서 동성애자들의 목소리가 커지지 시작했다. 저들은 적극적인 캠페인과 전략적인 소송전을 펼쳤다. 동시에 미국사법부는 좌익에게 장악되고, 파워 엘리트에 의해 국민의 여론은 친동성애로 기울어졌다. 젠더이론의 주디스 버틀러도 이때 등장했다. 젠더에 인권이 탑재되면서 2000년대부터는 미국교회가 요동쳤다. 로렌스 사건이후부터 동성애는 더 이상 범죄가 아니었다. 결국 이런 수순의 끝이 무엇이겠는가? 동성결혼의 합법화다. 2003년 메사추세츠주가 미국 최초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주가 되었고, 오바마 통치의 절정인 2015년에는 드디어 연방대법원이 합헌 판결함으로써 50여년간 지속된 동성애자들의 법적 싸움은 승리로 끝났다.

이것이 미국의 동성혼 합법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네 가지를 주목하게 된다. 첫째는 사법부의 정치화다. 사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판결함이 정도(正道)다. 그런데 사법부가 입법부의 노릇을 하는 소위 ‘사법적극주의’(Judicial Activism)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민주절차에 의한 국민들의 합의조차 판사 몇 명이 자신들의 정치 색깔에 의해 뒤집는 일이 발생했다. ‘사법부의 독재’시대를 연 것이다. 둘째는 인류의 보편가치와 윤리의 붕괴다. 한 사회를 지탱해주는 것은 전통적인 도덕성인데 이것이 무너지면 그 사회는 퇴락의 길을 걷는다. 그런데 오늘날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가치와 도덕과 관습을 급진적으로 전복시키려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셋째는 친동성애 법조계의 전략과 전술이다. 저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소송 하나하나에 전략적으로 임했다. 거대자금 동원력이 있는 람다리걸 같은 법률단체가 연계되면서 미국사회는 맥없이 무너졌다. 넷째로 언어의 능력을 인식한 좌익의 영악함이다. 그 예가 ‘성적 지향, 성소수자, 혐오, 지향, 인권, 평등, 정의’와 같은 용어들이다. 이 용어들이 어떤 위력을 가졌는지 독자들은 더 잘 알 것이다.

미국의 동성혼 합법화 과정은 클린턴과 오바마 시대 때 절정이었다.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지금도 이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그 단적인 예가 미국 콜로라도주의 제빵사 잭 필립스의 경우다. 필립스는 2012년 동성결혼 케이크제작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시민평등위로부터 소송을 당해 6년간 피곤한 싸움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 승소했지만 최근 그는 또 다시 제소되었다. 이번엔 성전환 기념케이크 제작을 거부했다는 이유다. 10만 달러의 손해배상과 벌금, 변호사비를 청구당했다. 현재 ADF(Alliance Defending Freedom)가 그를 도와 맞소송을 한 상황이다. 잭 필립스의 경우가 바로 동성애자들의 전형적인 소송전의 예다. 저들은 끝까지 물고 공격하여 패배시킴으로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시킨다. 한국의 동성애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함으로 자신들의 본능을 채우려 할 것이다. 저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죄임을 애써 부인한다. 사람들 역시 저들의 인권 타령에 장단 맞추며 눈을 감아줄 것이다.

최근 총선에서 180석의 거대 의석을 확보한 좌파 정권은 앞으로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이고 교회는 그들의 압력과 핍박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는 비둘기 같은 순결과 뱀 같은 지혜가 필요로 한다. 이런 시대를 교회는 어떻게 극복해 갈까? 동성애자들의 유토피아가 열리는 것 같아도 그것이 죄라는 영혼의 울림은 피할 수 없다. 그 울림을 거부하며 발악하는 싸움이 퀴어라는 이름의 영적 신학적 싸움이다. 동성애자들이 이 싸움도 이길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이유는 인간은 창조주가 아니라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밖의 인간 본성은 디스토피아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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