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채 목사/사단법인 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 이사장​, 향상교회 은퇴
​정주채 목사/사단법인 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 이사장​, 향상교회 은퇴

복음병원 영욕의 70년 약사(21)

-김해병원 인수에서 처리논의까지-

 

1장 김해복음병원 사태

 

김해복음병원(이하 김복원이라 칭한다)은 고신대 복음병원의 곁가지에 불가했지만 김복원으로 인해 복음병원과 고신총회가 입은 정신적 재정적 손실은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다. 김복원은 경영상의 부실은 물론 교단 지도자들의 도덕적 부패의 온상이 되었다. 당시 병원의 실무자 중에는 그분들이 그러고도 과연 천국에 갔을까?”라며 탄식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정도다.

 

1. 김해병원의 인수와 부채의 폭등

 

1) 1982년 병원인수.

당시 정부(보건사회부)가 주도하여 1981년도에 의료법인 용지재단을 설립하고 무의 도시지역과 농어촌에 많은 병원들을 세웠다. 그중 하나가 김해병원이었다. 그러나 김해병원은 개원도 못 하고 부채만 지고 있었는데 보사부가 고신대 의과대학에 이 병원의 인수를 강권하였다. 그러나 당시 복음병원의 사정상 김해병원의 인수가 법적으로 불가하다는1) 이유로 의예과 기성회 간부들 몇 사람들(박영훈, 박노정, 윤은조)이 인수하여 김해복음병원으로 개명하고 복음병원과 연계하여 운영을 시작하였다.

 

2) 1983년 박영훈 이사장 취임

5월에는 의료기관 개설 허가를 받았고(병원장 김완식), 9월에는 복음병원 의료원장 박영훈 이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한편 당시 총회는 김복원 문제에 대해 갈팡질팡하는 태도를 취했다. 1983년 총회 직전에 열린 고려학원 이사회는 김복원을 교단이 인수하지 않기로 결의하고 이를 총회에 보고하였는데, 그다음 해(1984)에는 인수하기로 이를 번복 결의하였다. 이것은 이금조 목사가 학교법인 이사장이 된 것과 관련이 있다. 증언에 의하면2) 이금조는 복음병원 원장과 기성회 위원들이 개인적으로 김복원을 인수하였지만, 사실상은 복음병원이 인적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는데 이를 개인에게 맡겨두는 것은 합당치 않다.’라는 주장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이 병원을 인수한 사람들과 인수과정 그리고 운영상의 문제가 많으므로 총회가 인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당시 인수 및 운영에 직접 관여했던 주체들은 총회가 개인 재단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주장하였다.3) 이런 혼란은 결국 경영에 직접 연결되었는데 소위 주인 없는 병원이 된 것이다.

처음에는 분명히 개인들이 인수했고 소유권도 법적으로 그들에게 있었지만, 개인 소유이면서도 그 운영은 복음병원의 분원처럼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 김복원의 원장과 의사, 간호사 등의 급여를 - 나중에는 검사비까지도 복음병원에서 부담했다.

 

4) 급격한 부채증가

이렇게 복음병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도 부채는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983년 인수 당시 약 6억 원이었던 부채가 불과 2년 만(1985)16억 원으로 불어났고, 1991년에는 73억 원으로 급격히 증가되었으며, 1995년에는 92억 원으로 늘게 되었다. 그리고 제48회 총회(1998)는 교단미래정책연구위원회(위원장 정주채)의 발의로 김복원과 복음병원에 대해 경영진단을 실시하기로 결의하였는데, 다음 해(1999) 2월에 나온 경영진단에 의하면 당시 김복원의 부채는 약 180억 원이었고 이 중에서 부외부채(장부에 없는 사채)가 무려 100억 원 가까이 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김복원은 교단 내 모모 인사들의 사채 놀이터가 돼 있었던 것이다.

 

2. 김복원의 처리에 관한 논의

 

1) 1차 처리위원회

김복원의 경영이 악화되고 부채가 급격히 늘어나자 1993년 제43회 총회는 김해복음병원처리위원회(위원장 김인규 목사)를 구성하고 처리를 시도했으나 그러지를 못했다. 위원장 김인규 목사가 생존해 있을 때 필자는 그를 찾아가 위원회의 활동과 그 결과에 대해 문의해 본 적이 있는데, 그때 그는 사채를 빌려준 목사·장로들의 반발이 심해서 매각 처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위원회가 한 일은 고작 이자를 연 23%나 받고 있는 채권자들을 설득하여 12~15%로 낮추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고 하였다.

 

2) 2차 처리위원회

1994년 제44회 총회는 김해복음병원처리위원회의 보고를 받은 후 위원회의 존속을 결의하고 매각 처리하는 일을 계속해서 추진키로 하였다. 2기 처리위원회 위원장은 곽삼찬 목사였는데, 위원회에서는 김복원을 매각 처리하기보다 전문경영인을 세워 경영을 쇄신하기로 하고 박노정 장로를 이사장으로 세웠다. 이때 부채증가는 잠시나마 다소 진정되었다. 이때 부채증가가 다소 진정되었다는 것은 그동안 김복원이 주인 없는 병원으로 그 누구도 재정을 감독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부채는 곧 다시 빠른 속도로 증가하였다.

 

3) 3차 논의

3차 논의는 교단미래정책연구위원회(이하 미정연이라 칭한다)에서부터 다시 시동이 걸렸다. 미정연은 복음병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교단의 장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는 판단 아래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였다. 이어 미정연은 19989월 초에 복음병원의 미래에 대한 공청회 형식의 세미나를 개최하였고 여기서 두 병원의 경영진단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고 미정연은 제48회 총회에 이를 건의했고 총회는 이 건의를 받아들여 두 병원을 경영진단전문법인체에 맡겨 진단을 실시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런데 총회의 결의를 무시하고 뒤에서 이를 조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의를 생각지 않고 주로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려는 의도로 관계자들에게 압력을 행사하여 총회의 결의를 뒤집거나 무력화시켰다. 이와 같은 일부 인사들의 막후 조종은 고신역사에서 오랫동안 지속돼 왔고 결국은 고신교단이 파국에 직면하는 자리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4) 경영진단

기업경영전문업체에 맡기는 총회의 결의에 반대한 사람들은 주로 두 병원의 경영에 직간접으로 관련된 사람들이었고 그 중심에는 이금조 목사가 있었다. 그들은 객관적인 진단전문업체에 맡기면 복음병원의 불법이나 비리 등이 드러나게 될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러면서 심지어 이금조는 자기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단팀을 구성하여 자체적으로 진단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대해 당시 총회 임원 중에 일부가4) 강하게 반발하면서 그들의 시도는 무산되었으나 결국 총회임원회는 교단 내 인사들인 하호영(팀장), 김경화, 김종복의 세 장로로 진단팀을 구성하였다.

이들은 수 개월에 걸쳐 두 병원의 경영상태를 진단하였고 그 결론은 복음병원은 경영혁신을 이루어야 하고 김해복음병원은 조속히 매각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주

1) 복음병원은 고신대학교에 속한 병원이었으므로 교육부 관할 하에 있었고 김해병원은 보건사회부의 관할에 속했다.

2) 김복원 처리를 위한 제1차 처리 위원들로부터 청취

3) 필자가 기독교보 편집국장이었을 때 김복원의 인수 시 주요 역할을 했던 윤은조 장로와 전화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윤 장로는 개인이 인수한 기관을 총회가 빼앗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4) 이금조의 진단팀 구성에 가장 강하게 반발하였던 총회 임원은 당시 부회계였던 박재한 장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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