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의 결말은?

이세령 목사(복음자리교회 담임)
이세령 목사(복음자리교회 담임)

창세기는 선악과를 통해 선악의 문제를 제기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지만 악이 만연한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악을 이길 수 있을까? 이런 문제 제기의 결론이 요셉이란 인물이다. 37:2절부터 시작하는 야곱의 역사 단락은 요셉에 대한 기사이다. 형들이 가한 악을 요셉은 어떻게 극복하는가? 형들은 악을 행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었다고 고백한다(50:20).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선한 세상을 요셉은 만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굶어 죽어야 하는 기근을 극복하고 먹을 것을 공급하는 참된 하나님의 형상이 바로 요셉이다. 그리고 동시에 요셉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번성의 약속을 성취하는 중개자가 된다. 창세기 1~4장을 살펴본 이후 창세기의 결론인 요셉에게로 먼저 가서 보기로 한다. 앞서 야곱의 역사와 대조가 되는 에서의 역사부터 살핀다.

 

1. 에서의 결혼

1) 기업에 무관심한 에서

에서는 이삭이 낳은 쌍둥이로서 야곱의 형이다. 에서는 장자였지만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았다. 아버지의 장자권을 가볍게 여긴 사람이다. 그리고 장자권을 가볍게 여길 뿐만 아니라 장자가 상속해야 할 아버지의 기업도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의 기업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이다. 이런 약속의 땅 가나안보다는 사냥하기 좋은 넓은 땅인 세일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동시에 아버지의 가업인 장막에 거주하는 목축보다는 사냥을 즐기는 삶이었다.

 

2) 가나안 여자들과 결혼

아버지의 기업에 대한 무관심은 번성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에서가 결혼한 여자들은 일차로는 가나안 여자들이었다. 이삭이 가나안 여자들이 아니라 하란 땅에 가서 리브가를 아내로 구한 역사에 대한 관심이 없다. 약속의 가정을 이루는 일에 대한 무관심이다.

에서는 가나안 여인 중에 헷 족속 엘론의 딸 아다와 히위 족속 시부온의 딸인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를 자기 아내로 맞이하였다(36:2). 그리고 나중에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 하였다(36:3). 36장의 기록은 창세기 자체의 기록과 차이가 난다. 에서가 40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 하였다고 창26:34절은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부모의 근심이 되고 기쁨이 되지 못한 것을 깨닫고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한다(28:9).

 

도표로 정리하면 이렇다

36:2-3                      26:34, 28:9

헷족속 엘론의 딸 아다,      헷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

히위족속 시부온,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 헷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 이스마엘,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

 

상호 이름이 혼재되어 있다. 이런 혼란스런 상황에서도 두명의 가나안 여자와 결혼하고, 한명의 이스마엘 사람과 결혼한 것은 분명하다. 36장의 기록에 의하면 히위 사람 오홀리바마는 세일족속 가문에 속하고 호리족속이다(36:25, 30). 호리족속이 히위 족속인 것을 성경상 증명하기는 어렵다. 에서의 아내들이 셋이고, 둘은 가나안 사람이며 하나는 이스마엘사람이라는 것이며, 이름은 혼돈되고 있다.

에서가 헷사람의 딸들과 결혼을 한 사실은 부모(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다(26:35). 부모의 뜻과 관계없었다. 이것을 나중에 야곱을 밧단아람으로 보내면서 리브가가 직접화법으로 표현한다.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을리이까?(27:46). 삶의 의미가 없어졌다는 극단적 표현을 사용하면서 헷사람을 아내로 맞이한 것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리브가이고, 야곱도 이를 인정한다. 그래서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28:1-2)고 한다.

그러므로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가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보게 된 에서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부친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기에 이스마엘외에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야곱은 이제 결혼하기 위해 떠나는 마당인데 에서는 세번째 아내를 맞이한다. 그리고 아버지를 인간적으로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약속의 집에서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은 부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서 사는 것이다. 그러나 에서는 본질적인 약속은 관심을 버리고 인간적 관심사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에서의 일련의 결혼은 부모에 대한 관심을 거절하는 행위였다. 그가 먼저 장자권을 가볍게 여긴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장자권이 아버지의 유업과 관련이 된다면 결혼은 아버지의 유업을 이을 자손과 관련된다. 아버지의 기업에 관심이 없는 아들은 자신이 개척하고 이루어야 할 삶의 과제에 몰두한다. 이삭과 연결고리가 끊어진 새로운 삶의 실체가 바로 세일이다.

 

2. 에서가 세일산으로 이주하다.

살피는 본문 창36:2-5절은 에서가 세명의 여자들과 결혼한 사실(2-3)에 이어 그들에게서 낳은 자녀들을 소개한다(4-5). 세명의 아내가 다 자녀를 낳음으로 번성하기 시작한다. 아다는 엘리바스를, 바스맛은 르우엘을, 오홀리바마는 여우스와 알람과 고라를 낳았다. 여기까지는 가나안 땅에서 낳은 자식들이다. 이후 에서는 모든 식구들과 재산을 이끌고 야곱을 떠나서 세일산에 가서 거주한다(6-8).

이주를 하게 된 것은 야곱과 에서의 소유가 많아서 함께 거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두 사람의 가축을 다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7). 마치 롯이 아브람을 떠나 소돔과 고모라로 간 이유와 같다(13:6). 당시 아브람은 롯이 선택권을 가지도록 했고, 그래서 선택한 곳이 소돔이었다. 그러나 에서는 자신이 동생 야곱을 떠나 세일로 갔다. 세일로 간 시점은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온 이후의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야곱이 가지고 온 재산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일로 이주하게 된 동기는 기본적으로 아내 오홀리바마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오홀리바마는 시브온의 딸이며, 아나의 딸이다(36:2). 그녀가 히위족속이라고 하지만 시브온과 아나 그리고 오홀리바마 세 이름은 세일의 호리족속 명단에서 같은 혈족관계로 다시 등장한다(36:24). 오홀리바마의 할아버지가 나귀를 먹이고 있을 때, 그녀의 부친인 아나는 광야에서 온천을 발견한다(36:24). 온천은 오늘날로 말하면 유전과 같다. 광야에 샘이다. 물을 발견하는 가치가 크다. 나그네였던 아브라함이나 이삭이 우물을 파면, 그것을 빼앗는 본토인들이었다(21:25, 26:15-18, 19-22). 아브라함이나 이삭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형통의 한 방편이 우물을 얻음으로 나그네의 삶에 위로가 되었다.

오홀리바마는 호리 족속 중에 우물(온천)을 가진 유력한 집안의 딸이었다. 에서는 이 여자와 결혼하면서 세일지역의 호리족속과 가까와졌다. 실제로 세일로 완전히 이주하기 전에,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곳이 바로 세일이었다(32:3, 33:14). 세일은 이미 에서의 중심지였다가 야곱이 돌아온 후에 완전하게 정리를 한 셈이다. 약속의 땅과 아버지의 기업의 땅에서 실제로 관계를 끊어버린 에서이다.

에서의 삶은 먼저 장자권을 가볍게 여기면서 팔아버렸고, 그리고 유업의 상속자를 얻는 결혼을 부모의 궁극적인 관심사인 약속과 기업과는 관계없이 했고, 결국은 약속을 받지 못했으며, 약속을 받은 야곱을 죽이려고까지 한다. 그리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떠나서 세일로 떠나가서 나름대로의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에서가 만드는 새로운 세계는 성경의 관심거리는 아니다. 성경은 세상 나라와는 다른 약속의 나라를 만들려고 아브라함을 부르셨다(12:1-3). 그러나 또 하나의 세상 나라를 만드는 일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에서는 세상에 있는 또 하나의 나라를 만들려고 한다. 힘과 권력이 중심이 된 나라이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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