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라(11)

박광서 목사(큰사랑교회 담임)
박광서 목사(큰사랑교회 담임)

 

20세기 초반의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공산주의자들은 네오마르크시즘이라는 새로운 공산 사상을 형성해갔다. 니체, 프로이트, 그리고 다윈이 철학적 자양분을 공급했고, 이를 기초로 이태리의 그람시는 헤게모니론을 통한 상부구조의 선점을, 헝가리의 루카치는 인간 내면의 의식화를,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빌헬름 라이히는 집단적 성애화를 위한 성 정치를 주장했다. 정통 마르크시즘이 경제라는 외연이 무게를 두었다면 네오마르크시즘은 인간의 내연을 들여다 본 차이가 있지만 억압, 착취, 계급, 소외 등의 핵심가치는 동일했다.

이런 배경 하에서 독일에서는 프랑크푸르트학파가 파시즘과 현대산업사회를 분석하면서 비판이론이라는 문화 마르크시즘의 꽃을 피웠고, 프랑스에서는 실존주의와 구조주의가 서구 지식세계의 중심 역할을 했다. 특히 자크 데리다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사망하기까지 1960년대에 유행한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는 비판이론과 더불어 유럽의 좌파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구조주의의 특징과 다양한 적용

구조주의를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소쉬르의 언어학이 저들의 기초가 되었음은 부인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소쉬르의 언어의 두 가지 특징인, (1) 음성과 이미지는 사회적 관습에 따라 자의적(恣意的)으로 형성된다는 점, (2) 언어는 시간에 따라 변화될 수 있는 통시성(通時性)’과 특정 시간만 떼어내 그 내부의 체계성을 따지는 공시성(共時性)’을 주목했다. 구조주의자들은 특정 시간을 잘라내 그 내부 요소들 사이의 관계를 밝히려 했다. 언어와 마찬가지로 구조주의자들 역시 각각의 분야에서 그 차이성의 체계를 찾았다. 저들이 소쉬르를 현대사상의 개척자로 보는 이유는 이처럼 관계성을 중시하고 전체적 네트워크를 주목했기 때문이다.

구조주의는 사물의 의미를 대립 항을 둘러싼 문화적 구조에서 찾았다. 예를 들면, 남자-여자, -어두움, -거짓 등과 같은 대립 쌍에 의존하면서, 이들 언어 배후에 존재하는 문화적 구조를 살핀 것이다. ‘여자가 왜 그래?’할 때, ‘여자는 생물학적인 여성이 아닌 유교봉건 사회의 성차별적 문화와 사회구조에서 그 의미를 찾은 것이다. 이런 개념을 인류학, 심리학, 정치학 등에 적용하면서 구조주의라는 사조가 생겨났다. 레비스트로스는 인류학에서, 라캉은 프로이트의 무의식에서, 푸코는 에피스테메라는 지식의 구조에서,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에서, ‘바르트는 문예 비평에서 구조주의를 연구했다. 하지만 구조주의도 인간이 구조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면 그것을 타파하는 것은 불가능한가?’라는 반발이 제기되면서 후기구조주의로 넘어갔다. 푸코, 데리다, 들뢰즈, 라캉 등이 그들이며, 이들이 프랑스 68혁명에 영향을 주었다.

 

구조주의의 본질, ‘해체

우리가 구조주의 철학을 살피는 이유는 사상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인간을 자립적 주체로 여긴 1940~50년대의 실존주의가 인간은 구조에 의해 규정된다는 구조주의로 변화되고, 여기서 더 나아가 꼭 구조만 봐야 하나?’는 문제제기와 함께 후기구조주의가 옮겨갔다. 이 과정에서 데리다의 해체주의가 등장했다. 저들은 기존의 가치와 구조를 해체했다. 예를 들면 성별(남자와 여자), 부부(남편과 아내), 성애(동성애와 이성애) 등이 해체의 결과다. 저들은 해체를 통해 인간의 해방을 추구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처럼 구조주의자들도 마르크스주의자들이었다. 저들의 종말은 하나 같이 불행했다. 동성애자인 푸코는 AIDS로 죽었고, 알튀세르는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하고 정신병원에서 비참하게 죽었다. 이들 외에도 오늘날 잘 알려진 아감벤, 슬라보예 지젝, 알랭 바디우 등도 역시 철저한 공산주의자들이다. 바디우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은 베이비붐 세대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옛 가치를 거부한 68혁명은 실패인가?

세계대전 후 풍요한 시기에 태어나 좌파 교육을 받고 자란 베이비붐 세대는 전통적 진리나 가치체계를 거부했다. 이는 기독교에 대한 거부를 뜻했다. 그 상징이 68혁명이다. 전 세계의 좌파는 자유, 평등, 연대를 원리로 결집했다. 학생들은 혁명과 사회주의 안에 미래가 있다고 상상했으며, 구속 없이 살고, 구속 없이 즐기자’,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등의 구호를 외쳤다. 그렇다면 68혁명이 실패인가 성공인가? 일반적으로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이유는 68혁명은 노동자계급의 혁명이 아니고, 강력한 지도자도 없었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그러나 68혁명은 결코 실패가 아니다. 이유는 오늘날의 전 세계의 친 공산주의 경향은 68혁명세대의 50여년 헌신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대학, 언론, 문학, 예술, 영화, 음악, 정치, 경제 등의 전 영역에 진출한 저들의 문화혁명은 대성공이다. 그 영향력은 오늘날 절정에 달해 있다. UN을 포함한 국제기구들은 이미 저들이 손에 있으며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최근 각종 학생인권조례 발의, 민법개정을 통해 부모의 체벌을 금함으로 부모의 권위를 거부하는 현상들은 과거 68혁명 시대의 재연이다. 오늘의 마르크시즘이 왜 위험한가? 그것은 마르크스의 주장처럼 좌익은 이론보다 혁명의 실천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천을 통해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추진력은 보수우익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다. 그래서 세상이 혼돈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의 핵심은 해체파괴에 있다. 이것은 구조주의와 맥을 같이 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문화 마르크시즘의 본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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