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김은섭 선교사의 초청으로 호주를 방문하게 되었다. 김 선교사는 82학번 고신대학 신학과 동기이다. 친구는 20년 전부터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로 가 있는 청년들을 캐어하는 사역을 하고 있었다.

김은섭 선교사(좌)와 박영수 목사(우)
김은섭 선교사(좌)와 박영수 목사(우)

친구가 호주로 가서 사역을 시작한 초창기부터 우리 덕암교회에서는 아주 작은 헌금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 우리교회는 필리핀에서 사역하는 초등학교 동창인 김종석 선교사(현지인전도사역)와 중국의 손희곤 선교사에게 5만 원이라는 작은 헌금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10여 년이 지나서 7만 원씩 보내었는데 6~7년 전부터는 10만 원씩 7명의 선교사에게 선교헌금을 보내고 있다.

우리교회는 재정이 연간 35백 정도이기에 약 천만 원의 선교헌금을 보내는 것은 우리에게는 최선이었다. 김은섭 선교사는 이런 우리를 고마워하며 오래전부터 한번 오라고 초청하였으나 마음먹고 갈 형편이 못되었다.

1993년부터 지금까지 내가 섬기는 덕암교회에서 1998년 어린이집을 개원하였다. 그때 운영하면서 빌린 돈 1천만 원의 마이너스 통장도 몇 년 전 겨우 갚았기에 여행을 위해서는 카드 결제가 아니고는 티켓비용을 마련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도 이번에 큰마음을 먹고 가게 된 것은 친구가 사역하고 있는 청년들을 데리고 호주의 카이마로 23일간의 여행을 가는데 함께 가자는 권유 때문이었다. 그렇게 간다면 괜한 민폐도 끼치지 않고 함께 움직이기에 나도 친구에게 많은 폐를 끼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아내도 부랴부랴 어린이집 일들을 최대한 마무리하고 한 주간의 호주 나들이를 계획했다.

친구가 부탁한 노란 코팅이 된 작업 장갑은 부산온천교회를 다니는 김도원 형제의 후원으로 마련하였다. 김도원 형제는 코로나 이전에 10년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우리 덕암교회를 여름마다 섬기기 위해 방문해 준 친구다. 몇 년 전부터 사업을 시작하여 이제는 든든한 기독실업인으로 모두에게 힘이 되어 주는 그런 형제다.

두 가방 가득 장갑을 넣고 인천까지 승합차를 타고 출발하였다. 가방이 무거워 중간에 타고 내리는 일이 번거로워 인천공항까지 가기로 한 것이다. 호주를 가기 위해서는 여권 외에 ETA라고 하는 전자여권이 필요하다. ETA 앱을 다운받아 인적 사항을 기록하고 제출하면 전자여권이 발급된다. 그렇게 수속과 티켓팅을 진행하고 출발하게 되었다.

오후 3시경 인천에 도착하여 인근에서 목회자들에게 용접을 가르쳐 드리는 이강민 목사님의 사역장이자 교회를 찾아가 인사를 나누었다. 그날도 멀리 해외에서까지 용접을 배우러 오신 선교사님이 계셨다. 목사님은 이십여 년 전 우리 덕암교회에 무료로 교회 십자가 탑을 세워 주는 일로 만난 이후 교제를 계속해오는 신실한 농어촌 사역의 동역자이다. 지금은 전국의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용접학교를 개원하여 진행하고 있는데 벌써 올 6월이면 20회 개원을 앞두고 있다. 아쉬워하는 목사님 부부를 떠나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전국의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용접학교를 개원한 이강민 목사
전국의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용접학교를 개원한 이강민 목사

처음에는 젯스타라고 하는 저가 비행기를 타려고 하였으나 여러 사람의 피드백을 참고하여 아시아나 비행기를 탔다. 저녁 8, 이륙한 지 한 시간이 채 못되어 저녁 식사가 나왔다. 한국식 식사를 선택하였더니 쌈밥에 불고기다. 맛있게 식사하고 비몽사몽 잠을 청했다. 잠을 깨니 12시 반, 에어컨 바람에 추위를 느끼며 담요를 둘러쓰고 얼굴에는 가져온 마스크까지 쓰고 다시 잠을 잤다. 새벽 2시 반, 다시 깼다. 이렇게 몇 번을 깨다 자다를 반복하니 호주 상공에 들어선다.

구름 위로 붉은 여명이 고요히 비쳐오는데 3시간을 날아서야 시드니 공항에 들어선다. 아침 7, 공항 검색대는 다른 공항들과는 달리 십여 개국의 국기가 표시된 출구가 있다. 그곳에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신분 체크를 하고 받은 백신 확인 티켓을 집어넣으니 바로 통과한다. 설문도 여권 심사도 도장도 없다.

시드니공항 
시드니공항 

그렇게 가뿐히 통과하여 짐을 찾으러 갔는데 가방이 하나 나오지 않는다. 내 것과 비슷한 은색의 내셔널 지오그래픽 로고가 있는 가방 하나가 3바퀴를 계속 돌고 있다. 한국인 여승무원이 마지막까지 가방을 확인하고 있기에 부탁을 하니 분실물센터로 안내를 해 주어 김은섭 선교사 전화번호와 우리 가방 수화물 번호를 알려주고 왔다.

마지막으로 입국신고서를 받는 곳에서 많은 이들이 가방 검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와 아내는 빈손으로 나오는 몇 안 되는 사람들과 함께 바로 통과가 되어 바로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마중 나와 있던 김은섭 선교사와 함께 시드니 교외에 있는 김 선교사의 센터로 향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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