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우 목사 [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담임]
김학우 목사 [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담임]

유럽에는 부르크란 이름을 가진 도시들이 많은데, 이는 성곽도시를 말합니다. 이런 성곽 도시들은 훗날 유럽에서 주와 나라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이중 합스부르크 가문은 1020-1030년경 라드보트백작이 스위스 아르가우 주언덕에 매의 성이란 뜻을 가진 합스부르크 성을 건축하면서 시작되어 소규모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다가 1273라드보트백작의  7대손 루돌프 1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어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합스부르크왕조는 루돌프 1세부터 1918년 카를 1세까지 645년간 프랑스를 제외한 서유럽 대부분을 통치하였습니다.

합스부르크 왕조는 1279년 루돌프 1세가 오스트리아 영지를 획득하면서 가문의 본거지가 되었으며 특히 1438년부터 1806368년간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연달아 통치하면서 치세는 최절정에 달했습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발전사는 실로 숨 막힐 정도로 드라마틱하며, 전쟁을 하기보다는 현란한 결혼정책과 친 가톨릭 정책으로 권력과 영토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1519년 카를 5세 때(스페인에서는 카를 1세라 불림), 합스부르크 왕조는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 전역과 아메리카까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 되었습니다. 카를 5세의 직함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스페인과 독일, 이탈리아 왕, 오스트리아 대공, 네덜란드 영주 등 20여 개나 되었습니다.

그림: 김학우 목사 편집
그림: 김학우 목사 편집

그러나 1556년 카를 5세가 아들 펠리페 2세에게 스페인과 네덜란드를, 동생 페르디난트 1세에게 오스트리아와 독일, 헝가리, 보헤미아 등을 물려주면서 합스부르크 왕조는 스페인, 네덜란드 계열과 신성로마제국의 계열로 완전히 분열하게 되었습니다.

1700년 스페인은 카를로스 2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프랑스 루이 14세의 손자 펠리페 5세가 즉위하면서 합스부르크에서 부르봉 왕조로 바꾸었습니다이로 인해 이른바 왕위계승 전쟁이 일어났으며, 12년간 유럽이 둘로 나뉘어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1713, 위트레흐트조약을 통해 스페인은 펠리페 5세가 부르봉 왕위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스페인 왕위를 인정받았지만, 벨기에와 이탈리아에 속한 영토, 특히 요충지 지브롤터를 영국에 넘겨주는 조건으로 전쟁이 끝났습니다.

스페인은 합스부르크에서 부르봉왕조로 갈아타는 최악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권력과 영토, 요충지 지브롤러 등 많은 것을 잃었으며, 오랫동안 후유증을 앓았습니다. 1740년 오스트리아 또한 왕위계승으로 인한 전쟁으로 새로운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이 탄생하였지만, 세계 1차 대전으로,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유고 폴란드 등으로 분할되었습니다.

전쟁 중에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사망하였고, 이후 마지막 샤를 1세가 왕으로 등극했지만 전쟁 후 폐위당하면서 합스부르크 왕조는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거기에다 1938, 2차 세계 대전으로 오스트리아는 나치 독일에 점령당하였고, 전쟁 패전국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에 분할 점령되었다가 1955년 중립국으로 독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50만 평에 이르는 대지 위에 세워진 합스부르크 왕조의 심장인 쇤브룬 궁전과 정원에는 600년 넘게 유럽을 호령했던 주인공은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엔 관광객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렸던 다윗은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에 대해 후세대들에게 이미 깨우쳐 준 바 있습니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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