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호 목사 (이스라엘연구소 소장, 칼빈대 은퇴교수, 영국웨일즈대학교 철학박사)
이일호 목사 (이스라엘연구소 소장, 칼빈대 은퇴교수, 영국웨일즈대학교 철학박사)

교단 총회를 앞두고 최근에 우리 개혁주의 고신교회 35개 노회와 산하 기관들, 상비부와 위원회들이 진중하게 상정 안건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마음 든든하다.

말은 삶의 기본 요소이고 글은 말을 문자화하여 대화하는 방편이다. 말과 글은 화자의 뜻(아이디어, 정보)을 담고서 인간관계 속에서 소통의 방편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경쟁심이나 허영심이 없이 차분한 감정의 교류를 이룰 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행복한 대화가 된다. 대화는 자칫 오해와 반목, 불쾌감, 증오감으로 다툼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상대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상황을 인정하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和而不同). 어느 한쪽을 패배시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승리를 구가하는 윈윈 전략이어야 한다.

말도 한번 걸러서 발화하면 문제가 없지만, 직관적으로 발설하면 수습이 어렵다. 글은 그나마 발표하기 전에 첨삭하며 다듬을 수 있어서 구린내와 비린내를 예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물론 필화사고(筆禍事故)를 가끔씩 접하기는 하지만.

말과 글을 통해 대화를 이어나갈 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사실에 근거로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추측과 편견, 상상력, 사실무근을 근거로 하는 것이다. 억측으로 인해 피해를 보거나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생기고 선의의 피해자들이 속출하게 된다. 입이 여럿이고 말이 많으면 불에만 녹을 금도 녹일 수 있다고 한다. 여러 사람의 말이 한 사람의 삶을 녹여버리는 것은 범죄행위와 다름이 없다. 혐오감을 주는 표현도 자제해야 한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라면 인용하지 않아야 한다. 말과 글을 통해 동지가 될 수 있고 원수가 될 수 있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거친 말을 내뱉는 것은 삼가야 한다. 질문을 통해 상대방의 의도를 알 수 있으므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질문을 해야지 다짜고짜 총칼 들고 싸우듯 떼를 지어 총공세를 펴는 듯한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이것은 대화와 논쟁이 아닌 전쟁이다. 대화에서 비난과 비방은 금물이다.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내 말이 아니다. 트림하듯 하품을 하듯 자연발생적으로 내뱉고 하고 싶은 대로 말해서는 안 된다. 대화를 나눌 때 단정적 표현은 가급적 삼가야 한다. 과장된 표현이나 부풀리기도 멀리해야 한다. 따끔한 충고나 질책보다 우회적인 표현이 훨씬 효과적이다. 대화를 혼자서 하는 중얼거림처럼 해서도 안 된다. 대화할 때 상대에게 한 수 배운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겸손과 존경의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한다.

대화를 통해 상대를, 여러 사람(무리)을 얻을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다. 사람을 얻는 대화를 하자. 사람의 감정은 전염된다고 하지 않는가! 반대를 위한 반대, 잘난 척하는 말과 글, 지나친 판단, 불평이나 험담은 피하는 것이 예의다. 상대방의 의견에 대한 동의나 반론이지 그 사람이나 그의 인격을 논하거나 공격하는 것은 신상 및 인신공격을 떠나 화제를 벗어난 외도가 된다. 피에 굶주린 승냥이는 어느 벌판에 놓아두어도 먹잇감을 찾아낸다. 손에 지문이 있듯이 목소리에도 성문이 있다고 한다. 나의 성문은 격조를 수반하고 있는지 반문해보자.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빛과 향기를 가지고 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 하지 않는가?

대화란 양쪽이 노력하여 제3의 의견을 만들어내는 창조적 작업이다. 듣기와 말하기의 조화를 이루어나갈 때 대화와 논쟁의 코스모스가 창조된다. 역사가 만들어진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들춰내는 대화는 건강한 비평이 아니라 감정싸움을 촉발한다. 정문일침(頂門一鍼)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우기거나 발뺌을 할 때 사용하는 것이지 일상의 대화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논쟁과 흥분은 피할수록 득이 된다.

총회 상정 안건을 위한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에 있다. 필자는 교단 내 많은 조직체(그룹)가 영적인 안목을 가지고 어떻게 의결 절차의 법규를 지켜가며 참여해야 할지를 회의 진행법과 대화법 차원에서 제안하고자 한다.

회의의 혼란을 막기 위해 한 사람(의장)이 사회를 보게 하고, 주어진 시간에 발언하게 하고, 구체적이고 정확한 말로 표현된 제안들에 대하여 토론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이 제안들은 기록해 놓아야 하며 만장일치로 합의하지 않는 이상 투표로 결정하여야 한다. 사회자는 질서를 유지하고 필요한 통제를 하여 회의를 주관한다. 누구에게 언제 발언권을 줄 것인지, 토론이 격렬하고 그칠 줄 모르고 무한정 계속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의견들이 정면으로 충돌하면 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아무런 이의가 없을 때 이를 처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지, 제출된 안건이 아직 가부를 물을 수 있을 만큼 정리되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은 사회자가 풀어야 할 과제다.

회원은 먼저 동의(motion)를 제출한다. 이것이 원 동의(main motion, 원안). 회원이 발언권을 얻고 정확한 언어로 표현된 동의를 제출하고 자리에 앉는다. 나중에 그 안을 제출하게 된 이유를 설명할 때까지 기다린다. 어떤 회원이 동의를 제출하였을 때 전체 회의가 심의하려면 거기에 재청(seconding, 再請)이 있어야 한다. 최소한 두 명의 회원이 안건 심의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동의가 제출되고 재청이 있으면 의장은 동의를 상정(state, 선포)한다. 이때 의장은 동의의 내용을 정확하게 그대로 반복하며 선포한다. 원 동의가 상정되면 이는 미결상태(pending)에 있는 것이다. 이를 심의 중(on the floor)”에 있다고 한다. 그 후에 회원은 이 동의에 대하여 토론하고 의결한다. 토론(debate)이라 함은 안건의 장점에 관하여, 다시 말하면 발의된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냐 거부할 것이냐에 대하여 논의하는 것을 말한다. 동의를 상정한 직후 의장은 보통 먼저 발의자에게 발언하기를 원하는지를 묻는다.

필자는 회의 진행법 전체를 설명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요 며칠간 미래정책연구위원회가 총회 안건을 상정하기 위해 준비한 여러 안건 중 하나인 소위 “SFC 폐지론을 두고 다소 격렬하게 진행되는 논쟁을 보면서 대화, 논쟁 그리고 예의를 떠올리게 되었다. 교단 내 언론기관들이 이를 진지하게 다루어줘서 감사한 마음이 크다. 하지만 여기서도 질서와 예의를 지켜주길 바란다. 반대의견과 찬성의견을 함께 게재하든지 차례로 진행하면서 질서와 진의를 살리는 대화와 논쟁의 장을 이끌어주길 바란다.

상정된 안건에 대해 반론이 있으면 먼저 발의자의 의견을 물어보길 바란다. 그렇게 하지 않고 단도직입적(單刀直入的)으로 판단하고 추측과 사실무근을 막무가내로 발설해버린다면 수습하기 어려운 곤경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면이나 SNS, 언론기관을 통한 토론에서는 사회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회의법을 참고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사회자는 발언한 회원의 이름을 부를 수 있지만, 회원이 다른 회원의 실명을 거론하는 것은 회의법의 상식과 예의가 아니다.

대화와 회의는 정치적, 당파적 싸움이 아니다. 할 말이 있어도 순서와 예의를 지키며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회의와 토론이 되어야 한다. 사람이 아니라 제출된 안건이 토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모든 측면의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 의사를 충분히 표시한 다음에라야 가장 지혜로운 판단과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상대방의 논리를 비판하는 것은 상대방의 인격을 비방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렇게 되면 적개심과 반감을 조장하게 된다. 대화와 회의에서 인신공격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다른 사람을 공격하거나 그의 동기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 의견을 달리하더라도 그 사람의 의견을 거짓이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 그 말 대신에 회원님께서는 잘못 알고 계신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현명함을 보여야 한다. “사기”, “거짓과 같은 표현은 절대로 써서는 안 된다. 그래서 회의 석상에서는 발언자가 상대방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마치 의장에게 말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김 목사님, 지금 말씀하신 것은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입니다.”라고 말하기보다 의장! 아까 말씀하신 분의 마지막 부분은 납득이 잘 가지 않습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사람에게 질문을 하고 싶어도 본인에게 직접하지 않고, 의장을 통해 하여야 한다.

김 장로님, 지금 장부에 돈(재정)이 얼마나 남아 있습니까?”라고 말하는 대신에, “의장, 우리 총회에 돈(재정)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회계께서 답변해 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하여야 한다. 가능한 한 회의에서 토론 중에 다른 회원의 이름을 부르는 일을 삼가야 한다. 임원들은 직분을 사용하는 것이 통례다. 예를 들어 서기의 보고”, “000 총대님대신에 앞서 발언하신 분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원칙이다. ‘모 회원’, ‘앞서 발언하신 회원()’ 등으로 지칭하는 것은 회의가 안건을 두고 토론하는 것이지 사람을 두고 하는 것이 아님을 새기는 예의다. 최근의 토론에서 보면 상대의 이름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인신공격적 글을 쓰는 광경을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 모두가 이 시대에서 감당할 사명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마음에서 대화와 토론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약간의 결례나 어설픔이 있다 하더라도 깨닫고 고쳐나가면 된다는 믿음엔 변함이 없다. 진리의 문제라면 선배들이 보여준 순교적 신앙의 유산을 이어받고 있는 우리가 아닌가? 진리 이외의 문제는 싸움이 아니라 대화와 토론으로 성령의 뜻을 찾아가면 된다. 예루살렘 공의회의 모델이 우리 손에 있다.

대화, 논쟁 그리고 예의를 지키며 총회를 준비해보자! 혹 글 중에 가르치려는 자세의 거만함이 느껴졌다면 용서를 구한다. 진심으로 그럴만한 자격도 능력도 없는 사람임을 자인한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

하나님을 찬양하라(Laus 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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