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교회포럼(대표회장 권오헌 목사) 2023 충청권 모임이 13일 대전한밭교회 예배당에서 열렸다. "기후, 환경, 저출산에 직면한 우리 사회와 교회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에 김대중 박사, 손영광 박사, 서윤화 목사가 강사로 나섰다.  

2023 미래교회포럼 충청권 모임이 대전한밭교회 2층 초등부실에서 열렸다.
2023 미래교회포럼 충청권 모임이 대전한밭교회 2층 초등부실에서 열렸다.

김대중 목사(한밭교회 담임)는 "지구온난화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 다른 대처"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소위 좌파 환경론자들의 비관적인 입장과는 달리 복음주의 우파의 입장을 가지고 균형 있게 기후 문제를 다루었다. 

발제하는 손영광 박사
발제하는 손영광 박사

손영광 박사(한국전기연구소 선임연구원, 바른청년연합대표)는 "환경종말론의 진실과 우리사회의 교회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손 박사는 종말론적 환경론을 "환경이라는 이름의 종교"라고 정의했다. 손 박사는 환경 종말론은 '동물권과 물고기의 생명과 아픔을 대변한다고 하면서도 인간 생명체인 태아를 죽이는 낙태에 찬성하는 반성경적이고 반인륜적인 잘못된 신념'이라고 꼬집었다. 

발제하는 서윤화 목사
발제하는 서윤화 목사

서윤화 목사(험블 미니스트리 대표)는 "저출산 위기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저출산과 관련해서 중요한 한 축이 낙태"라는 점을 지적하며, 이 시대의 유아 인신 공양 제사는 낙태 산부인과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외쳤다. 서 목사는 낙태 문제는 영적 문제이기에 교회가 압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대중 박사의 "지구온난화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 다른 대처" 발제문 전문. 


발제하는 김대중 박사
발제하는 김대중 박사

지구온난화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 다른 대처

김대중 박사

I. 서론

지구온난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날이 갈수록 커진다. 태풍, 쓰나미, 가뭄 같은 자연재해가 있을 때마다, 또 유달리 더운 여름이나 평년보다 더욱 따뜻한 겨울을 맞이할 때마다 지구온난화 또는 기후변화라는 용어는 미디어의 단골 메뉴로 올라온다. 온난화에 따른 세기말적인 전망이 나온 게 이미 20세기 말이었고, 빙판 위에서 어디를 갈지 몰라 당황한 듯 보이는 북극곰을 포함하여 미래 인류의 생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십수 년 전부터 들어왔다.

이에 따라 선진국을 중심으로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정책들이 제시되었고, 그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주제는 단연 온실가스, 그중에서도 탄소였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은 그 굵직한 내용들만 보면, 1992년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유엔 기본 협약(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을 시작으로 1997년에는 40여 개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 2015년에는 197개국, 즉 거의 전 세계 국가들이 동참한 파리협정(Paris Agreement)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도 OECD GDP 상위 순위의 회원국으로서 이 대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는데, 2020년 국회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탄소 중립 선언을 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지구온난화를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탄소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대해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논란의 여지가 없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적어도 미국에서는 이러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입장에 있는 많은 사람이 과학계뿐 아니라 정치경제계, 그리고 신학계에 있음을 발견한다. 그 가운데에는 과학자, 경제학자, 각 종교계 지도자의 지지를 등에 업은 복음주의자들도 있는데, 이들에 대해 사람들은 보수주의자, 회의주의자, 코르뉴코피안(cornucopian), 또는 반대자들(dissenters)로 부르고 있으며 본 논문에서는 복음주의 우파라 명명하고 있다.

이들은 지구온난화를 매우 염려하기 시작하던 90년대부터 활동하면서 당시의 시각과 대처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들이 볼 때 당시 지구온난화에 관련된 환경운동은 다분히 범신론 또는 이교적 세계관이 반영된 잘못된 것으로서 적어도 복음주의자들은 바른 기독교적 세계관에 따라 지구온난화 문제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로도 이들은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지구온난화를 막으려는 국제적인 노력과 정반대의 정책 수립을 요청하고 있는데 미국 환경윤리 분야뿐 아니라 정치 경제적으로도 제법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본 논문의 목적은 복음주의 우파가 지구온난화를 보는 시각과 그들은 어떻게 지구온난화에 대처할 것을 요청하는지에 관하여 소개하고 평가하는 데 있다. 우리나라 환경윤리 분야에 거의 소개되지 않은 이러한 내용을 들어보는 것은 지구온난화에 관한 균형 잡힌 바른 입장을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II. 본론

1. 복음주의 우파의 정의와 그들의 출현

1994년 미국에서는 로널드 사이더(Ronald Sider)를 주축으로 한 기독교 목회자 및 신학자들이 지구온난화와 각종 환경문제에 대해 염려하면서 Evangelical Declaration on the Care of Creation 이란 선언문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했다. 이 서명문에는 릭 워렌(Rick Warren)이나 팻 로벗슨(Pat Robertson) 등 약 천여 명의 유명 인사들이 서명하며 동참했다. 그리고 주최 측은 후속 조치로 교회와 학교에 환경보호를 위한 교육 자료들을 배포하고 순회 강연을 다녔다. 본 논문에서는 이들을 복음주의 좌파로 명명한다. 왜냐하면 이 운동에 동참한 이들은 신학적으로는 복음주의자로 분류되면서 동시에 환경문제, 특히 지구온난화에 대한 시각과 대책에 있어서 일반 환경운동가들의 주장하는 바와 대체로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조적으로 복음주의 우파는 위의 선언문에 동참한 사람들의 신념과 주장 및 그들의 환경 정책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기독교인들로 구성된 그룹이다. 이들은 동일하게 복음주의적 신앙을 가지면서도 신학적, 정치적으로 보수적 태도를 보이고 있기에 여기서는 복음주의 우파라 명명했다. 제임스 답슨(James Dobson) 같은 이들을 중심으로 한 이들은 주로 미국 내에서 동성애와 낙태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는 노선을 지키고 있다.

이들 우파 목회자들과 학자들의 시각으로 볼 때 복음주의 좌파는 범신론적 세계관이 반영된 환경운동에 동참하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이들은 현재의 환경운동이 전제로 하는 세계관에 동의하지 못한다고 하여 자연을 보호하고 돌보는 데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복음주의 우파는 기독교가 지구를 파괴하는 종교이자 반자연친화적이라고 주장했던 린 화이트(Lynn White)를 비롯한 세간의 비판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발했다. 복음주의 우파는 기독교가 친환경적이어서 인간은 청지기의 자세로 자연을 돌봐야 함을 가르치는 종교이자 약자 중심의 신학과 세계관을 가진 종교임을 제대로 천명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2000년 복음주의 우파는 자신들의 신앙을 반영한 선언문인 the Cornwall Declaration on Environmental Stewardship (콘월 선언문)을 선포했다. 앞선 복음주의 좌파가 선언한 Evangelical Declaration과 마찬가지로 이 선언문 역시 약 1,500명의 저명한 목회자들 및 각 분야 학자들의 지지와 서명을 받았다. 또한, 이 선언문을 바탕으로 각종 출판물과 교육용 자료를 만들어 교회들에 배포하고 교육하고 있다.

이처럼 환경문제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가진 두 학파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이후 복음주의 좌파와 우파의 학자들은 공개 서신 교환을 통해 격렬한 논쟁을 벌였고, 복음주의 학회와 자신들이 사용하는 웹페이지를 통해서도 상대를 비판했다. 지금도 양측의 입장은 그대로 고수되고 있고 그래서 학계에서는 환경문제에 대한 주된 기독교의 입장으로 이 두 학파를 소개하곤 한다.

 

2. 복음주의 우파의 지구온난화에 대한 입장

복음주의 우파는 기존의 복음주의 진영이 주장하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신념과 대책에 중요한 신학적, 이성적 오류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러한 오류들을 제거하고 대신 바른 신학과 합리적인 시각을 가지고 지구온난화를 바라볼 것을 요청하며 국제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전과 전혀 다르게 제시한다. 이러한 우파의 주장과 그 근거가 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인간이 지구온난화를 초래했나?

환경운동가들과 복음주의 좌파는 인간이 지구온난화를 초래했다고 강하게 확신하고 있다. 인간은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대기 중에 많은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각종 온실가스를 배출해왔고, 그 가스의 양은 산업의 발달 속도와 비례하여 늘어나고 있다. 특히 화석연료의 사용과 산림 벌채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높이는 주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렇게 대기 중에 온실가스 농도가 높아짐에 따라 지구의 기온도 점차 높아지게 되었다. 이것을 설명하는 개념이 온실효과(Greenhouse effect)이다. 온실효과란 대기 중 온실가스(Greenhouse gases) 농도가 증가하게 되면 지구의 복사열이 이 가스층에 막혀 우주로 나가지 못하고 대기로 돌아오게 되면서 지구의 온도가 높아지는 현상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이 지구온난화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온실가스로 이산화탄소가 지목되었다. 많은 연구가 이산화탄소와 지구의 온도 간의 상관관계를 조사하였고 이 두 요인 간에 상당한 정도의 비례관계가 있다고 알려졌다. 이에 따라 환경운동가들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해온 인간이 스스로 지구온난화에 막대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강력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복음주의 우파는 이러한 환경운동가와 복음주의 좌파의 주장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시한다. 그들은 질문한다. 현재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게 만드는 결정적이고도 주된 원인이 인간에게 있다는 명확하고도 과학적이며 합리적 증거가 있는가? 정말로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에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마치 진화론이 많은 일반인에게 상식처럼 들릴지라도 많은 복음주의 기독교인에게 있어서는 진화론이 진리가 아니듯, 지구온난화의 원인에 관한 설명 역시 단지 많은 과학자와 환경운동가가 주장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주장을 당연한 과학적 사실로 여기면 안 된다는 의미이다. 게다가 실제로 현재 과학계에서 지구온난화의 원인에 관한 논쟁은 현재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다. 일례로 2008년 미국 상원에는 700명 이상의 각국의 과학자들이 서명하고 동참한 보고서가 올라왔는데, 그것은 인간이 초래한 지구온난화에 관해 부정하는 내용이었다. 이처럼 지구온난화에 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볼 때, 복음주의 우파가 가진 의구심은 정당성을 얻고 있다.

지구온난화와 온실효과를 언급할 때면 사람들은 늘 이산화탄소에 관심을 집중하곤 한다. 그 이유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차지하는 양이 인공적인 온실가스 중에 가장 많고(0.04%), 산업화의 진행에 따라 대기 중 농도가 급속히 증가해왔기 때문이다. , 지구온난화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가스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주의 우파는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의 주된 원인이 아닐 개연성이 많다고 주장한다. 복음주의 우파의 대표적인 신학자 중 한 명인 웨인 그루덤(Wayne Grudem)은 여러 과학 자료를 인용하며 말하기를, 지구온난화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이산화탄소가 아닌 수증기라 한다. 그 자료들에 의하면 질소와 산소가 99%를 구성하는 지구 대기 중 온실가스는 약 1%가 존재하는데, 1%의 온실가스 중 약 89%는 수증기가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 수증기가 온실효과에 미치는 영향을 약 80%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20%는 어떤 요소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그 남은 20% 15% 정도는 구름이 차지한다. 그러니 수증기와 구름을 합치게 되면, 물이야말로 전체 온실효과의 95%를 담당하기에 지구온난화의 주범은 물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나머지 5%를 담당하는 것은 온실가스인데, 그 해당 가스에는 이산화탄소 뿐만 아니라 메탄, 아산화질소, 수소불화탄소 등 여러 종류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에 실제로 미치는 영향은 매우 미미하다고 그루덤은 말한다. 이산화탄소의 온난화 지수(Global Warming Potential)가 다른 온실가스들에 비해 가장 낮은 종류에 속한다는 사실도 그의 주장에 힘을 보태준다. 예를 들어, 이산화탄소는 메탄가스의 온난화 지수의 20분의 1, 아산화질소의 370분의 1에 불과하다.

또 한 가지 짚어볼 수 있는 것은,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지목되는 이산화탄소의 대기 중 분량에 대해 과연 인간이 죄책감과 책임 의식을 느껴야 마땅한가 하는 것이다. 복음주의 우파의 신학자요 경제학자인 칼빈 바이스너(Calvin Beisner)는 지리학자이자 전직 기후학 담당 이사였던 로버트 발링(Robert Balling)의 자료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2010년 당시 전체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0.039%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이산화탄소의 책임을 오롯이 인간에게 돌릴 수 없다. 물론 인간이 이산화탄소의 증가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변동하는 태양복사 에너지의 증가가 훨씬 더 큰 영향을 준다. 다시 말하자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의 대부분은 인위적인 증가라기보다는 자연적인 증가로 말미암았다고 본다는 것이다. 흑점 폭발로 인해 태양복사 에너지가 늘어나게 되면 지구에 도달하는 열에너지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이에 따라 지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바다 표면으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수증기가 대기 중으로 증발하게 되는데, 그 이산화탄소는 인간이 발생시킨 이산화탄소의 양을 초월한다.

이에 관련한 다음과 같은 증거도 있다. 산업화가 진행되며 지구의 온도도 상승곡선을 그린 것도 사실인데, 유달리 1940~1970년대는 온도가 거꾸로 내려갔었다. 이때야말로 각종 개발과 생산이 왕성하게 일어났을 때인데 어째서 이러한 온도의 역전 현상이 일어났을까? 이는 무엇보다도 태양복사 에너지의 감소가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되었고 지구온난화의 인위적 요인을 주장하는 학자도 동의했다. 이처럼 이산화탄소와 각종 온실가스 배출을 조절한다 해도 태양복사 에너지의 변동은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모든 변수를 다 상쇄하는 강력한 변화를 일으킨다. 다시 말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다 해도 태양열이 지구로 더 많이 유입된다면 지구온난화는 지속 또는 가속될 것이다.

이렇게 복음주의 우파가 제시하는 과학 자료들에 따르면 지구의 온도상승은 인간의 산업활동으로 말미암았다기보다는 자연적인 주기에 따라 일어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이 나온다.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는 그 범위가 넓고 워낙 그 변화에 관계된 변수들이 많기에 그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규명하기 매우 어렵다고 한다. 따라서 복음주의 우파는 지구온난화의 직접적이고도 주요한 원인을 인간의 모든 활동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및 그에 따른 온실효과로 단정하는 것은 과학적이지도, 합리적이지 않다고 본다.

 

2) 지구온난화는 인간에게 해로운 것만은 아니다

지구온난화가 지속된다면 인류는 큰 피해를 당하고 심지어 멸망할 수도 있다는 음울한 전망이 있어왔다. 온난화로 섭씨 몇 도 이상 지구 기온이 올라가게 되면 극지방의 얼음이 다 녹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최악의 경우 인류는 멸망할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해안가에 거주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홍수나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를 더 자주 당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큰 피해를 당할 것이라는 경고도 있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음울한 전망에 대해 복음주의 우파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한다. 지구온난화가 과연 인간에게 부정적이기만 한 현상인가? 그리고 과연 이로 인해 인류는 멸망할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 자명한가? 아니면 반대로, 지구온난화는 인간의 문명과 삶에 긍정적인 효과도 가져오지 않을까? 이러한 질문을 제기하면서도 복음주의 우파는 지구온난화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일례로, 온난화로 인해 일부 지역들에서는 열사병과 병충해가 늘어날 수 있다. 허리케인도 더 많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러한 부정적인 결과를 상쇄할만한 긍정적인 결과도 있을 것이고 그러한 반대급부도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그렇다면 지구온난화로 인해 인류가 얻게 될 유익은 무엇일까? 우선 온도가 높아지며 더 풍성한 농작물 재배가 가능할 수 있다. 이전에는 일 년에 한 번만 농사를 지을 수 있던 지역이 온난화로 이모작, 삼모작을 시도할 수 있게 되고, 해외수입을 통해서만 아열대 과일을 먹을 수 있던 지역이 기온이 높아지며 그러한 과일을 재배할 수 있는 곳으로 변모할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아열대나 열대지방에서만 재배되는 망고, 패션프루트, 파파야 같은 과일을 대한민국에서도 재배하고 있다는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지구온난화는 인간의 건강을 위해서도 더욱 유리한 면이 있다. 대체로 질병은 따뜻할 때보다 추울 때 많이 생긴다. 특히 감기와 독감도 바이러스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온난한 기후의 지역에서는 덜 활동한다고 한다. 그래서 온난한 기후는 병리학적 측면에 있어서 인간에게 좀 더 좋은 환경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사람들이 극심한 추위 때문에 죽는 경우가 열파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보다 훨씬 많다는 미국 내무부 통계자료가 있다. 질병에 취약한 노인들이 따뜻한 동남아와 미국 남부(텍사스, 플로리다) 지역으로 이주해 사는 현실도 온난화의 유익을 지지해 주는 실제적 근거이다. 또한 지구온난화의 특징을 보면 기온이 낮은 고위도에서는 온도상승이 좀 더 높지만, 본래 기온이 높은 적도 같은 저위도에서는 상대적으로 온도가 많이 상승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점을 고려하면 지구온난화는 전 지구적으로 보면 인간의 신체에 좀 더 적합한 기온이 된다는 이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3) 지구온난화를 저지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과 희생이 든다

복음주의 우파는 지구온난화를 저지하기 위해 인류가 지급해야 하는 막대한 비용과 희생에 대해 질문한다. 현재 인류는 전쟁, 가난, 코로나 팬데믹 같은 중요하고 시급한 여러 문제를 당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구온난화 저지를 최우선의 과제로 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인류는 지구온난화 문제에 지나치게 집중함으로써 혹시 더 가치 있는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지구온난화를 저지하기 위해 쏟아붓는 엄청난 에너지와 재정을 더욱 시급하고 중요한 다른 과제에 돌려야 하지는 않을까?

복음주의 우파를 주도하는 이들이 종종 이용하는 자료에는 코펜하겐 컨센서스(Copenhagen Consensus)가 있다. 코펜하겐 위원회는 인류의 유익을 위해 500억 달러라는 제한된 재원을 쓴다는 가정 상황을 제시했다. 그래서 그 재원으로 어떤 분야에 지출할 때 전체 인류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에 관해 유명 경제학자들을 위원으로 소집하여 면밀히 조사 연구했는데, 그 결과물이 코펜하겐 컨센서스이다. 위원회가 인류를 위해 필요하다고 선정된 총 17개 항목을 두고 검토한 결과는 이러하다. 가장 많은 재정은 무엇보다도 에이즈를 퇴치하기 위한 연구에 쓰여야 하고, 둘째로는 철분의 부족으로 빈혈을 겪고 있는 여성과 아이들을 위해 식량 공급을 하는 데 쓰여야 한다고 보았다. 반면 가장 적은 재정(16)이 교토의정서 실행에 쓰여야 한다고 보았다. 경제학자들이 볼 때 이 조약을 실행하는 연간 약 1,500억 달러의 비용은 그 이득이나 결과물에 비해 지나치게 많다는 의미이다.

복음주의 우파가 한 가지 더 우려하는 것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지원을 미루면서 대신 지구온난화 저지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한다고 해도 그러한 노력이 그다지 큰 결실을 보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일 인간이 이 거대한 지구의 기후와 온도를 변화시킨 주역이라는 명제가 사실이라면, 인간의 능력과 노력으로 그 변화를 원점으로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온난화 현상의 주된 원인 제공자가 인간이 아니고 사실은 자연적 주기 또는 태양열에 의해 온도가 상승한 결과라면, 온난화를 막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비용 대비 효과가 무척 낮고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3.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까지 복음주의 우파의 지구온난화에 대한 주장들을 보았다. 그들은 지구온난화가 인간이 초래한 것도 또한 그렇게 크게 우려할만한 것도 아니면서, 온실가스를 줄이려는 인간의 노력만으로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도 온난화를 막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지출함으로써, 그것이 아니었다면 도움과 혜택을 입을 수 있었던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이 계속되는 모순되는 상황에 인류가 처해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복음주의 우파는 이전의 환경운동가들과는 전혀 다른 대처법을 제시한다.

 

1) 현재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

복음주의 우파의 최우선 관심은 현재의 가난한 사람들이다. 현재 지구촌의 셀 수 없는 사람들이 물 부족과 가난,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다. 복음주의 우파는 질문한다. 이렇게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를 눈앞에 두고 이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천천히 일어나고 있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는 지구온난화를 막으려고 천문학적인 재정을 쏟아붓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또한 그렇게 많은 재정을 지출한다고 해도 수십 년 뒤의 지구온난화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그 재정으로 지금 고통받고 죽어가는 가난한 이웃들을 살리고 돕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옳은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루덤을 비롯한 복음주의 우파는 코펜하겐 컨센서스 같은 연구 결과를 근거로 재정 사용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지구온난화 저지를 위해 사용하기보다는 최빈국에 대한 경제적 물자적 지원이 인류를 위해 더욱 유익하다고 주장한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의 연구에 의하면 연간 700억 달러 정도면 제3세계 국가에 보건, 교육, 위생시설들을 공급할 수 있다. 또한, 교토의정서 실행비의 60분의 1의 재원이면 말라리아로 죽는 8,500만 명을 살릴 수 있다고 한다.3세계 사람들이 기후변화로 인해 기근이나 혹염이 심해져 고통당하지 않도록 깨끗한 식수와 에어컨, 선풍기 같은 냉방기기를 제공할 수도 있다. , 예측하기 어렵고 언제, 얼마나 심각하게 벌어질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미래의 지구온난화를 막는 데에 막대한 재정을 들이기보다는 지금 당장 굶주림과 질병, 물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는 가난한 국가와 그 국민에게 구제물자와 구제금을 보내주는 것이 좀 더 인류애를 실천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2) 재생에너지보다 화석연료 사용

복음주의 우파는 현시점에서는 일부 선진국들을 제외한 여러 나라의 경우 값비싼 재생에너지보다 가성비가 높은 화석연료를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계적으로 볼 때 원자력을 제외하면 전기에너지를 가장 저비용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자원은 화석연료이다. 2018년 한국전력공사 보고서에 따르면 석탄을 에너지원으로 한 전기는 1kWh83원으로 구매하는데 비해 태양광으로부터 얻은 전기는 180원으로 구매한다. 일반적으로 풍력, 태양광, 조력 등 재생에너지원이 화석에너지보다 두 배 이상 비싸다. 그런데 탄소중립선언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인류가 탄소배출 저감을 위해 노력해 온 내용을 보면 재생에너지의 사용 비중을 높이고 화석연료의 비중은 낮추는 것이 핵심이었다.

복음주의 우파는 지금 정책적으로 화석연료 대신 재생에너지 비중을 급격히 높이게 된다면 그로 인해 경제적 약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을 우려한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대신 값비싼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려 한다면 결국 전기에너지와 교통비의 상승과 환경세 부과가 불가피하다. 경제발전에도 제약이 따른다. 그렇게 될 때 가장 크게 고통을 겪게 되는 대상은 국제적 차원에서는 개발도상국가가 되고, 국내적으로는 경제적 약자들이 될 것이다. 그루덤은 말하길,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지만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삶의 질을 지나치게 저하하거나 심지어 건강과 생명을 상하게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전기료가 비싸서 한겨울에도 많은 이웃이 추위에 벌벌 떨거나 어두운 조명 아래 살아가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3) 정책적 규제 반대

복음주의 우파는 지구온난화를 저지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기업에 법적인 규제를 가하는 데 반대한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서는 큰 비용이 들고 일부 경제체제에 있어서 수정이 불가피한데, 국민과 기업이 그 목표를 위해 자율적으로 참여하고 실천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반드시 법적인 규제 같은 강제력이 동원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는 20156월에 2030년 온실가스 배출전망(BAU) 대비 37%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는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 기업들은 반드시 탄소포집 및 저장장치를 마련하거나 탄소배출권을 구입해야 한다.

복음주의 우파는 이러한 법적 제재가 자유시장(free-market) 경제에 위배된다며 강력하게 반발한다. 바이스너는 이렇게 기업에 탄소배출에 관한 법적 규제를 가하게 되면 기업의 활동이 위축되고 결국 국가적으로 총생산량이 줄어들고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이루는데 장애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경제발전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 누구보다도 가난한 이웃이 가장 어려움을 겪게 될 공산이 크다.

 

4. 복음주의 우파의 세계관

같은 온난화 현상을 두고 복음주의 우파는 왜 이렇게 다른 해석을 내놓고 다른 대책, 다른 윤리적 적용을 제시하고 있을까? 그것은 그들의 세계관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환경윤리를 연구했던 조셉 셸던(Joseph Sheldon) 박사는 환경문제에 대한 대처법이 이렇게 다른 것은 근본적으로 세계관의 차이에서 온다고 설명했다. 환경문제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윤리적 주체인 인간과 자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에 대한 다른 관점들이 현 상황에 대한 상이한 해석과 대책을 낳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복음주의 우파의 세계관은 다른 환경운동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과 어떻게 다를까? 많은 공통점과 더불어 차이점이 발견되지만 특히 기후변화에 관련하여 그들이 가진 세계관을 신, 인간, 피조 세계를 중심으로 간략히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은 이 피조 세계와 구별되는 창조주이시다. 대다수 타종교와 일부 복음주의 좌파 기독교 환경운동의 특징 중 하나는 신과 자연을 동일시하는 범신론적 또는 만유재신론적 경향이 있다. 일례로 생태신학자 샐리 맥페이그(Sallie McFague)는 은유신학을 통해 지구를 하나님의 몸으로 여길 것을 요청하는데, 그래서 그녀는 환경오염 및 이산화탄소 배출, 그리고 그에 따른 지구온난화로 말미암은 자연의 변화를 하나님의 몸이 손상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복음주의 우파는 콘월 선언문 서두에서부터 초월적인 창조주 하나님을 언급하며 신과 피조세계의 분명한 구분을 천명한다. 이 창조주 하나님은 그와 전혀 별개의 피조물인 우주 만물을 통치하는 이고 주님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고 인간에 대한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는 분이다. 사랑하기에 인간을 창조했고, 인간을 돌보고 지키며 그를 위해 아들을 희생했다. 따라서 인간이 아무리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잘못된 행동을 한다 해도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하는 인간이 모두 멸망하는 일이 없도록 모든 피조물을 지키고 보존할 것이다. 그루덤은 말하기를 이러한 신념은 노아의 홍수 이후에 주셨던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하나님은 다시는 노아의 때와 같이 온 세상을 물로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라 하셨고 그 약속은 최후의 심판 전까지 하나님의 성품에 따라 신실하게 지켜질 것이다. 그의 성품은 능력과 신실함, 지혜로움으로 대표된다.

두려움은 곧 손상된 믿음의 반영이다. 온난화로 말미암아 극지방의 얼음이 다 녹아 온 인류가 멸망하게 되리라는 주장은 창조주이자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와 믿음에서 기반한 것이 아니다. 복음주의 우파는 크리스천이 지구온난화를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과 피조 세계를 사랑으로 돌보시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을 의미한다며 지나친 두려움을 경계하라고 주장한다.

둘째,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복음주의 우파에서 주로 거론하는 두 가지 특징은 존엄성과 창조성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유일한 피조물이라는 데에서 인간은 여타 피조물과 구별된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 피조물들의 가치와 돌봄의 순위를 매긴다면 인간이 우선이 되어야 하고, 그다음이 여타 피조물이다. 그래서 복음주의 우파는 인간을 다른 피조물과 비교하는 마태복음 6:26과 마태복음 10:31을 종종 거론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다. 이는 복음주의 좌파와 일반 환경운동가들이 가진 세계관과 상이하다. 예를 들어, 로렌 윌킨슨(Loren Wilkinson)과 밴 다이크(Van Dyke)는 인간을 여타 피조물들의 형제요, 그들을 섬기는 종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복음주의 좌파의 인간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의이다.

앞서 복음주의 우파는 하나님을 무엇보다도 창조주로 고백하고 있음을 봤는데,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창조성으로도 설명하고 있다. 바이스너는 말하길 하나님을 닮은 인간은 창조적이고 생산적이다. 이는 인간을 주로 탕자, 파괴자, 소비적 존재로 보는 복음주의 좌파의 부정적 시각과 대조적이다. 복음주의 우파가 보는 인간은 비록 타락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을 닮은 인간의 존재와 활동은 자연에 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인간은 하나님이 본래 창조하신 모습으로 자연을 아름답게 회복시킬 수도 있어서 황무지와 같은 안 좋은 자연환경은 아름다운 정원으로, 그리고 사막을 농경지로 만들 수도 있다. 이러한 창조적 능력으로 인해 혹시 지구온난화로 인해 더 많은 자연재해가 정말 일어난다고 해도 인간은 최첨단 과학기술을 발달시키면서 자신의 생존과 복지를 효과적으로 지켜내고 지구를 모든 생물이 거주하기 좋은 거주지로 만들어 낼 것이다.

셋째, 복음주의 우파의 피조 세계에 대한 시각은 한 마디로 친구이자 적(half friend, half enemy)”이다. 우선, 피조 세계 즉 자연 만물을 친구로 보는 이유는 창조의 온전함 때문이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지구를 창조하며 좋았더라”(개역개정)는 표현을 여러 차례 하셨다. 그루덤은 설명하기를 이때 좋았더라는 말은 인간이 거주하기에 적합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가장 지혜롭고 전능한 건축자인 하나님이 생육하고 번성하게 된 인간이 충분히 거주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좋은환경으로 창조했기 때문에 지구는 풍성한 자원과 견고한 땅을 보유하고 있다. 쉽게 망가지거나 쉽게 고갈되지 않는, 온전한 거주지요 풍성한 창고로 창조되었다. 그래서 복음주의 우파는 인간의 파괴력과 죄악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 지구를 쉽게 파괴할 수 없다고 본다. 설령 인간이 지구온난화를 일으켰음을 인정한다 해도 일반 환경운동가들의 주장처럼 그로 인해 인류가 멸망하는 일은 없으리라고 본다.

다른 한편, 피조 세계는 인간의 적이기도 하다. 그 성경적 근거로 복음주의 우파는 창세기 3장의 땅이 저주받은 장면을 든다. 일반 기독교 환경운동은 신학적으로 땅이 저주받은 사건을 간과한다. 반면 복음주의 우파는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은 사건으로 인해 땅으로 대표되는 자연 만물이 온전히 좋은상태를 상실하고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대표되는 나쁜 상태로 변모했음을 주목한다. 그 저주로 인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도 바뀌었고 이후 자연은 인간에게 언제나 우호적이지 않게 되었다. 인간은 왕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으나, 그의 통치에 대해 자연은 허리케인, 홍수, 가뭄, 지진, 유독식물과 뱀, 곤충, 사나운 야생동물로써 불순종하고 저항한다. 전 지구적 기후변화도 이러한 저항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5. 평가

지구온난화에 관하여 복음주의 우파가 제시하는 관점과 대처법은 다음과 같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1) 긍정적인 면

아직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하여 아직 논쟁 가운데 있는 지구온난화 이슈에 대해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건전한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것은 바람직하고 필요하다. 복음주의 좌파와 일반 환경운동은 주류 과학계와 여론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진리는 여론으로 만드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지동설 논쟁이나 진화론과 창조론 논쟁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지구온난화에 관하여 복음주의 우파가 제시하는 다른 시각과 그에 따른 다른 대처는 경청할 가치가 있다.

복음주의 우파가 지구온난화에 대해 보이는 태도는 다음과 같은 긍정적 면들이 있다.

첫째, 기독교 세계관에 있어서 경시되었던 내용을 보완했다. 복음주의 좌파와 일반 환경윤리에서 경시되었던 세계관들이 있는데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신실하신 섭리,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 그리고 저주받은 땅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소요리문답 11문은 하나님이 지혜롭고 능력있게 모든 피조물과 피조물의 모든 행동을 보존하시며 통치하신다고 고백한다. 복음주의 우파는 지구온난화 이슈에 있어서도 이러한 고백을 담아 창조주 하나님이 그의 섭리 가운데 모든 피조물을 반드시 보존하리니 두려워 말 것을 주장한다.

인간론에 있어서도 복음주의 좌파보다 좀 더 개혁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개혁주의 인간론에서 볼 때 인간은 타락했으나 여전히 창조성 같은 광의의 하나님 형상을 보유한 존엄한 존재이다. 복음주의 좌파나 여타 환경운동이 인간에 대해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면만 집중하며 그 세계관 위에 지구온난화 이슈에 접근해 왔으나, 복음주의 우파는 하나님의 형상을 재조명함으로써 인간론에 있어 경시되어 온 인간의 긍정적인 면을 보강했다.

둘째, 합리적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지금까지 환경운동을 주도해온 이들은 지구온난화가 가져올 긍정적인 면들은 경시하고 대신 비관적이고 두려움을 조장하는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객관적이거나 합리적인 태도라고 볼 수 없다. 이에 대해 복음주의 우파가 주장하는 바는 지구온난화 현상을 객관적, 합리적으로 보자는 것이었다. 비록 주류 과학계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으나 그들이 지구온난화 현상과 국제사회의 대처에 대해 제기하는 의문은 신중하게 검토할 가치가 있는 합리적인 의심으로 본다. 복음주의 우파는 좀 더 보완된 기독교 세계관을 토대로 지구온난화 현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대처하려고 시도했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셋째, 무엇보다도 가난한 사람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복음주의 우파는 동심원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그다음으로 인간,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조 세계를 두는 바른 창조 질서 및 가치체계를 전제한다. 인간에 대해서는 특히 가난한 사람을 중심부 바로 다음에 두고 있는데, 이는 손봉호 교수가 말했듯 약자 중심의 기독교 윤리에 부합하는 바이다. 탄소배출 감소를 위한 법제화 반대 역시 그것이 결과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준다는 이유에서 그러한데, 법의 존재 이유가 약자 보호에 있음을 인정한다면 복음주의 우파의 탄소배출 법제화 반대는 기독교윤리에 부합한다.

물론 다른 환경운동 그룹들도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바는 아니나, 그들의 인간관은 부정적인데다가 여타 피조물과 동등한 지위를 가진 존재로 그려지기에 그들의 배려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복음주의 우파는 일관되게 인간, 특히 현재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면서 지금 그들을 돕고 살리는 데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왜냐하면 아무리 약하고 가난한 인간이라도 존 머레이가 말했듯 그는 하나님의 창조의 면류관(the crown of God’s handiwork)”이라 여기면서 이러한 입장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 부정적인 면

복음주의 우파가 취한 입장은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인간론에 있어서 복음주의 우파는 인간성과 인간의 활동을 균형 잡힌 관점으로 보기보다는 좀 더 낙관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비판자들이 이들에게 부여한 별칭(cornucopian)이 보여주듯 이들은 기술 만능주의적이다. 이들은 인간이 최신기술과 미래 과학으로 환경 문제들을 무난히 극복하리라는 믿음으로 지구온난화 이슈에도 접근하는데,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사례를 볼 때도 우리는 인간의 과학기술이 가진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둘째로, 복음주의 우파는 신자유주의적 입장으로 지구온난화 이슈에 접근한다. 이들은 자유시장경제가 개인의 사유재산권에도 유익하지만 환경적 청지기직(environmental stewardship)을 실천하는 데도 이바지한다고 본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기업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게 만든다면 결국 가난한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고 더불어 공해 같은 환경오염도 감소하게 될 것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그들의 과한 긍정은 성경이 제시하는 인간의 탐욕에 대한 경계심을 압도하고 있다.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지만, 아무런 법적인 제재가 없다면 탐욕과 이기심을 자제하기 매우 어려운, 타락한 존재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여러 학자가 지적하듯 이기심과 탐욕이 기능하는 자유시장경제를 무한 긍정하는 태도와 환경적 청지기직은 양립하기 어렵다.

 

III. 결론

지금까지 지구온난화에 대해 일반 환경운동이 가진 입장과 상이한 복음주의 우파의 세계관과 주장을 보았다. 이들이 가진 시각과 대처법에는 분명 부정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개혁주의 신학에 근거한 세계관과 가난한 이웃을 무엇보다도 배려하는 태도와 합리적 의문을 가지고 지구온난화 문제에 접근했다는 점에서 필자는 그들을 긍적적으로 본다.

복음주의 우파는 단지 지구온난화 문제뿐만 아니라 종의 소멸, 원자력 발전, 화석연료 사용 등의 각종 환경 관련 이슈들에 있어 환경운동가들의 주장과 궤를 달리하고 있다. 환경문제에 대해 균형 있는 시각을 가지고 바른 기독교 신앙에 입각하여 대응하려면 복음주의 우파가 앞으로 더욱 소개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서로 다른 이 두 입장을 양쪽 테이블에 두고 그 사이에서 지혜와 겸손의 품성을 가지고 분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바라기로는 앞으로 두 학파 간 건전한 논의를 통해 기독교 환경윤리가 더욱 발전하고 좀 더 균형 있는 기독교 환경운동이 일어났으면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가장 사랑하시는 존재인 사람, 특히 그중에서도 사회의 약자들이 좋은 환경 가운데 건강하게 살아가고, 또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잘 다스리고 돌보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미주

1)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967528.html.

2) 복음주의 진영에서 이 운동에 주축이 되었던 두 기관은 the Evangelical Climate Initiative(ECI)the Evangelical Environmental Network(EEN)이다.

3) E. Calvin Beisner, Where Garden Meets Wilderness (Grand Rapids: Eerdmans, 1997), 132.

4) 데이빗 라슨의 다음 박사학위 논문에 수록되어 있다. David Kenneth Larsen, “God’s Gardeners: American Protestant Evangelicals Confront Environmentalism, 1967-2000”(Ph.D.Dissertation, University of Chicago, 2001).

5) 양 그룹을 소개한 예들로 다음과 같은 저작들이 있다. Joseph K. Sheldon, Rediscovery of Creation: A Bibliographical Study of the Church’s Response to the Environmental Crisis, ed. Dr. Kenneth E. Rowe, ATLA Bibliography Series, No. 29 (Metuchen, NJ: American Theological Library Association and The Scarecrow Press, Inc., 1992). David K. Clark and Robert Rakestraw, “Care for the Environment,” in Readings in Christian Ethics: Issues and Applications, eds. David K. Clark and Robert Rakestraw, vol 2. (Grand Rapids: Baker, 1994), 381-86.

6) https://www.epw.senate.gov/public/index.cfm/press-releases-all?ID=2674e64f-802a-23ad-490b-bd9faf4
dcdb7

7) Wayne A. Grudem, Politics: According to the Bible: A Comprehensive Resource for Understanding Modern Political Issues in Light of Scripture (Grand Rapids: Zondervan, 2010), 362. 복음주의 우파는 이산화탄소의 증가를 통해 지구의 온도변화를 예측하는 방법을 신뢰할 수 없는 다른 이유도 든다. 그들은 말하기를 지금까지 여러 과학자가 슈퍼컴퓨터까지 동원하여 이산화탄소의 증가에 따른 지구온도 변화를 예측해 왔지만 번번이 틀려왔다. 1980년대 과학자들은 당시 대기의 이산화탄소가 두 배가 된다면 지구의 평균 기온은 5도 가량 높아질 것으로 전망함으로써 그걸 들은 사람들은 큰 공포감을 느꼈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the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2100년까지 3.3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고, 해가 갈수록 점점 낮추어가고 있다. E. Calvin Beisner et al., “A Biblical Perspective on Environmental Stewardship,” in Environmental Stewardship in the Judeo-Christian Tradition: Jewish, Catholic and Protestant Wisdom on the Environmnet, ed. Robert A. Sirico (Grand Rapids: Acton Institute for the Study of Religion and Libert, 2007), 88-89.

8) 각주에서 그루덤은 이러한 과학적 데이터들을 인용하며 이러한 수치들은 조사 연도와 조사기관에 따라 조금씩 다를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위의 결과를 바꿀 정도로 크게 다르진 않을 것으로 본다. 362. 그는 기후학자이자 IPCC의 공동의장이었던 존 하우튼(John Houghton)의 저서를 비롯하여 여러 사이트를 참고했는데 그 일부는 다음과 같다. John Houghton, Global Warming: The Complete Briefing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 www.geocraft.com/WVFossils/greenhouse_data.html, Table 4a.

9) Robert Balling, The Heated Debate: Greenhouse Predictions Versus Climate Reality (San Francisco:Pacific Research Institute, 1992), 65-69.

10)<1> 출처: 나사 홈페이지. https://earthobservatory.nasa.gov/features/GlobalWarming/page1.php.

11) Pew Center on Global Climate Change, “Understanding the Causes of Global Climate Change,” in Environmental Ethics: Readings in Theory and Application, ed. Louis P. Pojman, 6th ed. (Belmont, CA: Wadsworth, 2011), 571.

12) https://www.nongmin.com/article/20230224500377.

13) Beisner et al., “Biblical Perspective on Environmental Stewardship,” 91.

14) I.M.Goklany and S.R.Straja, “U.S.Trends in Crude Death Rates Due to Extreme Heat and Cold Ascribed to Weather, 1979~1997,” Technology 7S(2000): 165-73.

15) Thomas Gale Moore, Climate of Fear: Why We Shouldn’t Worry about Global Warming (Washington, D.C.:Cato Institute, 1998), 88.

16) Fred Singer & Dennis Avery, Unstoppable Global Warming, 김민정 역, 지구온난화에 속지 마라(서울: 동아시아, 2009), 35.

17) Grudem, Politics, 364-366. 바이스너는 전 IPCC 의장과 전문가의 견해를 인용하며 교토의정서를 실행할 경우와 실행하지 않을 경우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비교했다. 교토의정서를 실천하지 않더라도 2047년이면 2007년 당시보다 최대 0.5, 그렇지 않으면 약 0.19의 미미한 기온상승이 예상된다고 말한다. Beisner et al., “Biblical Perspective on Environmental Stewardship,” 93.

18) Bjorn Lomborg, The Skeptical Environmentalist (Lond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2), 322.

19) Bjorn Lomborg, Cool It: The Skeptical Environmentalist’s Guide to Global Warming (New York: Alfred A. Knopf, 2007), 115.

20) Grudem, Politics, 361.

21) Beisner et al., “Biblical Perspective on Environmental Stewardship,” 92.

22) Sheldon, Rediscovery of Creation, 1.

23) 두 학파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더 많은 설명은 필자의 논문을 참고하라. Dae Jung Kim, “A Comparative Study of the Human-environment Relationship of Two Evangelical Groups”(Ph.D. Dissertation,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2013).

24) Sallie McFague, Models of God: Theology for an Ecological Nuclear Age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7).

25) Grudem, Politics, 368-70.

26) Evangelical Declaration on Global Warming; Renewed Call to Truth, n.I.

27) Beisner et al., Environmental Stewardship, 91.

28) 예를 들어, The Cornwall Declaration on Environmental Stewardship은 모든 피조물을 돌보되 가장 최우선으로 인간을 살피는 세상을 열망한다고 선언한다. “We aspire to a world in which human beings care wisely and humbly for all creatures, first and foremost for their fellow human beings, recognizing their proper place in the created order.”

29) Wilkinson, Loren, ed, Earthkeeping in the Nineties: Stewardship of Creation. 2nd ed (Grand Rapids: Eerdmans, 1991), x. Fred Van Dyke’s and others, Redeeming Creation: The Biblical Basis for Environmental Stewardship (Downers Grove: InterVarsity Press, 1996), 39-40.

30) Beisner, When Garden Meets Wilderness, 140.

31) Thomas Derr가 그의 책에서 자연을 정의한 표현이다. Thomas S. Derr, Environmental Ethics and Christian Humanism, Abindon Press Studies in Christian Ethics and Economic Life, with an introduction by Max L. Stackhouse (Nashville: Abingdon Press, 1996), 60.

32) Grudem, Politics, 321, 329.

33) Grudem, Politics, 321.

34) Philip E. Hughes, The True Image (Grand Rapids: Eerdmans, 1989), 51-64.

35) 2011123일에 필자가 바이스너(E. Calvin Beisner)와 이메일한 내용이다.

36) 손봉호, 약자 중심의 윤리-정의를 위한 한 이론적 호소(서울: 세창출판사, 2009).

37) John Murray, “The Origin of Man,” in Collected Writings of John Murray, vol.2: Systematic Theology (Edinburgh: The Banner of Truth Trust, 1977), 3.

38) Beisner et al., Environmental Stewardship, 11.

39) Clark and Rakestraw,“Care for the Environment,” 385.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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