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령 목사(복음자리교회 담임)
이세령 목사(복음자리교회 담임)

요셉은 작은 자로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받았다. 야곱은 사랑의 표시로 색깔 있는 옷을 입혔다. 작은 자가 겪어야 할 어려움을 아버지의 사랑으로 채웠다. 그런데 형들은 미움과 시기로 응답한다. 요셉과 형들의 미움과 시기와의 관계를 살펴본다.  

 

1 야곱이 요셉을 사랑했기에 형들이 그를 미워한다.  

야곱이 요셉을 사랑한 것은 그가 작은 자였기 때문이다. 늙어서 낳은 아들이다. 베냐민을 제외하고는 막내이다. 베냐민은 왜 언급하지 않는가? 베냐민의 나이가 10살보다 아래였을 것이다. 형들과 같이 어울리는 상황이 못 된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과 같이 어울렸다(37:2). 형들의 속사정까지 알고 아버지에게 알리는 상황이다. 양들을 같이 쳤다. 이런 정황은 요셉은 형들과 어울리면서 지내는 가운데 있었음을 말한다. 그런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여 채색옷을 지어 입혔다. 확연하게 형제들 사이에서 구별이 되었다. 그래서 형들은 아버지가 자신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형들이 요셉을 미워한 것이다.  

형들이 요셉을 미워한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아버지의 차별적인 사랑에 대한 저항행위로 볼 수 있을까? 부모에게 있어 어느 자식이 귀하지 않겠냐마는 그래도 더 마음이 쓰이는 자식이 있다. 야곱의 경우 늦둥이 요셉을 더 사랑했다. 언급했듯이 늦둥이는 작은 자이다. 작은 자에 대한 관심은 야곱의 생애 전체에 흐르고 있다.

작은 자가 큰 자의 섬김을 받는다는 신탁에서 출발해서(25:23) 야곱이 아버지의 유업에 관심을 가지면서 장막에 거주했고(25:27) 또한 에서의 장자권을 구입했고(25:33), 마침내 형을 제치고 복을 받았다(27:27-29). 에서가 죽이려 하자(27:41) 야곱이 형을 피해 밧단아람으로 피난했다가 돌아오면서 다시 형을 대면한다(32:3). 형을 대면하는 일이 두려워서, 얕본 강가에 홀로 밤을 지내면서, 낯선 이와 씨름을 한다. 밤새 겨루던 씨름이 한순간에 침을 당해 무너지는 경험을 통해, 이기는 것은 힘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야곱은 이긴 자에게 복을 간구하는 낮은 자가 되어 이겼다라는 이름 이스라엘을 얻었다. 간구하는 낮은 자가 이기는 경험을 바로 그곳 브니엘에서 하였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야곱은 형 에서에게 나아가 일곱 번 절을 함으로 철저하게 자신이 형보다 작은 자임을 실질적으로 고백한다. 그러자 형 에서는 야곱을 포옹하면서 받아준다. 죽이고자 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야곱과 그의 집과 재산을 인정한다. 그리고 에서 자신은 아버지의 유업이 있는 가나안을 떠나서 세일로 완전히 이주한다.

야곱이 에서를 진짜 이긴 것은 거래나 힘이나 속임이 아니라 스스로 작은 자가 되어 절할 때이다.  야곱은 형 에서 앞에서 진짜 작은 자가 되고 형을 큰 자로 인정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성취한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25:23). 야곱은 세상의 질서를 뒤집는 하나님의 질서를 경험했다. 작은 자인 자신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복을 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야곱은 자신의 노년에 낳은 아들 요셉을 사랑하였다. 작은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관심을 대신 표현한 것이다.  

요셉의 형들은 자신들의 아버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당시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런 차별적 상황에 대해서 차별적 사랑을 받고 있는 요셉을 향해 미움이란 방식으로 표현하였다. 형들의 행위가 정당한가? 차별적 행위를 한 것이 아버지이고, 그 행위가 부당했다면 행위자에게 저항을 하는 것이 의로움이다. 그런데 형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동생을 미워한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샬롬을 나누지 못한다. 말에서 평화가 아니라 미움이 담기게 된다. 이는 야곱이 요셉을 사랑하는 이유와 정반대되는 행위이다. 형들이 크다는 이유로 작은 자인 동생에 대한 미움을 노골적으로 언어를 가지고 드러낸 것이다. 이는 아버지가 노골적으로 채색 옷을 입힘으로 요셉을 사랑한 것에 대한 대응적 행동으로 보인다. 말로 평화가 아니라 미움을 표현했다.    

형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야곱의 집이 설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작은 자에게 임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였다. 아버지는 형들이 볼 수 있도록 채색 옷을 통해 자신의 집, 하나님이 약속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형들은 전면적인 거부반응으로서 작은 자 요셉을 미움과 평화를 깨뜨리는 말을 했다. 작은 자를 포용하는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하기를 거절하고 있다.   

 

2. 요셉의 꿈과 형들의 더 큰 미움 

아버지가 작은 자인 요셉을 사랑하는 것을 형들은 미움으로 대답하였다. 요셉이 받은 사랑을 그의 형들은 평화롭게 화답하지 못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형들의 미움이 증폭되는 사건이 생겼다. 요셉의 꾼 꿈 때문이다.  

37:5-11절은 요셉이 꾼 꿈과 아버지와 형제들의 반응을 기록한다. 먼저 창세기 저자는 두 번의 꿈 사건을 요약한다.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다(5). 그리고 요셉의 첫번째 꿈을 소개하고(7) 형들의 반응을 말한다(8). 꿈의 내용은 요셉과 형제들이 밭에서 곡식 단을 묶었는데, 요셉의 단을 일어서고 형들의 단들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였다는 것이다. 요셉은 꿈을 본대로만 말하였다. 형들은 동생의 꿈을 듣고 해석을 한다. 네가 정말 우리 왕이 되겠는가? 정말 네가 우리를 다스리겠는가? 이것은 해석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형들은 요셉의 꿈과 말로 인해서 더욱 미워하게 된다.  

요셉의 꿈은 형들에게 더욱 큰 미움을 불러 오게 했다. 요셉이 다시 꿈을 꾸게 되고 형들에게 말한다(9).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에게 절한다는 내용이다(9). 이때 아버지가 먼저 나서서 요셉을 꾸짖으면서 반응을 한다.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정말 땅에 엎드려 너에게 절을 하겠는가? 이어서 형들이 반응을 한다. 형들은 시기한다. 두 번째 꿈을 말한 결과는 시기였다. 미움과 시기는 분쟁과 다툼의 원인이다. 평화(샬롬)가 깨어졌음을 말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아버지 야곱은 꿈 이야기를 하는 요셉을 한편 꾸짖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말을 마음에 간직하였다(10). 왜 간직했을까

요셉의 꿈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형들이 요셉에게 절하는 것이다. 작은 자인 요셉에게 큰 자들이 엎드리는 형상이다. 그리고 꿈의 결과는 형들의 미움이다. 앞서 아버지가 요셉을 사랑한 이유는 그가 작은 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요셉을 사랑한 결과는 형들의 미움이었다. 창세기 저자는 일관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형들이 요셉을 미워한 이유는 작은 자가 사랑을 받거나 높임을 받는 것이었다.  

아버지 야곱은 처음에는 꾸짖었지만 그러나 요셉의 꿈과 말을 간직한 것은 자신이 요셉을 사랑하는 이유인 작은 자에 대한 관심사 때문이다. 야곱에게 위기의 순간에 꿈을 꾸면서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을 경험하였다. 자신을 죽이려는 형 에서를 피해서 밧단아람으로 도망가다가 벧엘 벌판에서 꿈을 꾼다. 자신과 하늘을 연결하는 사닥다리와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꿈이다. 형을 피해서 도망가는 길이지만 이 길이 하늘과 잇대어 있다는 확신을 가지면서 자신의 나그네 길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을 믿었다(28:12).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보내었다. 7년씩 두 번을 두 아내(레아와 라헬)를 위해서 보냈고, 나머지 기간은 재산 형성을 위해서 보냈다. 열 번이나 품삯을 속이는 외삼촌을 물리치고 큰 가축 떼를 거느리게 된 것은 꿈 때문이었다(31:10). 야곱이 꿈에 본 것이 있다. 양 떼와 교미하는 숫양은 모두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었다. 그래서 라반에게 자신의 노력의 댓가로 요셉이 요구한 것이 바로 꿈에서 본 얼룩무늬, 점박이, 아롱진 새끼들이었다외삼촌 라반의 집을 몰래 도망치듯 야곱과 그 식구들이 빠져 나왔지만 라반이 추격을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꿈에 라반에게 나타나서 야곱 일행에게 시비하지 말라고 하셨다(31:29). 이것으로 야곱은 어려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야곱은 꿈이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방편임을 알았다. 야곱이 번성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었다. 야곱은 자신의 꿈만이 아니라 요셉의 반복된 꿈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다. 작은 자가 큰 자의 섬김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다. 자신의 모친 리브가에게 주셨던 말씀이 아들 요셉에게 다시 주어졌다. 야곱이 요셉의 꿈과 그 말을 간직했다는 것은 어떤 말을 들었다는 것이 아니다. 간직하다는 것은 가치가 있음을 말한다. 요셉의 꿈과 말이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작은 자에게 주어지는 야곱 평생의 관심사와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요셉은 작은 자로서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받았다. 세상과 다른 질서가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는 하나님의 뜻이 야곱 자신에게 이루어졌듯이 마찬가지로 요셉에게도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요셉의 꿈은 다름 아니라 야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의 실현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는 세상의 꿈이 요셉을 통해 주어졌고, 야곱은 이것을 간직하였다.  다음 글은 요셉을 팔아버린 형들의 행위를 살펴본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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