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Bowden Street(도로명) Ryde(지역명) N.S.W(주이름) 2114(우편번호) Australia,  연락처: 0425 000 000(김은섭)"

한국을 출발하기 전 아주 세밀하게 설명을 곁들여 주소를 입력해주어 당황하지 않고 ETA를 기록했었던 김은섭 선교사의 센터 주소이다. 주소 중 N.S.WNew South Wales의 약자이다. 호주 시드니 인근 차량 번호판은 대부분 전체 혹은 약자로 이렇게 적혀있다.

박엉수 목사 부부
박엉수 목사 부부

호주는 7개의 주로 나뉘어 있는데 그중 하나인 시드니가 있는 N.S.W에는 수도인 캔버라가 있다. 김 선교사가 센터로 사용하고 있는 이곳은 원래 호주인 교회 목사의 사택인데 교회가 형편이 어려워져 사택을 사용하지 않고 세로 주었다고 했다.

김 선교사의 청년 공동체도 이 호주 현지인 교회에 함께 출석하고 있는데 처음 이곳에 갔을 때는 교인 10여 명 출석하던 교회였다고 한다. 지금은 김은섭 선교사 부부와 청년들로 인하여 현지 교회 성도 숫자도 30여 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약 70여명이 매 주일 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원래 처음부터 출석하던 교회는 여기가 아니었다고 했다. 코로나 발생 몇 년 전까지 15년간 다니던 호주인 교회는 100명이 넘는 그래도 꽤 큰 교회였다고 한다.

초창기 그곳 담임 목사님은 김 선교사를 아들처럼 생각하고 함께 팀 사역을 진행하였는데 후임으로 들어온 부목사가 담임이 된 후에 김 선교사와 청년들이 거의 100명에 육박하자 두려움을 느꼈는지 나가 달라고 하여 교회를 옮겨 이곳에서 예배드리게 되었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하여 청년들도 많이 줄어 현재는 40여명의 남녀 청년들과 함께 공동체 사역을 하고 있었다.

김 선교사가 호주에 들어온 지 이제 20년이 되었다. 이곳에 올 때 어린아이였던 딸(혜원)과 아들(충만)은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되어 딸은 현지 초등학교의 교사로, 아들은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딸은 이제 이곳 공동체에서 청년들의 영어 교사로서도 함께 사역하며 재정과 사역에 큰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아들 역시 변호사가 되어 교회 안에 성도들과 청년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다.

함께 집에서 점심을 먹고 난 다음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Waterview in licentennial Park로 산책을 나갔다. 이곳은 가운데 섬같이 작은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었는데 여수국가정원 박람회장의 심볼과 같은 수변공원의 모습과 거의 흡사하였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따오기와 같이 생긴 아이비스라고 하는 새들이 공원 주변에서 모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국의 비둘기와 같이 사람 주변에 머물며 무엇이든지 주워 먹는데 심지어 쓰레기통까지도 뒤진다며 그곳에서는 속칭 거지새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했다. 얼굴이 마치 칠면조처럼 밋밋하고 더군다나 머리 전체가 목까지 검고 주름이 있어 느낌이 그렇게 오는가 보다.

호주는 지금이 가을이라고 했다. 플라타너스 붉은 잎들이 바스락거리고 밟힌다. 싸늘한 날씨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산책을 하고 있는데 김선교사의 전화기 벨이 울린다. 가방을 찾았다고 공항에서 연락이 왔다. 바로 공항으로 다시 돌아갔다. 분실물 센터는 공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MENZIES AVIATION Baggage Services Provider For: 라고 적혀있는 코너가 있었는데 각국의 수화물과 가방들이 안쪽에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분실 수화물 센터인 MENZIES AVIATION 카운터모습
분실 수화물 센터인 MENZIES AVIATION 카운터모습

아마도 자기 가방으로 착각하고 가져갔던 사람이 다시 갖다 놓고 바꾸어 간 것 같다. 김 선교사의 집인 센터에 돌아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난 후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있는 이케아’(이곳에서는 아케아라고 부른다)에 갔다.

부산 기장 인근에 있는데 거리가 멀어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어 들러보았다. 리모델링과 건물 개보수를 자주 하는 나였기에 실내 인테리어에 대한 몇 가지 팁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렇게 잠시 둘러보고 센터 옆 김 선교사 부부가 마련해 준 숙소에 갔다.

이곳은 센터로 사용하는 현지인 교회 목사의 사택 바로 옆집으로 벧엘이라는 명칭으로 형제들이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중국인 소유의 집인데 얼마 전 화재로 내부가 그을러 싸게 세를 얻었다고 했다. 현재 이렇게 형제들과 자매들이 각각 나뉘어 6개 집에 세를 들어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김 선교사와 그룹홈 청년들이 출석하는 호주인교회
김 선교사와 그룹홈 청년들이 출석하는 호주인교회

김 선교사 부부는 이들의 취업도 도와주고 주중에는 자체적으로 거의 매일 영어 공부 시간이 센터에서 진행이 된다고 했다. 하루 일과는 아침 530, 새벽기도를 센터 건너편 호주인 교회에서 드리고 난 뒤 6시에는 각 그룹홈으로 아이들을 다시 태워준다.

그때부터 하루 일과를 시작하여 저녁이면 가정별로 리더의 주관 아래 하루 생활을 나누고 큐티를 하며 일과를 마무리한다고 했다. 큐티는 매일성경을 격월로 마산에 있는 동광교회에서 부목사 사모로 있는 제자가 50권을 보내어 준다고 한다.

부목사 사모는 일찍이 창원 가음정교회 부교역자 시절의 청년이라고 했다. 호주에서 김 선교사의 사역이 20년이 다 되어 가기에 초창기에 온 이들 가운데 몇몇이 이곳에 정착하여 각 방의 리더로서 그의 사역에 큰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나는 그중 하나인 형제들이 머무는 벧엘에 마련해준 방에 아내와 여장을 풀고 호주의 첫 밤을 지내게 되었다. 난방이 안 되는 이곳 건물들의 특성으로 인해 침대에 전기장판을 깔았는데도 코끝이 시리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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