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교회가 직면한 풍랑을 극복하려면
어쩌면 현재의 SFC도 버릴 수 있어야...

이일호 목사 (칼빈대 은퇴 교수)
이일호 목사 (이스라엘연구소 소장, 칼빈대 은퇴교수, 영국웨일즈대학교 철학박사)

필자는 단톡방에서 몇 분이 육두문자에 가까운 언설을 쏟아내는 것을 보고 건설적인 대화를 하고픈 마음으로 몇 자를 적어본다. 몇 주간 기독교보를 볼 수 없는 처지였지만, 코람데오닷컴에 실린 글을 보면서 미래정책위원회 위원장 S 목사의 충격요법은 제대로 먹혀들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논란의 핵이 되고 있는 ‘SFC의 존폐문제는 단지 학생신앙운동만의 문제일 수는 없다. 한국교회는 물론 개혁주의 고신교회의 시대적 과제이기도 할 것이다. 한국교회가 개독교소리를 들은지 오래지만, 그들의 비난을 개 짖는 소리 듣듯 무대응과 인내심?으로 넘기고 있는지 모르겠다.

70년이 지난 연륜에 정체성을 논하고 있어야 하는 한가함이 되레 애처롭다. SFC 강령 속에 나타난 모든 것이 운동원들의 일상과 멀어질 때 정체성은 추억의 사진으로 객관화되어 버린다. 전국 대표간사 한 사람으로 추동되던 시절에도 SFC는 생기가 넘쳐났다. 그 열정이 열병처럼 전국 교회와 학원가를 휘젓는 능력을 뿜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백여명의 간사들, 출판부, 훈련원, 해외 지부 등 조직적인 몸집은 커졌지만, 운동의 동력을 잃어버린 약체로 휘청거리며 인적이 드문 역사의 어두운 거리-교회도 아니고 학원도 아닌-를 배회하고 있는 어그러진 자화상을 보여준다.

누구도 SFC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SFC의 걸어온 궤적을 지우고 깨부수고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고신교회 선배들이 일본 강점기 신사참배 죄를 고백하고 처절한 회개 운동을 전개하며 한국교회를 해방(구원)시키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을 때, 다음 세대인 자녀들은 SFC의 이름으로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다운 감동적인 역사를 써나갔다. 그렇다면 오늘 SFC(간사는 물론 운동원들도)는 어떤가? 학원 전도의 전문가(프로)가 되어 있어야 할 나이가 훨씬 지났지만, 여전히 아마추어로 아니 선수 생활을 포기한 낙오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서울의 S 대학교는 대학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전교생이 주중 하루 노방전도를 실천하고 있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또 소위 자유주의 신학을 한다는 K 신학대학교도 학생들이 서울시내 노방전도를 쉬지 않고 이어오고 있다고 듣는다. 고신대학생과 고려신학대학원 학생들은 아니 SFC는 지금까지 전도를 얼마나 지속적으로, 조직적 운동으로 잘 실천하고 있으며 그 노하우를 전국 교회와 어떻게 공유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장례를 치르던 젊은 사람들은 고신교회 안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가?

다른 학원 선교 단체와는 달리 교회와의 연계성을 가진 SFC의 강점이 도리어 독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의아심이 생긴다. 코로나19라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서, 그리고 지금처럼 학교 안에서 신앙교육이 불가능한 때에도 불구하고 학원복음화 인큐베이팅을 펼치고 있는 C 목사의 선교는 중·고등학교에서 동아리 개설을 통해 효과적으로 열매를 맺는 중이다. 교사, 학부모, 지역교회와 중·고등부 수련회를 매개로 학원선교에 매진하며 11천 개 학교 인큐베이팅을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음을 본다. SFC 강령 속에 담긴 우리의 통계는 얼마이며, 열매는 어떠하며, 무엇이 필요한지 현장에서 전해오는 간사들의 땀 냄새와 눈물과 절박한 기도 소리가 전국 교회에 울려 퍼지고 있는가? 전도자의 발에 생긴 티눈과 무좀을 치료해달라고 요청하는 뭉클함이 그립다. 노회와 총회 때마다 학교 현장에서 접한 생생한 경험담, 무용담, 영적 전쟁사를 들으며 온 교회가 울고, 모든 총대들이 합심 기도하여 응답받음을 감사하는 역사의 주인공들은 누구보다도 다음세대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SFC 사역에서 나와야 한다.

문제를 직면했을 때 토론과 치열한 논쟁은 당연한 대안과 대응 중 하나다. 하지만 탁상공론이나 말꼬리 잡기는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한국교회 전체가 교단을 불문하고 마이너스 성장의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인구감소, 출산율 세계 최하, 다음세대의 기독교 비호감, 주일학교와 SFC의 폐쇄화, 저성장 및 존폐 문제 등 난맥상이 우리 앞에 있다.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요나의 예를 생각해보자! 지중해 바다 한가운데서 광풍을 만나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과 배마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절체절명(絕體絕命)의 시간. 선원과 승객 전원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며 화물마저 바다 한가운데 던지고 있는데.

배 밑층에서 잠자고 있는 선지자 요나를 깨우는 선장의 행위를 두고, 그 시간에 키를 잡고 선박과 사람들 생명과 화물을 지킬 행동은 하지 않고, 한가하게 곤히 잠자는 사람 잠이나 깨우러 다니다니! 그게 선장이 할 짓인가? 피곤한 사람 배려할 줄도 모르고. 무임 승선 한 것도 아니고 암표도 아닌 뱃삯을 제대로 다 내고 탔는데, 자든지 말든지 무슨 상관이야?

어디 이방인이 감히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책망하고 명령을 내리다니! (예수님도 이름을 언급하고 알아준 선지자인데!) 하지만 풍랑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요나이고, 재난을 불러온 장본인이 바로 요나다. 그는 바다에 던져져야 하고 버려져야 한다. 이것은 요나 자신의 의지였다.

sfc 페이스북 갈무리
sfc 페이스북 갈무리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나는 SFC에서 신앙을 배웠고 이를 언제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감사한다. 그래서 두 아들도 처음엔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SFC 운동원이 되도록 설득하고 부탁했다. 아버지의 오늘이 있게 된 것은 SFC에서 받은 훈련에 있었다. “SFC 운동원이 되어다오!” 당연하다! 하지만 고신 목회자, 장로, 교인 중에는 자녀들을 SFC에 보내지 않는 경우가 많음을 보고 놀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혹시 SFC 폐지론의 진의를 무시하고 핏대를 올리는 분 중에는 자기 자녀들은 SFC에 다 보냈는지 살짝 궁금해진다. 한 사람도 없겠지만 말이다.

고신교회가 직면한 풍랑을 극복하려면 어쩌면 현재의 SFC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오해 없길 바란다).

S 교회의 S 목사의 발언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직면한 시대적, 역사적 난국을 풀기 위한 영적 각성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요나가 먼저 회개하고 자신의 몸과 생명마저 제물로 내어놓았을 때 재난은 끝이 났다. 분명한 사실은 여론몰이와 정치적 보호막에 살길이 있지 않고 고래 배 속에 들어가서 부르짖는 참회의 기도와 응답이 사는 길이다.

우리는 모두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는 엄명을 내린 삼성호의 선장을 기억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 고신교회도 그와 맞먹는 개혁을 실행해야 할지 모른다. 대한민국호도 예외는 아니리라.

개혁교회는 개혁을 멈춰서는 안 된다. 위기를 인지하지 못하다면 파멸로 직행하고 말 것이다. 종말적 승리는 보장되어 있지만, 시대적 승패는 우리 자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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