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우 목사 [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담임]
김학우 목사 [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담임]

세상에서 커피만큼 소비를 많이 하는 품목도 없을 것이며, 커피만큼 사람에게 친근한 기호품도 없을 것입니다. 커피는 사람이 모이는 장소엔 어김없이 나타나며, 사랑을 속삭일 때, 수다를 떨 때, 고민을 털어놓을 때, 바쁜 사람, 한가한 사람이 만나는 자리에선 커피가 빠지지 않습니다.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조나단 스위프트는 커피는 우리를 진지하고, 엄숙하고, 철학적으로 만든다.”라고 하였으며, 프랑스 정치가 탈레랑은 커피는 악마처럼 검지만 천사처럼 순수하고, 지옥같이 뜨겁지만, 키스처럼 달콤하다.”라고 하였습니다.

독일의 역사학자 하인리히 야콥은 커피의 역사에서 한 잔의 커피는 기적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면서 포도주와 커피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포도주는 잠을 자게 만들지만, 커피는 고양된 마음과 깨어 있게 하는 차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커피의 원산지와 이름은 에디오피아카파에서 유래된 것과 오스만 제국시대 유럽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세계 최초의 커피 전문점은 1575년 이스탄불에서 문을 연 커피하우스 키브한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흔히 기독교에 와인이 있다면 이슬람엔 커피가 있다고 말합니다. 술을 금하는 이슬람 사회에서 술을 대체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커피였습니다. 스튜어트 리 앨런이 커피견문록에서 이슬람의 커피하우스는 각성과 토론의 공간이었다.”라고 한 말과 같이 커피하우스는 이슬람 사회에 해방구 역할을 하였습니다.

커피는 이슬람이 십자군전쟁을 통해 유럽에 들여왔다는 이유로, 처음 악마의 유혹”, “이슬람의 와인”, “이교도의 음료등으로 혹평하여 금기사항으로 여길 정도였지만 그런데도 커피는 유럽 전역으로 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1650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개점한 것을 시작으로, 1683년에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플로리안에서, 1685년에는 비엔나에서 그리고 1689년 프랑스 프로코프에서 각각 개점하였습니다. 커피점은 수많은 예술가 정치인,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즐겨 찾았으며, 학문과 사상과 교육, 토론과 여가의 장소로 이용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당시 커피하우스를 지혜로운 곳이라 불렸고, 실제로 프랑스 카미유 데 물랭커피점에는 매일 카페를 찾아 시국을 논하기도 하였습니다. 1789713파리 카페 드 포이에서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할 계획을 세웠고, 이를 계기로 프랑스 혁명으로 발전되었습니다.

그림: 김학우 목사 편집
그림: 김학우 목사 편집

음악의 아버지 바흐는 커피 칸타타를 통해 커피를 예찬하고 있습니다. “오 커피, 수천 번의 키스보다 매혹적이고 더 달콤하고, 백포도주보다 더 달콤하도다. 커피, 커피, 넌 날 살맛나게 하는구나!” 악성 베토벤 또한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원두는 나에게 60가지 영감을 준다.”라고 한 말로 인해, 오늘날 커피에서 “60”베토벤 넘버라고도 불립니다.

미국인들은 “보스턴 차사건” 이후 , 차 대신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으며당시 미국인들에게 홍차 대신 커피를 마시는 것은 “자유에 대한 표현이었고독립운동” 의 상징이었습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 때 미국 병사들이 유럽 전선에 참여하면서 유럽의 쓴 에스프레소를 마시지 못해 물을 섞어 마시면서 아메리카노란 커피가 탄생되었습니다.

이후 커피는 미국의 국민 음료로 자리 잡게 되었고, 전 세계 커피 소비량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커피를 즐기게 되었습니다바울은 헬라의 고린도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문제로 서로 비방함으로 분쟁할 때에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요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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