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채 목사/사단법인 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 이사장​, 향상교회 은퇴목사
​정주채 목사/사단법인 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 이사장​, 향상교회 은퇴목사

하나님나라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이런 제목으로 시작함이 엉뚱하다고 여겨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사람을 중심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하셨고,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그의 독생하신 아들의 피로 속량하셨다.

 

◇신본주의에 대한 오해

종교인들에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믿고 경배하는 신적인 대상만 존중하고 사람은 무시하는 경향이다. 고대에는 아예 신에게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종교들까지 있었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소위 신본주의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을 가진 종교인들이 많았다.

기독교 안에서도 신본주의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믿음은 귀한 것이지만 이를 핑계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일을 예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참된 신본주의는 하나님을 사랑할 뿐 아니라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신앙이다. 대계명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하나님나라는 신본주의가 확립된 나라이다. 신본주의 신앙은 하나님이 천지의 창조자이고 만물의 주이심을 믿는 신앙이다. 그리고 범사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르는 것이요 오직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이 신앙에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신앙으로 나아간다.

왜 우리가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귀히 여기시기 때문이다. 왜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성경은 이를 얼마나 거듭 강조하고 있는지 모른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저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8:4,5)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3:16a) 여기서 세상은 사람을 말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다.”(14:9,10)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속죄제물로 삼으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시는데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어찌 사람들을 예사로 여길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창조 시에 사람을 만물의 영장으로 삼으셨고, 하나님께서 만물을 보존하시고 다스리시는 일에도 언제나 사람이 중심이었다.

 

◇사람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과 태도

사람을 대하시는 예수님의 마음과 태도에서 우리는 큰 가르침을 받는다. 사람을 대하셨던 예수님의 생각과 말씀은 2000년 전 그 시대 상황에서 보면 그야말로 혁명적이었다. 이런 예수님의 생각과 태도는 바로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이다.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셨다. 당시 사회적으로 멸시 받았던 세리들이나 제사장과 서기관으로 존경받았던 사람들이나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으셨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죄인들과 세리들의 친구라고 비난했을 때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9:12)고 하시며, 그들의 대접을 받고, 그들과 친구가 되셔서 함께 먹고 마셨으며, 그들을 제자 삼으셨다.

예수님이 자주 사용하신 명칭 중에 작은 자”[소자]란 말이 있다. 예수님은 이 말을 어린이들을 가리키실 때 주로 사용하셨지만, 어린이들 외에도 소외된 사람들, 이웃이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도 사용하셨다. 이런 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각별하셨다. 예를 들면, 예수님은 사람들이 데리고 온 중풍병자를 향해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2:5)고 하셨다. 그리고 마 10:42에서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를 참으로 놀라게 하고 큰 도전을 주는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을 대하시는 모습이다. 그 여인은 동네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소외된 사람이었다. 그리고 결혼을 다섯 번이나 해야 했던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자를 아주 인격적으로 대하셨고 그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셨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은 그 여인 앞에서 자신이 바로 메시아시며, 메시아 이후부터는 구약시대의 제사가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로 바꾸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4:23,24)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며 드리던 구약시대의 예배가 찬송과 기도와 말씀으로 드리는 오늘날의 예배로 바꾸어질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런 가르침은 사도들이나 혹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앞에서 하실만한 말씀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작은 자, 사람들에게 소외된 한 여인 앞에서 이 깊고 위대한 예배신학에 대한 말씀을 처음으로 하신 것이다.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이리하여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인권을 존중히 여기는 사상이 일어났다. 어린이들이 소중히 여겨졌고,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무론하고 누구나 차별 없이 사람의 생명과 인격의 존귀함을 인정하는 참된 평등사상이 일어나 오늘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이 세상에 오셨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놓으셨으며, 이 구원의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위해 교회를 세우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공동체인 교회는 이런 그리스도의 사상과 그리스도의 영광이 충만한 곳이어야 한다. 교회는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곳이고, 사람이 사람다운 대접을 받는 곳이다. 나아가 사람들이 행복을 누리는 곳이어야 한다. 교회와 세상이 근본적으로 달라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지금은 세속주의가 교회에 밀려들면서 교회의 영광과 사명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세속주의의 대표적인 사상은 유물론 곧 물질주의이다. 유물론은 물질이 정신과 관념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보다 돈을 더 중요시하고 윤리보다 세상의 명예와 권세를 더 추구한다. 여기서는 인간의 참된 가치나 인격적인 존엄성을 찾을 수 없다.

교회는, 우리 모든 성도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해야 한다. 나아가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시는 예수님의 생애목적(10:10)을 우리의 삶의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나라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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