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미니즘은 사실과 객관성의 영역을 도덕적 논쟁의 영역으로 바꾸어 버려
-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과학적, 사회학적 사실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이유는 페미니즘의 근본적인 사고 방식에 기인

김삼열 목사(고신대 신학과 B.A. 고려신학대학원 M.Div, 영국 아버딘 대학교M.Th, 벨기에 루뱅카톨릭 대학교Pre-Doctoral Program, 한울교회 부목사)
김삼열 목사(고신대 신학과 B.A. 고려신학대학원 M.Div, 영국 아버딘 대학교M.Th, 벨기에 루뱅카톨릭 대학교Pre-Doctoral Program, 한울교회 부목사)

 

4. 객관성과 도덕의 대립

앞선 두 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여태까지 보편적이고 객관적이라고 받아들여졌던 개념(concept)과 범주(category)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에 부역하기 위해서 이성이 고안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실재를 제대로 묘사하지 않는다. 특히 여성의 실재를 제대로 구현해내는데 실패했음을 지적한다. 마찬가지로 과학도 왜곡된 범주에 의해서 여성에 대한 왜곡된 결론을 도출한다는 주장에 이른다. 그러므로 결국 과학도 남성중심의 가부장제에 부역하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괴상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와 같이 페미니즘의 기저에 흐르는 반 생물학, 반 과학 정서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라고 받아들여진 것에 대한 회의와 적개심에 기초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실재를 묘사하는 개념과 범주에 대해서 도덕적인 기준을 가지고 접근한다는 것이다. 모든 종류의 학문적 개념과 범주는 가부장제에 부역해왔고, 결국 여성을 억압하는 도구로 오용되어 왔다는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 범주에 대한 객관성과 진실성(authenticity)에 대해서 도덕적 판단이 묘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페미니즘은 도덕적 판단과 객관적인 판단을 묘하게 뒤섞어 버린다. 따라서 특정한 범주와 개념이 묘사한 실재에 대한 진실성과 객관성은 더 이상 판단의 핵심 기준이 아니다. 사실의 영역에 대한 진지한 검토는 상대적으로 도외시 된다. 대신에 도덕적 판단이 판단의 중심부를 차지하게 된다.  

페미니즘의 전략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도덕적 우위를 선점한다. 그들은 가부장제를 옹호하는 억압 세력이고, 우리는 억압에 저항하는 이들이다. 따라서 우리가 주장하는 바를 검증하려는 시도와 반론을 제기하는 모든 행위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도덕적으로 악한 것이다. 도덕적으로 옳고 타당한 것을 주장하는 우리를 해체하려는 계략이기 때문이다. 결국 가부장제를 옹호하는 자들의 백래시(Backlash) 전략이다라고 일축 해버리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우위를 선점한 이후에 반대편의 모든 주장은 악한 것으로 일축해 버린다. 도덕적 판단으로 객관적인 입증과 절차, 팩트와 통계를 뭉개 버리는 것이다. 객관성과 진실성(authenticity) 토론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으려는 전략적 움직임이다. 왜냐하면 페미니스트의 주장에 있어서 객관성, 팩트, 통계는 상당히 아픈 지점이기 때문이다.

PC주의에 대한 풍자(사진=eunmask)
PC주의에 대한 풍자(사진=eunmask)

이러한 차원에서 페미니즘의 PC주의는 논의되어야 한다. 도덕적 올바름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강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객관적인 사실과 논리적 타당성을 눌러버려야 할 필요에 의해서 고안된 전략이다. 맨스플레인 역시 동일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와 정상적인 토론이 불가능한 이유는 자명하다. 윤리적 기반 위에서 객관적이고 사실에 대한 토론을 차단하려 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페미니즘의 원리와 행동 수칙은 철학적 기반 위에서 고안된 의도적인 무지성 전략이다. 페미니스트들이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과학적, 사회학적 사실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이유는 이와 같은 페미니즘의 근본적인 사고 방식에 기인한 것이다. 결론이 아무리 객관적이고 사실이라도, 자기네들이 세운 도덕적 기준에서 받아들일 수 없으면 부정해야만 하는 그들의 근본적인 사고 방식 말이다.

실례를 들어보자. 최근에 BBC는 한 가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아직 사회화 되기 이전의 원숭이 새끼들을 암수로 나눈 후에, 성별에 따라서 어떤 종류의 장난감을 선택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주장하는 것처럼, 과연 남녀 성 역할과 성 구별은 사회화 과정의 결과인지 아니면 자연적 본능에 의한 것인지 과학적으로 테스트 해보려는 시도였다. 그러자 거의 모든 수컷 원숭이들은 남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선택했고, 암컷 원숭이들은 여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선택했다. 이러한 결과는 남녀 성 역할과 구별은 사회화의 결과가 아니라,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선택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사회화 과정이 개입하기 이전에 이미 성 역할과 구별은 어느 정도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같은 선상에서 북유럽에 대한 사회 분석이 시도 되었다. 문화적으로 법률적으로 성 평등이 가장 잘 이루어진 모델로서 북유럽에서 드러난 결과를 통계로 성 역할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것이다. 그 결과로 흥미로운 통계가 제시되었다. 문화적으로 법률적으로 성 평등이 완성된 이후에, 도리어 대기업 여성 임원의 비율이 이전보다 낮아졌고, 여성의 사회적 진출의 비율 역시 감소된 것이다. 이러한 통계를 기반으로 해서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여성의 사회 진출 비율이 낮은 것은 여성에게 불리한 법률적 제도와 문화적 문제로 환원하기 어렵다. 사회가 여성을 위해서 법률과 제도, 문화를 개선 할수록, 여성은 더욱 더 가정에 머물기로 선택한다는 사실은 한 가지 사실을 암시한다. “보편적으로” 여성의 본능은 사회로 진출하기보다 가정에 머물기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성 역할과 구별은 자연과 본능에 의해서 어느 정도 결정 되어 있다는 결론이 다시 도출될 수 있는 공간을 열어놓는다.

이러한 실험과 연구 결과가 나오자마자, 페미니스트들은 대대적으로 반발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반발에 부딪쳐 BBC는 실험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관점에서 페미니즘에 반하는 과학적, 사회학적 결과는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를 강화하는 악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험으로 드러난 사실이 무엇이든지 간에 거부하고 배척해야만 한다. 이러한 사고 방식에 기반해서, 실제로 여성단체들은 페미니즘에 반하는 결론을 도출하는 과학자 집단과 통계적, 철학적 반론을 제기하는 학자 집단에게 정치적, 재정적 압력을 가한다. 실제로 강단에서 반 페미니즘 학자들의 강연에서 페미니스트들의 방해 공작은 북미와 유럽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러한 행동들은 소수 극단주의자들의 일탈이 아니다. 그들의 근본적인 사고방식이 표출 된 것이다.

페미사이드(Femicide) 철폐 시위’ 참가자들이 든 팻말. (사진=뉴스1)
페미사이드(Femicide) 철폐 시위’ 참가자들이 든 팻말. (사진=뉴스1)

이처럼 페미니즘은 객관성과 사실을 도덕과 대립 구도로 만든 후에, 객관적인 입증과 사실 제시를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전략을 택한다. 사실과 과학의 영역을 도덕적 논쟁의 영역으로 바꾸어 버린다. 객관적 입증을 부차적이거나 불필요한 과정으로 강등 시킨다. 그 결과 객관적인 입증을 감히 시도하지 못하는 풍조가 만연하게 된다. 이성의 기능과 합리적 사고가 마비되는 사회를 만들어 버리고 만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논증보다 특정 주체가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이 우선되는 풍조와 사회로 바꾸어 버린다. 객관적인 통계가 무엇이든지 간에, 법과 제도, 문화가 얼마나 개선되었든지 간에, 자신들이 느끼고 경험하기에 불공평 하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객관성의 해체는 결국 감수성의 정치학과 광기 숭배로 나아가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4편에서 계속).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