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령 목사(복음자리교회 담임)
이세령 목사(복음자리교회 담임)

야곱은 요셉을 작은 자로 사랑하였다. 그리고 요셉은 17세의 소년으로 형제들의 악을 아버지에게 가지고 옴으로 악과 거리를 두고 싸우는 전사로 소개한다. 야곱의 역사 단락의 주제는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다. 창세기의 족장 역사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중 번성에 대한 성취 과정을 다룬다. 번성이란 큰 문맥과 작은 자인 야곱이 가진 가까운 문맥 흐름 속에서 요셉이 악과 싸우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다르게 말하면 문맥은 번성이란 약속이다. 악과 싸우는 것이 약속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1. 성경해석에 있어 연속과 불연속, 변곡점 이해.

야곱의 역사 단락은 시작하자마자 요셉을 소개한다. 그리고 바로 요셉이 17세의 소년이며 형제들과 같이 양을 치고 있고, 형제들의 악을 아버지에게 가지고 온다고 소개한다. 악과 거리를 둔 요셉의 정체성을 이미 앞의 글에서 보았다. 그렇다면 요셉은 형제들과 달리 악에 민감하고 저항하는 사람이 되는 과정을 알 수 있는가? 우리는 알 수 없다. 요셉이 라헬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정보 외에는 17세 이르기까지 어떤 내용도 전달하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로서 우리는 요셉이 어떻게 악과 싸우는 전사가 되었는지를 알 수 없다.

 

1) 악과 싸우는 일에 있어서

단지 악을 아버지에게 가지고 왔다는 사실에서 악과 저항하는 것이 아버지 야곱에게 합당한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모습으로 악과 저항함이다. 야곱이 이런 요셉을 고자질로 여기고 책망했다는 말이 없다. 앞서 살핀 대로 르우벤이 서모와 간통을 한 것, 시므온과 레위가 폭력으로 세겜 거민들을 학살한 일등과 같은 사건으로 야곱의 집의 질서와 몰살의 위기가 있었음을 보았다. 형제들의 악은 야곱의 집을 위태하게 만들었다. 야곱은 르우벤의 장자권을 박탈하고, 시므온과 레위의 잔인함으로 말미암아 피난을 가야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악과 야곱의 집의 번성을 위태롭게 만든다는 것과의 상관관계를 알게 된다. 요셉도 그 과정에서 배우고 익혔다고 추정할 수 있다. 세겜의 디나 사건으로 인해 야곱은 모든 이방의 신상과 물건들을 묻고 벧엘로 갔다. 이방의 삶과 악과 연결되었다고 볼수 있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자란 요셉이다. 이런 정도를 본문을 통해서 추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우리는 요셉이 어떻게 악과 싸우는 사람이 되었는지 확정할 수는 없다.

분명한 사실은 악과 싸우는 요셉으로 소개하고 이런 방향성이 일관성 있게 그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그가 애굽에 팔려간 후에도 보디발의 아내에게서 받은 유혹을 큰 악으로 규정하고 피하며 저항했다. 요셉이 애굽이란 상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처음 소개한대로 악과 싸우는 사람이란 일관성을 유지한다. 그가 감옥에 갇혀서도 간수장에게 인정을 받았고, 이후 바로 앞에 선다. 바로 앞에서 흉한 소가 살진 소를 잡아먹는 7년간의 흉년을 극복하기 위해 준비하였다.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흉년은 악한 것이다. 악과 싸우는 요셉이란 인물의 지속적인 일관성 있는 삶을 그린다. 그리고 애굽에 곡식을 사러 온 형제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악의 문제는 제기된다. 형제들을 정탐군으로 몰면서 형제들이 행한 악과 죄를 자각하게 하고(42:21-22) 후회하며 결국은 베냐민을 버리지 않을 때까지(44:27-34) 압박을 한다. 형제들이 같은 악을 저지르지 않는 것을 확인하기까지 압박했다. 그리고 나서야 자신을 드러내고 화목한다(45:1ff).

요셉이 평생을 싸워 온 악은 죽음과 연결된다. 사람을 죽이는 짐승이 악한 짐승이고(37:33), 흉년의 상징이며 살진 소를 잡아 먹는 소가 흉한(악한) 소이다(41:20). 형제들의 악은 세겜 사람들을 학살했고, 요셉을 죽이거나 팔아 넘긴 것이다(50:17, 20). 악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와 반대된다. 야곱의 시대에 하나님의 약속은 번성을 향해 간다. 씨와 생명이 약속이다. 그런데 악은 이것을 무너뜨리고 있다. 그러므로 요셉이 싸운 악은 하나님의 약속을 파괴하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원인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요셉의 삶에서 악과 싸우는 일관된 모습에는 어떤 계기도 없다. 처음 등장할 때(37:2)부터 시작해서 창세기 내에서 그의 기록이 마치는 죽기 직전까지(50:20) 요셉은 일관되게 악과 싸웠다. 악이 바로 야곱의 역사의 흐름을 방해하는 세력이기 때문이다. 번성을 억제하는 세력이다. 아버지 야곱이 죽은 후에 야곱이 형제들에게 보복하는 일을 감행했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왜곡되었을까? 오히려 요셉은 형제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자손까지 기르겠다고 읍소하며 안심시킨다(50:21).

이렇게 요셉의 악과 싸우는 일관성은 야곱의 역사 단락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어떤 계기가 있어 전에는 악과 타협했는데 변화의 변곡점이 있어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어(바울같이) 이제는 악과 싸우는 전사가 되었다는 기록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기사의 흐름이 일관성을 가지는가 아니면 변곡점과 같은 변화의 사건이 있는가를 잘 보아야 한다. 요셉은 변곡점이 없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악과 싸웠다.

 

2) 꿈을 해석하는 능력에 있어

그리고 꿈에 대한 해석 능력도 요셉이 어느 시점에 가졌다는 말이 없다. 두 번 연속된 세 번의 꿈이 진행되면서 요셉 기사 전체가 진행을 하게 된다. 어떤 변화의 시점이 없다. 처음 자신의 꿈은 해석하지 않는다. 소개만 한다. 두 번째 관원들의 꿈은 해석을 하면서 해석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린다(40:8). 그리고 바로의 꿈을 해석하면서 하나님이 정하시고 속히 할 일을 보이셨다고 한다(41:32). 요셉은 형제들이 애굽에 곡식을 사기 위해 찾아왔을 때 꿈을 기억한다(42:9). 따라서 요셉은 꿈을 처음부터 해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어떻게 성취될 것인지까지 알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그가 형제들 위에 높아짐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길을 열어갈 것을 알았다. 악과 싸우는 심령이 깨끗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다(5:8).

 

3) 형제들의 태도에 대해

유다는 분명한 변곡점이 있다. 요셉을 팔고, 형제들을 떠났다가 다말을 통해 씨에 대한 이해가 변회돤다. 네가 나보다 옳다는 인정이 변곡점이 된다. 다시 형제들에게 돌아가고 아버지의 집에서 흉년을 극복하고, 요셉과의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럼으로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가 장자로서의 자격이 박탈당하고 나서 유다가 장자로 인정된다.

다른 형제들도 요셉에 대한 태도의 변화가 있다. 요셉이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압박을 하자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였도다.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42:21-22). 과거 요셉을 팔았던 일에 대한 기억을 통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변화의 길로 나아간다. 이런 지점들이 바로 사건의 변곡점이 되고 해석이 관심을 가지게 된다.

 

2. 요셉 이해: 악과 약속과의 관계

요셉이 악과 싸우는 삶을 롬5장과 비교하면서 이해해보자. 바울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가 있었지만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5:13). 그러나 죽음이 왕노릇하는 현실을 통해 율법이 있기 전에 악이 존재했다고 본다. 요셉의 시대는 모세의 시대 이전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율법이 있기 전이다. 그러나 죽음이 있기에 죽음과 악과 죄가 연결되었음은 분명하다. 악한 짐승, 이 큰 악, 흉악한 소 등의 표현이 이를 말한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상황을 악으로 규정한다.

죽음은 하나님이 야곱의 집에 주신 번성의 약속을 무너뜨리는 힘이다. 요셉을 빼앗고 나아가 시므온을 가두고 더욱 베냐민까지 없어질 위기에 몰리는 상황은 바로 악이 지배하는 죽음의 위협이다. 그리고 이는 번성을 가로막는 세력이다.

요셉을 소개하면서 악과 싸우는 소년(37:2)으로 소개한 것은 하나님의 번성의 약속을 무너뜨리는 죽음의 세력과 싸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야곱이 형 에서와 밧단아람의 외삼촌 라반의 위협, 그리고 디나 사건으로 인한 죽음의 냄새가 주변에 난 사실 등을 미루어 야곱의 집 주변에는 항상 죽음의 냄새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들을 잘 극복해 왔다. 야곱에게서 요셉에게 이어지는 신앙적 관계가 적시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작은 자인 요셉을 돌보고 사랑하는 야곱의 태도는 중요하다. 자신의 삶 전체가 작은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죽음의 위협을 극복했는지를 보여준다. 요셉은 이런 과정들을 보면서 악과 죽음이 어떻게 아버지의 집을 위협하는지를 체득하고 있다.

애굽 전체를 뒤덮은 심한 기근을 통해 죽음의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러나 요셉이 악과 싸운 삶,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지혜를 통해 그 죽음의 냄새를 극복하고 삶과 생명의 길을 열어놓았다. 이런 과저에 야곱의 집도 함께 하였다. 그리고 요셉과 형제들 사이에 있던 미움과 갈등도 해소되고 하나가 되었다. 야곱은 모든 잃어버렸던 것을 찾고 평안히 약속의 땅에 묻힌다.

악은 죽음의 형태로 찾아와서, 약속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위협한다. 그러나 악과 싸우는 요셉의 삶은 야곱의 집을 지켜낸다. 그리고 나아가서 욘 세상에 미치는 흉년의 그늘을 통한 죽음의 그늘을 극복하면서 번성하라는 창조의 질서를 유지하게 만들었다. 참된 하나님의 형상이 다스린 결과로서 선한 세상이다. 선한 세상은 죽음의 위협인 악을 극복함으로 사람들이 서로 돕는 존재로 사는 삶의 자리이다. 요셉은 첫째 야곱의 집을 살리고, 그리고 창조세계를 살린 역할을 한다.

다음은 요셉의 꿈과 형제들의 미움을 살핀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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