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라(9)

 

박광서 목사(큰사랑교회 담임)
박광서 목사(큰사랑교회 담임)

칼 마르크스가 죽은 후, 그의 사상을 좇던 무리가 큰 실의에 빠졌다. 이유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그들 사이의 이율배반적 행태와 계급투쟁 역사 예언의 부정확성, 그리고 정통 마르크시즘의 변질로 인해 방향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 늪에서 빠져나오는데 탈출구가 된 사람이 니체’, ‘프로이트그리고 다윈이다. 인간중심의 니체 철학, 성 욕구의 기제를 공론화시킨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신을 배제한 인간의 변화를 부각시킨 다윈의 진화론은 이들의 재기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했다. 영역은 달랐지만, 이들의 사상의 근저에는 억압, 착취, 해방의 개념이 있었고 전통 종교인 기독교를 배제하려는 공통점이 있었다.

마르크스의 사후에 위기에 빠져 있던 마르크스의 후예들은 결정론적 마르크시즘에서 벗어나 정치의 영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들의 사상을 네오마르크시즘’(Neo-Marxism)이라 하며, 이를 좀 더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 해석한 것이 문화 마르크시즘’(Cultural Marxism)이다. 192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 사이에 이들의 철학적 기초가 다져졌으며 1960년대에는 유럽과 미주 사회를 뒤흔들 정도로 영향을 끼쳤다. 문화 마르크시즘은 오늘날도 전 세계의 좌익의 자양분이며 위기의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면 정통 마르크시즘에서 탈피하여 제2의 르네상스를 이룬 일군의 철학자 무리는 누구일까?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그람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학파, 그리고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들이 그들이다.

 

인간 개조를 위한 새로운 혁명 이론

1960년대부터 전 세계 좌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인물이 이태리 공산당 창립자이자 철학자이며 지도자였던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사람의 공산혁명이론이 한국사회 만큼 잘 먹힌 곳도 드물다. 요즘 회자되고 있는 헤게모니 이론’, ‘진지전’, ‘기동전이 바로 그람시의 이론이다. 그람시는 1928년 파시스트 당국에 체포되어 1934년 건강 악화로 가석방되기까지 감옥에 갇혀있었다. 그의 독창적인 이론들은 옥중수고에 소개되고 있다. 당국의 검열로 인해 완전한 형태의 책은 1965년에 출간되었다.

 

헤게모니 이론

그람시는 경제와 생산방식 같은 하부구조를 중요시한 마르크스의 결정론적 해석에 반대했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에 의해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붕괴한다는 낙관론과 역사적 필연성에 반대한 것이다. 실제로 소련과 중국의 공산화는 마르크스의 이론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부나 문화 같은 상부구조를 주목했다. , ‘정치의 중요성을 주목한 것이다.

폭력적 혁명투쟁도 중요하지만 이데올로기적 투쟁은 더 중요했다. 여기서 나온 이론이 바로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 그는 소련 같은 후진사회에서는 폭력혁명이 가능하겠지만, 교육, , 언론, 대중문화 등이 발달한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시민사회 내에서 획득되는 대중의 동의를 통해 계급에 의한 지배가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따라서 신념, 가치, 문화적 전통 같은 상부 구조적 현상이 일반대중 속 깊이 뿌리내린 기존 권력체계의 가치관에 맞설 수 있는 대항(對抗) 헤게모니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창출해야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쉽게 말해, ‘폭력보다는 인간의 생각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거짓말은 처음엔 부정되고, 그다음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모든 사람이 믿게 된다는 나치 선동가 괴벨스의 주장처럼,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의식의 세뇌가 중요했다. 결국, 헤게모니 이론이란 기존 권력 체제를 뒤엎기 위하여 대중의 생각을 뜯어고치는 수단을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공산주의자들이 의식화를 왜 중요시 여기는지 알 수 있다. ‘세뇌를 통한 인간 개조가 목적인 것이다.

 

진지전과 기동전

그람시는 진지전’(war of position)기동전’(war of movement)도 제시했다. 그는 미래의 혁명은 기나긴 이념전쟁으로서, 시간이 걸려도 유연한 방법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이념적 헤게모니를 사회주의자들의 대항 헤게모니로 전환하라 주장했다. , 교육, 언론, 학계, 예술, 문화 등 광범한 영역에 좌파의 진지를 구축해서 좌파 헤게모니를 전파하라는 것이다. 지지자가 증가해서 대세를 점한다면 전위대들이 참호에서 뛰쳐나와 기동전으로 결정적인 승부를 내라는 것이다. 결국, 진지전은 시민사회 내에서 장기적인 지적, 도덕적,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투쟁전략인 것이다. 이런 점이 마르크스와는 다른 그람시만의 독특한 이론이다.

좌파는 지난 40년간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군사 등 전 영역에 좌익의 진지를 구축했다. 양동안은 벼랑 끝에 선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에서 좌익이 내세운 헤게모니 가치관의 예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헌법적 질서와 애국적 가치관을 부정하고 파괴하라. 대한민국은 미 제국주의의 조종을 받는 정통성 없는 정부이며, 한국전쟁의 국군은 용병이다. 재벌의 해체와 지주 타도, 재산몰수와 같은 정의로운 행위를 통해 사유재산 제도를 부정하라. 하나를 변혁하려면 모든 것을 변혁하는 투쟁을 하라. 민족주의와 같은 주체적 의식을 강조하라.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전위조직으로서의 엘리트당 보다는 광범위한 지배계층 및 시민들의 일상과 연결된 대중정당을 중시하라.” 오늘날 이것이 얼마나 성공했는지 뼈저리게 확인하고 있다. 그람시의 이론은 프랑스 68혁명, 미국 히피 세대들의 반전, 인권, 성소수자 문제의 전략 지침이다. 오늘날 젠더주류화 정책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교회도 이 지독한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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