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나라, 죽은 후에나 가는 나라?

​정주채 목사/사단법인 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 이사장​
​정주채 목사/사단법인 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 이사장​, 향상교회 은퇴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이 하나님나라를 죽은 후에나 가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나라는 현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신학자들은 하나님나라가 이미(already)”임하였으나 아직(not yet)”임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한다. 성경에는 하나님나라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말씀들이 많다.

 

1장 오늘의 하나님나라

예수님은 하나님나라의 현재성을 많이 강조하셨다. 그는 하나님나라가 가까웠다고 말씀하셨고, 또 하나님나라가 이미 임하였다고도 하셨다.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12:28) 사탄의 권세가 꺾이고 하나님의 은혜로운 통치가 시작되었으므로 그것이 바로 하나님나라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하나님나라는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그에게 순종하는 백성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누구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복된 다스림 안에 거하는 사람들은 이미 하나님나라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하나님나라는 죽어서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라 믿음으로 들어가는 나라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살며 그 안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안을 얻고 누린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1:13).

하나님께서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사탄의 지배 아래 눌려 살고 있는 사람들을 해방시켜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사랑의 나라로 옮기셨다는 말씀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14:27)

그림/ 한지선 화가/ 코닷DB
그림/ 한지선 화가/ 코닷DB

2. 공의와 사랑을 실천함으로 실현되는 하나님나라

앞에서 살펴본 대로 의와 사랑은 하나님나라의 통치이념이다. 성도들이 주님과 함께 이 세상 속에서 주님 나라의 통치이념을 따라 살고 그것을 실현할 때 거기에 바로 하나님나라가 임한다. 이것은 우리 성도들에게 공적으로 주어진 사명이다.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다. 복음 전도로 사탄의 나라를 정복하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게 하는 것이 우리가 받은 소명이요 반드시 수행해야 할 사명이다. 그리고 성도들은 하나님나라의 은혜와 평화를 세상에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다.

사회적인 약자들과 소외된 자들을 돌아보고, 그들의 편에 서서 사회정의를 세워가야 한다. 의를 세우는 힘은 믿음과 사랑이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순종하는 믿음과 대계명을 실천하는 사랑으로 섬기며 사는 곳에 하나님나라가 임한다. 이 세상에는 불의와 부정과 불공평이 난무하고 있다. 따라서 정의와 평화와 사랑이 절실히 요구된다.

 

2장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나라

1. 하나님의 언약

신구약 성경에는 미래에 도래할 하나님나라에 대한 약속과 예언들이 많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 7:16)고 언약하셨다. 이 언약은 당시 이스라엘 나라 다윗 왕조에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다. 그 나라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했다. 이 언약은 장차 다윗의 자손인 메시아가 오셔서 세우실 영원한 나라를 약속한 말씀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를 통하여 세워질 아름답고 평화로운 하나님나라를 예언하였다(9:6-8, 11:6-9).

그리고 하나님나라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가장 많이 말씀하셨다. 특히 요한계시록은 장차 임할 하나님나라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21:1-4)

이 말씀은 하나님나라가 완성되고 우리의 구원이 완전해진 그때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장차 임할 하나님나라를 사모하고 그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간다.

 

2. 성도들이 돌아갈 영원한 본향

이 세상은 우리가 영주(永住)할 곳이 아니다.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13:14). 이 땅에서 우리의 일생이 끝나면 우리는 우리의 영원한 본향인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런 소망을 가지고 살았다. 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 살면서도, 그 땅은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주시겠다는 언약의 보증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는 복은 하나님나라에서 누릴 복과 비교할 수가 없다.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1:9-10, 13-16)

 

3. 하나님나라에서의 시공간(時空間)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통치가 이루어지는 영역이다. 그런데 이 영역은 실체가 없는 어떤 영적인 상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며, 구원받은 성도들이 들어가게 될 나라 곧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몇 번 예고하셨는데,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근심하고 두려워하였다. 주님께서 이를 아시고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1-3)

여기서 예수님은 천국을 아버지 집”“처소라고 표현하셨고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라고 약속하셨다. 하나님나라는 아름다운 어떤 영적인 상태가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처소라고 말씀해주신 것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천국에 대한 묘사에는 상징적인 내용들이 많지만, 이 상징들은 하나님나라의 장소성을 시사해준다. 계시록 4장에서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주위의 네 생물들과 24장로들, 그 보좌를 둘러싼 천군천사들과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셀 수 없는 나온 큰 무리가”((7:9) 있음을 보여준다. 21장에서는 새 하늘과 새 땅그리고 새 예루살렘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어 성의 규모(16)와 열두 성문들과 그 모양들에 대한 말씀들이 있는데 이 말씀들도 역시 하나님나라는 구체적인 장소임을 시사해주고 있다.

22장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시작되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 강이 있고, 그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열두 가지 열매를 달마다 맺는다고 하였는데, 창세기의 에덴동산(2:8,9)을 생각나게 한다. 그래서 신학자들 중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창조 때의 세상으로 회복되는 것을 말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21:5)는 말씀은 재창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갱신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하나님나라가 물리적인 공간을 가진 나라라면 시간 역시 존재한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영원한 세계에서 시간의 지속이나 시간을 어떤 단위로 구분할 수 있는 시간개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영원무궁 세계에 들어간다고 해서 인간이 하나님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나라에서도 사람은 역시 사람일뿐 하나님과 같이 무한하거나 무소부재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나라가 시공간을 가진 나라라고 하는 데는 아주 결정적인 근거가 있다. 그것은 바로 몸의 부활이다. 부활의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는 몸을 가지신 분이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24:39)고 하셨고,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하셔서 제자들 앞에서 잡수셨다(41-43).

이렇게 우리가 믿는 부활은 몸의 부활이기 때문에 몸을 가진 우리가 시공간 안에 거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시공간의 개념이 태양계에 속해 있는 현재와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현세에서도 거듭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시간개념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부정적이어서 시간의 지속이 허무와 무상함을 느끼게 만들지만 구속함을 받은 사람에게는 같은 시간이 날로 새롭게 하는 소망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에게 시간은 하나님의 은혜의 채널이다.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22:1,2)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나라를 구하라고 거듭 말씀하셨다. 우리는 장차 임할 하나님나라를 소망하며 그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잘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며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세우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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