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가는 천국 가는 길의 훈련.
- 천국 묵상: 부정적인 것들을 정리하고 모든 것들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훈련.
- 천국 묵상(2): 오늘의 부정성에 매달리지 않고 새로운 내일로 나아가는 훈련.

(사진: uploaded by Steffen B on Unsplash)
(사진: uploaded by Steffen B on Unsplash)

 

바울의 상념

    딤전 4장에서 바울은 그가 곧 이 세상을 떠날 것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6절은 이를 증명합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이어지는 9-22절은 이 세상을 떠나기 전 바울의 심경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을 통해서 천국을 앞둔 인간, 즉 이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인간의 내면과 감정은 어떠한가 엿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을 앞두고 바울은 자신의 사역에 대한 상념을 토로합니다.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솟아오르는 감정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선교 여행에서 만난 이들에 대한 감정과 생각 역시 정리하고 있습니다. 먼저 자신을 배신하고 상처준 이들이 떠오릅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린 데마, 자신을 지독하게 괴롭혔던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를 언급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원망하거나 증오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을 앞두고서 그들을 미워하고 원망한들 다 소용없으니까요. 이제 곧 떠날텐데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에 매여봤자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러한 연유로 그동안 내면과 기억에 차곡차곡 쌓여온 부정적인 기억과 감정들을 떨쳐 버립니다. 그래서 그들을 기어이 용서할 수 있게 되죠. 16절을 읽어 봅시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도리어 그들을 위하여 중보하고 있습니다. 미워하는 것도, 원망하는 것도 의미가 없으니까 마음 속에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지고 나니까, 그들을 진정으로 중보할 수 있게 된거죠.

    이어서 고마웠던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자신의 곁을 끝까지 지켜줬던 누가, 유익한 사람 마가, 자신의 아들과 같은 디모데까지. 그래서 디모데에게 자신을 찾아오라고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9절입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부정적인 것이 지나가고 아름다웠던 기억이 헤아려 보는 겁니다. 그 결과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사라지고 난 후에 고마웠던 사람들에 대한 아련한 감정들이 내면과 영혼을 채우는 겁니다. 그래서 감사가 차오릅니다. 고마웠던 사람들, 아름다웠던 기억들이 차오르고, 부정적인 기억들과 상처줬던 이들, 미워했던 이들은 떨쳐버리게 되니까요. 18절은 이러한 심경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나쁜 기억과 감정은 사라지고 아름다운 기억과 고마웠던 사람들만 남으니, 그러한 삶을 허락하신 아버지 하나님에게 감사가 저절로 흘러나오는 겁니다. 그에게 기꺼이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영혼의 상태에 이르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이들을 축복합니다. 22절입니다.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기억을 남겨줬던 이들,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이 세상을 떠나기 전 할 수 있는 일이 축복하는 것 밖에 없기 때문이죠. 마지막에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것만 주고 가려하는 겁니다. 바울은 이렇게 천국을 앞두고, 이 세상을 떠나기 전 삶과 기억, 인간관계들을 모두 아름답게 정리합니다. 천국이 바싹 다가왔음을 강렬하게 의식하는 이의 내면과 심경은 이러한 것입니다. 부정적인 것들에 대한 미련은 떨쳐버리고,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들은 옅어집니다. 그리고 아름다웠던 기억, 고마웠던 사람들이 내면과 기억을 채우게 됩니다. 그리하여 감사가 넘쳐 흐르게 됩니다. 삶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겁니다. 

 

귀가: 본향 연습

    그러나 우리에게 천국을 앞둔 자의 심정, 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마주한 이가 차분하게 정리하는 행위들은 와닿지 않습니다. 천국은 언제나 먼 미래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치열하게 사느라 현생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매일 삶의 한 복판에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천국이 우리에게 바싹 다가왔다는 감각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매일 천국 가는 훈련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실런지요? 바울은 천국을 본향으로 돌아간다고 표현합니다. 바울에게 이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귀가하는거죠. 천국에 이르는 여정은 귀갓길인 것이고요. 바울의 정의에 따르면, 귀가는 천국으로 가는 연습인거죠. 귀가의 궁극적인 완성은 천국 본향에 이르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우리는 매일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하면서, 이 세상을 떠나는 훈련을 하는 겁니다. 별세 훈련을 받고 있는거죠. 

    바울이 천국을 앞두고 삶을 아름답게 정리하고, 부정적인 기억과 감정들에게서 자유를 누렸던 것처럼, 우리는 귀가를 천국으로 가는 연습으로 삼을 때 동일한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겁니다. 귀가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다양한 상념을 안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오늘 벌어진 일들에 대한 감정과 생각들이 소용돌이 치는 시간이기도 하죠. 오늘에 대한 다양한 기억, 감정, 생각들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머리가 복잡한 귀갓길이 은혜로워진다는 겁니다. 귀가를 천국으로 가는 연습으로 삼을 때 우리의 내면과 영혼에 일어나는 변화를 구체적으로 설명 드리죠.

    먼저 모든 순간이, 모든 사람이 소중해집니다. 그 순간을 더 오래 누리고 싶고, 그 사람들과 더 오래 함께 하고 싶어집니다. 마지막을 앞두면 그냥 평범한 일상조차 그립고 애절해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모든 순간이 소중해지는 겁니다. 마지막을 앞둔 이에게는 함께 했던 모든 사람이 소중해지기 마련이거든요. 그래서 함께 했던, 함께 하고 있는 모든 이들을 애틋하게 바라보고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천국에 대한 소망은 부정적인 것에 미련을 떼게 하기도 하나,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대했던 것 조차 애틋하게 바라보게 하는 놀라운 능력인거죠. 

    나아가서 모든 것이 아련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합니다. 부정적인 기억과 순간, 사람들까지 모두 말입니다. 이제 떠나게 될테니까, 모든 것이 마지막일테니까, 그 마저도 절절한겁니다. 모든 것을 아름답게 바라보게 되는 겁니다. 이처럼 천국을 강렬하게 의식하는 영혼은 평범하고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것을 넘어서, 부정적인 것들조차 애틋하고 아름답게 바라보게 하는 효과를 누리는 겁니다. 지긋지긋했던 삶과 인연조차 애틋해지는 겁니다. 그토록 지긋지긋했던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기적을 경험하는 겁니다. 미련 없던 세상에 애착이 생겨나는 거죠. 

    그리고 이제 떠나는 판국에 용서 못할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것도요. 더 이상 부정적인 기억과 감정에 천착할 필요가 없어지는거죠. 이제 떠나서 천국으로 갈텐데,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인가? 라는 질문에 마주하게 되거든요. 한 사람에 대해서 부정적인 기억, 긍정적인 기억 모두 섞여 있기 마련입니다. 마지막을 앞두고 나면, 긍정적인 기억이 부각됩니다. 부정적인 감정과 기억이 부질 없다고 느끼게 되거든요. 결국 지난 시간 동안 있었던 아름다운 면들만 부각시켜주는 효과를 누리는거죠. 그리고 해소하고 싶었던 일과 관계들이 떠오를 것 입니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을 해소할 용기가 솟아오를 것입니다. 묵은 것들을 해소할 결단을 내릴 수 있게 될 겁니다. 이제 마지막일 테니까, 모두 깔끔하고 매듭짓고 떠나고 싶어질테니까요. 

    이처럼 천국을 앞둔 자는 모든 것을 아름다운 방향으로 정리합니다. 유종의 미라는 말의 의미는 이런 것이죠. 그렇게 세상과 타인이 남겨놓은 부정적인 잔여물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겁니다. 참된 자유와 평화를 맛보게 되는 겁니다. 마침내 고백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도 좋은 기억들을 안고 간다고. 그래도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났었다고. 고마웠다고. 행복했다고. 그렇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는 우리의 귀갓길에 천국을 깊이 묵상한다면, 지금이 이 세상의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도 동일한 고백을 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래도 좋은 기억들로 채워진 인생이었노라고, 좋은 사람들 만났던 여정이었노라고. 그런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당신께 영광을 돌리겠노라고 말입니다. 

 

(사진: uploaded by Marius Matuschzik on Unsplash)
(사진: uploaded by Marius Matuschzik on Unsplash)

 

천국의 사색이 없는 귀가란? 

    지금 비록 집으로 발걸음을 향하고 있으나, 몇 시간 지나 내일 아침이면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다시 부대껴야 합니다. 아무 일 없는 척 표정관리 해야 하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반복되는 지루한 일을 다시 해야 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쓸쓸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다시 지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함을 알기 때문이죠. 귀가는 오늘의 끝이 아니라, 고단한 오늘의 연장인 겁니다. 귀가는 노곤한 인생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귀가는 언제나 피곤함으로 가득한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조차 지친 삶을 종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 쉬고자 하는 귀가는 허무한 겁니다. 안식이 짧디 짧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죠. 

     천국에 대한 의식으로 가득한 귀가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냅니다. 천국을 강렬하게 의식하는 자는 오늘 있었던 모든 것을 깔끔하게 정리 합니다. 그에게 오늘은 마지막일테니까요.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정리해야 할 때거든요. 앞서 살펴봤던 것처럼, 이 세상의 마지막을 앞둔 바울은 부정적인 것들은 부질 없어 정리하고, 아름다운 기억들은 애틋한 것으로 간직하며, 감사함으로 마무리합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에 대한 사색으로 가득한 귀갓길은 오늘 있었던 일 중에 부정적인 것들은 오늘 일로 정리해 버립니다. 떠날 오늘에 크게 마음을 주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의 부정적인 모든 것에서 떠나서 내일을 살게 합니다. 오늘과 내일을 단절시켜 주는거죠. 매일의 귀가에 천국에 대한 사색이 가득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있었던 모든 나쁜 것들이 내일의 나의 삶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마무리 지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것들의 영향력이 오늘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내일을 시작할 수 있게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의 귀갓길에 천국은 없고 현생만 가득하기에 귀가가 쓸쓸한 것 입니다. 이 세상을 떠난다는 의식이 없으니, 현생에 대한 집중력이 강렬하다보니, 오늘 있었던 것들이 아무 것도 정리되지 않는 겁니다. 이제 마지막이라는 의식이 희미하거나 전무하다 보니까, 오늘 겪은 현생의 것들을 아무 것도 보내지 못하는거죠. 그래서 오늘이 끝나가는 귀가길에서도 아무 것도 지나간 일로 정리한 채 넘어가지 못하는거죠. 그렇게 오늘의 부정적인 것들이 내일 다시 반복 됩니다. 모든 것을 정리할 수 있는 마지막에 대한 의식이 없어서 씁슬한 오늘이 계속해서 연장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난 후에 맛보는 평안, 평화, 털어내고 난 후 후련함, 모든 것이 정리되고 느끼는 산뜻함을 느껴보지 못한 겁니다. 다시 말해서, 천국을 앞둔 자의 평화와 안식이 스며들지 못하는 겁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귀가는 오늘을 정리하고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정리하고 마무리 하게 도와 줄 마지막에 대한 의식, 즉 천국이 없기에 아무 것도 정리 못한 채, 아무 것도 흘려보내지 못한다는거죠. 천국 없이는 오늘 하루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다는 겁니다. 오늘을 마무리 짓고 흘려보낼 수 있는 귀가를 누리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정리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복잡하고 꼬여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으며 사는 겁니다. 그래서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인생이 무엇인지 살수록 더 모르겠다고 느끼는 것이죠.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마지막이라는 의식이 천국 없이 작동한다면, 여태 우리가 나누어 본 평화와 안식은 스며들지 않을 것입니다. 천국이라는 아름다운 다음이 없는 마지막을 맞이 하는 이에게는 억울함, 분노, 원망만 가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련없이 버려야 할 쓸모 없는 시간들일테니까요. 그러한 인생은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마구잡이 인생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이 없이 정리하는 인생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천국에 대한 집중력

    고단한 인생의 연속으로서 귀가냐? 아니면 하루를 아름답게 정리하는 귀가냐? 오늘로 인하여 가득찬 독을 품고 걷는 귀갓길이냐? 아니면 내일을 새롭게 살게 하는 귀갓길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천국이 당신의 내면과 영혼에 얼마나 단단히 자리잡고 있느냐, 당신의 일상을 얼마나 지배하느냐, 당신의 의식을 얼마나 지배하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천국이 당신의 내면과 영혼 속에 단단히 뿌리 잡고 있을 수록 우리의 귀가는 하루를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 은혜로운 시간이 된다는 겁니다. 

    천국을 잠시 제쳐두고, 현생에 집중하면 현생을 잘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현생은 우리의 생각과 헤아림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오묘한 것이어서 집중할 수록 더욱 얽매이게 됩니다. 현생이 짜놓은 미로에 갇혀서 헤메이게 됩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능력을 벗어난 일들이 대부분이어서 현생에 집중할 수록 더욱 벅차기만 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 대한 생각이 많아질 수록 삶이 버거워지기 마련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일들만 더욱 늘어날 뿐인거죠. 한 마디로 엉망진창이 될 뿐이죠. 삶이 감당이 안되는 겁니다. 

    도리어 천국에 집중할 수록 도리어 현생을 더 잘 살 수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국을 바라보고 의식하는 삶은 이 땅의 삶을 경시하는 태도가 결코 아닙니다. 천국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의 삶은 그저 지나칠 뿐이라는 사상이 아닙니다. 여태까지 살펴본 것처럼, 현생보다 하늘나라의 삶에 생각의 비중을 두는 자는 보낼 것은 보내고 간직할 것은 간직하면서 복잡한 삶을 잘 정리합니다. 특히 부정적인 것들은 깔끔하게 마무리 해버렸기에, 매일 새롭게 갱신되는 오늘을 마주합니다. 반복되는 일상조차 새로운 마음과 태도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거죠. 그리고 지나간 일에 얽매이지 않으며,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에 고통 받지 않으며, 삶을 아름답고 애틋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나누어 보았습니다. 삶을 아름다운 방향으로 정리하는거죠. 이처럼 천국을 의식할 수록 현생을 더 편안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천국을 너무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현생에 너무 충실하다가 천국을 바라보는 자가 누리는 은혜를 잃어버려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때 입니다. 내가 마주한 구체적인 문제들과 무관해 보이는 천국에 대한 사색이 내 삶을 더 풍요롭고 평화롭게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귀가는 천국 사색을 위해 열린 시간입니다. 하루의 마지막을 마주하는 시간이기 때문이죠. 이 세상의 마지막을 마주하는 천국을 매일 연습할 기회라는 겁니다. 천국을 앞둔 자가 누리는 평화와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기회라는 거죠. 매일 우리에게 주어지는 천국 사색의 기회, 귀가조차 현생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한 채 돌아왔던 우리 자신을 돌아 봅시다. 그렇게 매일 누릴 수 있는 평화와 안식을 놓쳐 왔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사진: uploaded by Magne on Unsplash)
(사진: uploaded by Magne on Unsplash)

 

 

결론

    여태까지 디모데후서 4장을 통해서 천국을 앞둔 자의 내면과 심경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귀가는 이 세상의 마지막을 앞둔 천국으로 가는 자의 내면과 영혼을 경험하고 연습할 수 있는 기회라고 나누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귀가를 천국을 앞둔 자가 누리는 은혜와 평안을 훈련하는 기회로 삼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현생의 연장으로 경험한다고도 나누어 보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매일 경험하게 되는 귀가를 천국으로 가는 길로 묵상하고 사색해야 합니다. 그렇게 천국을 앞둔 자가 누리는 은혜와 평안이 스며드는거죠. 부정적인 것을 흘려보내는 은혜, 그래서 누리는 평안함, 모든 것을 애틋하고 아름답게 바라보는 은혜, 그리고 그동안 용기가 없어서 또는 내키지 않아서 해소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해소할 용기와 결단 등등 말입니다. 

    저는 독자 여러분의 귀가가 편안하길 바랍니다. 지긋지긋한 일상의 연장이 아니라 말이죠. 저는 여러분의 귀가가 천국이 당신의 의식을 가득 메우고 지배할 때, 아름답게 정리되는 삶이 무엇인가 보는 시간이기를 바랍니다. 부정적인 것들에 대한 의식이 연장되는 시간이 아니라 말이죠. 당신에게도 저에게도 그러한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 찬양을 묵상하면 우리의 지난 삶을 정리하고, 새로운 내일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될거라 기대합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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