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수 목사의 4 페이지 묵상: 그림, 시, 수필, 묵상

▒ 1 PAGE/그림

그림/서동수 목사
그림/서동수 목사

 


▒ 2 PAGE/ 시

새들

 

작은 소리에도

가슴이 철렁

 

무리 지어

하늘을 수놓다가

바람처럼 북에서 남으로

동에서 서로 흐른다.

 

아침부터

트윗이 요란하게

핸드폰을 흔든다.

 

불안한 새 가슴으로

조잘 거린다.

 

정처 없는 마음

여기서 저기로 흩어진다

 

여긴

머물 땅이 없다

 

저 하늘 외엔

 


▒ 3 PAGE/ 수필

새들

 

아침 햇살이 눈을 찌른다. 유리창은 햇살에 발발이 찢긴 먼지며 때들이 늙은 황태 껍질처럼 붙어 있다. 조용하다. 여느 때 같으면 새 소리로 시끄러울 텐데 그렇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참새들이 사라진 것이다.

지난 여름 집 마당의 당단풍나무에는 참새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아이들 공부하는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겨울이 되면서 보이지 않는다. 그 많던 참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사전을 찾아보니 벽이나 돌담의 틈, 나무구멍, 목재나 장작을 쌓아 올린 틈과 같은 곳에 둥지를 튼다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당단풍나무는 서식지가 아니라 일종의 회합 장소 같은 곳이었던 것이다. 집 앞 논밭에 곡식이 있을 때는 그곳에서 모여 사냥을 하다가 겨울이 되니 사라진 것이다.

이익을 좇아 이리저리 당적을 옮겨 다니는 정치인을 철새에 비유하곤 한다. 어디 정치인뿐이랴. 본시 사람의 본성이 다 그렇다. 이익이 있는 곳엔 모이지만, 없으면 썰물처럼 빠지는 것이 세상 인심이다.

교회가 한산하다. 코로나라서 그렇다고 말한다. 그렇다. 법을 잘 지켜야 한다. 그래도 법정 좌석 수조차도 채우지 못하는 교회가 허다하다. 예배 자리에 나오지 않는 것은 이제는 예배 생활에서 얻는 이익의 여망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예배는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 탐내서는 안 되는 자리요. 시간이기 때문이다. 다시 교회당에 조잘거리는 참새 같은 아이들의 소리가 끊이지 않기 바란다.

 


▒ 4 PAGE/ 묵상

새들처럼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요즘은 사는 것이 참 두렵습니다. 하루아침에 땅이 꺼지지 않나.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공사 중인 고층 빌딩이 무너져서 행인을 덮치지 않나. 사는 것이 공포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불안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이 모든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사실 이 시를 쓴 고라 자손들의 상황은 우리보다 더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 사람들입니다. 노예입니다. 전쟁보다 두려운 것이 주인의 기분입니다. 가족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도울 수 없는 처지입니다. 노예이기 때문입니다. 더 괴로운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모든 불안을 하나님께 소망을 두므로 이겨냈습니다.

불안 사회입니다. 그래서 결혼도 자녀 낳는 것도 포기하는 젊은이가 점점 늘어납니다. 이 시대 젊은이들이 나약해서가 아니라 이 시대가 그만큼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저 하늘에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그때 하늘의 하나님이 고라 자손의 기도를 듣고 도와 그들을 포로에서 귀환하게 하셨듯이 오늘 우리도 소망의 나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적용질문

1. 나의 불안은 무엇입니까?

2. 그 불안을 하나님께 내려놓고 있습니까?

3. 오늘 나의 모든 불안을 하늘의 소망으로 잠재우는 기도 합니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