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리 사회에 10억 모으기 신드롬이 있었다. 너도나도 10억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계획을 짜서 목표 달성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방송국에서도 10억 만들기 프로그램을 앞다투어 방영하곤 했다. 아직도 한 방송이 눈에 선하다. 젊은 부부가 10억을 만들기 위해 최소의 비용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소개한 내용이었다. 세수한 물은 절대 버리지 않고 변기에 사용하거나 빨래를 할 때 재사용 했다. 그리고 슈퍼에서 물건을 살 때는 꼭 쿠폰을 모아서 공짜 물건을 얻고 심지어 백화점 식품부에서 시식용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10억이 도대체
우리 인간은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신앙인조차도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떠나기도 한다. 신앙인들 중에 하나님을 그저 나의 수호천사 정도로 생각하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루어 보려는 이런 기복신앙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우리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믿으면 안 된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믿어야 한다. 내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쓸모없는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지진으로 인해 인류역사상 최악의 쓰나미가 발생했다. 당시 피해를 본 국가는 모두 12개. 인도네시아를 비롯하여 스리랑카, 인도,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소말리아에까지 광범위한 피해를 줬다. 사망자 숫자는 최대 30만 명에 이르고 이 중 3분의 1은 어린이였다. 방송에서는 온종일 처참한 피해 상황과 가족을 잃은 남은 자들의 울부짖음을 방영했다.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하루아침에 생활 터전과 가족을 잃은 이분들의 고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나? 매일매일
더불어민주당은 또 이성을 잃은 사람들처럼 독재로 치달아가고 있다. 그동안의 횡포와 비상식적인 몇 가지 입법으로 국민들을 조롱하듯 하더니 이번엔 범죄자들이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듯 하는 행태까지 보이고 있다. 구체적인 것은 논할 필요도 없다. 민주주의를 악용하는 “합법적인” 독재를 눈도 한 번 깜박하지 않고 감행하고 있다. 모든 국민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가져올 수 있는 법을 만들면서 야당의 반대를 숫자로 밀쳐버리는 건 물론 자당 안에서까지도 입 한 번 벙긋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들은 입법을 위한 당론을
뉴질랜드인이 경영하는 영어 학교에서 수년간 부학장이란 직함을 가지고 일을 한 적이 있다. 그 학교에는 전 세계 청년들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 몰려왔다. 청년들을 바라볼 때마다 해외영어연수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가졌으나 결코 이룰 수 없었던 나의 청년 시절이 떠올랐다. 그 당시 해외연수를 간다는 것은 소수 특권층의 자녀들이나 누릴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그래도 세월이 많이 좋아져서 이제는 웬만한 중산층 자녀이면 영어연수를 올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도 상당수 한국 청년들이 왔다. 그들을 볼 때마다 어렵게 목회하시
1960년대 우리나라의 경제 사정은 매우 어려웠다. 밥 세끼를 먹지 못하는 가정이 많았다. 우리 집은 그 당시 다른 집들보다 더욱 가난했다. 나의 어머니는 어려운 살림에 일곱 자녀를 키우시느라 여간 고생하신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면 늘 배고픔에 시달렸다. 유일한 낙이 길거리에 쇠붙이를 주어다 엿을 바꿔 먹는 일이었다. 식사 시간에는 온 식구가 양푼에 꽁보리밥을 함께 퍼먹곤 했다. 반찬이라곤 김장 무를 젓가락에 꽂아 조금씩 뜯어 먹은 것이 전부였다. 그 당시 모두들 참 가난했다. 매일 아침 어려운 우리 가정에도 어김없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머리로는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을 통하여 땅을 팔아주시고 500만 불을 주셨다. 돈을 주신 목적은 5년 전부터 약속하신 영어학교와 선교센터 빌딩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이 두 가지 목적에 맞는 빌딩을 찾아다녔으나 500만 불을 가지고는 어떤 빌딩도 살 수가 없었다. 몇 달을 찾아 헤매다 850만 불짜리 6층 빌딩을 보게 되었다. 시티 중심에 위치해 있고 옆에 공원이 있어 두 가지 목적에 너무 합당한 빌딩이었다. 이 빌딩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빌딩이라고 생각하니 세상을 다 얻은 것같이 기뻤다. 은행과 상의하여 융자를 얻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놀랍다. 하나님의 지혜는 너무 깊어서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도 없다. 허허벌판으로 인도하셔서 돈 없이 17만 평의 땅을 계약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이 좁은 머리로 어떻게 이해할 수가 있겠나? 하나님은 살아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끌어 가셨다. 땅 계약 후 시간은 흘러갔다. 1달, 2달 시간이 흘러가면서 환율의 급등으로 12억 원의 땅값이 오히려 16억 원으로 빚이 불어났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보면 참담한 상황이었다. 만일 땅값을 제때 지불하지 못한다면 분명 형사적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식을 타인처럼 대해야 한다.” 저의 군법무관 동기 형인 홍창식 변호사님이 저에게 해준 말입니다. 자식을 나의 소유물이 아닌 타인처럼 대해야 자식에게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요즘 자식들은 타인이 아니라 스스로 시부모가 된 것 같습니다.어느 숲 속에 어미 원숭이가 새끼 두 마리를 키우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태어난 새끼 두 마리 중 유독 한 마리를 더욱 사랑하여 늘 안고 다녔습니다. 어미의 관심을 받지 못한 다른 새끼 원숭이는 혼자서 외롭게 나무를 오르내리며 스스로 먹이를 찾아 먹어야 했습니다. 그러던
IMF로 영어학교 일을 그만두고 신학 공부에 열중했다. 사실 신학을 공부하면서도 기쁨보다 늘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40이 넘은 나이에 신학대학을 졸업한들 나이 먹은 사람을 채용해줄 교회는 없었다. 그리고 온순하지 못한 내 성격상 목회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선교단체나 선교 관련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떤 선교단체도 나이 먹고 영어도 잘못하는 사람을 월급 주며 채용할 곳은 없었다. 미래를 생각하면 답답하고 두려운 마음뿐이었다. 매일 밤 나의 눈물의 기도는 이곳까지 나를 인도하셨으니 주의 일
IMF로 학교 일을 접고 미래에 대한 염려로 매일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할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왔다. 5년 안에 영어학교와 선교센터를 세워주시겠다는 말씀이었다. 매일 기도할 때마다 꼭 같은 말씀이 들려왔다. 현재 집세를 걱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말씀은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는 말씀이었다. 내가 무슨 돈이 있어서 영어학교를 세우고 선교센타를 세운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잘못된 기도의 응답으로 생각하고 애써 잊으려고 했다. 그런데 밤마다 기도할 때면 너무나 또렷하게 같은 말씀이 들려왔다. 거부하
IMF로 로토루아 학교 일을 정리하고 신학대학 학업을 마무리 하기 위해 오클랜드로 올라왔다. 3개월 치 생활비를 가지고 렌트 집을 얻었다.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했다. 한국에서 돈을 좀 빌려와야 할 텐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돈을 빌릴 곳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매일 밤 책상 밑에 엎드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길밖에 없었다. 그런데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계속 집을 주시겠다고 응답하셨다. 너무나 강한 응답이었기에 그날부터 집을 보러 다녔다. 아마도 수십 채의 집을 본 것 같다. 아내는 나의 이러한 행동이 몹시 엉뚱하
90년대 초에 뉴질랜드 정부가 이민 문을 연 후로 한국으로부터 이민자들이 몰려왔다. 그와 더불어 영어연수와 현지 학교 입학을 위해서 초. 중. 고생들도 대거 들어왔다.외국에서 공부하면 영어도 빨리 배우고 여러 가지 좋은 점도 있으나 부모의 간섭이 없다 보니 탈선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특별히 사춘기인 10대들은 자칫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신앙 안에서 성공적인 유학 생활을 할 수 있는 영어연수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그래서 내가 근무하는 영어 학교 오너와 의논해서 탈선할 환경
가끔은 사는 게 소설과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 말은 소설에서나 볼 법한 황당한 삶을 실제로 살아 내기 때문입니다. 소설에서는 등장인물이 출발부터가 불편하기 짝이 없는 큰 어려움으로 시작하거나 때로는 법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착한 사람이 악한 사람에게 철저하게 이용을 당하다가 버려지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곁에서 보면 화가 나기도 하고 그를 대신해서 분노하기도 합니다.왜 착한 사람이 더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교우 중에도 이런 분들이 더러더러 보입니다. 참 착한 분인데 다른 사람에게 이용
인도에 전도용 지프(JEEP) 10대를 지원하고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전도용 지프를 보낼 때 특별히 교회에서 지원해 주는 것으로 부탁을 했기 때문에 인도교회에서는 나의 존재에 대해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내 이메일로 인도에서 온 메일이 하나 전달되어왔다. 그 내용은 지난번 후원해준 지프 때문에 복음의 큰 열매를 맺고 있다는 감사의 편지였다. 물론 이 메일은 나에게 보내진 것이 아니고 이곳 교회로 보내진 것이다. 그런데 감사의 글 아래에 장문의 글이 적혀 있었다. 우리가 보내준 지프로 풍성한 전도의
뉴질랜드에서 신학공부를 하는 동안 뉴질랜드 현지교회에서 아시안 담당 교역자로 잠시 섬긴 적이 있다. 어느 날 인도에서 한 목사님이 오셔서 간증을 하셨다. 그 당시 인도에는 복음의 불길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본인의 교회에도 1년에 무려 새 신자가 4만 5천 명이 등록한다고 했다. 지금 복음의 불길이 타오를 때 인근 마을마다 찾아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도는 워낙 땅이 넓어 한 지역을 이동하려면 반드시 차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당장 전도용 차량 24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뉴질랜드 성도들을 향하여 간절하게 지프
나의 어머니는 믿음이 돈독하신 분이었다. 평생 간절한 한 가지 소원이 있으셨다. 우리 가정에 목회자가 하나 나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늘 기도하셨다. 아들을 하나 주시면 주의 종으로 바치겠다고…. 그 간절한 기도의 응답으로 나를 얻으셨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귀가 아프도록 너는 주의 종이 돼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살아왔다. 단순한 소망의 말씀이 아니라 절대 거역할 수 없는 경고였다. “너는 주의 종이 안 되면 벌 받는다” 어린 마음에 거역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마음 판에 새겨졌다. 반드시 주의 종이 되어야 하는지 알았다.그러나
바누아투에서 한 선교사 부부를 만났다. 처음 만났으나 우리를 집으로 초대했다. 조그만 집에 방 한 칸을 빌려 살고 있었다. 보기에도 너무 초라한 삶이었다. 대화 중에 바누아투라는 곳에 선교사로 오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목회를 했는데 여러 가지 견딜 수 없는 어려움이 있어 남편 목사님만 무작정 바누아투로 왔다. 혼자서 차도 없이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며 선교할 방법을 찾아다녔다. 참으로 막막했다. 그곳에 몇 안 되는 교민들이 조금씩 도움을 줬다. 차량 판매를 하는 한 교민이 오래된 중고 지프차도 하나 줬다. 사모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별히 청년들의 고통은 말로 할 수가 없다. 꿈과 미래로 가득 차야 할 청년들이 절망 가운데 고통당하는 것을 보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 대학을 졸업해도 갈 곳이 없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결혼을 할 수도 없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청년들의 아픔을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겠나? 나도 암울한 청년 시절을 보냈기에 이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공감할 수 있다.정부 통계에 의하면 안타깝게도 코로나 발병 후 유일하게 20대만 코로나 이전보다 자살률이 14.6% 증가했다. 청년들은 코
오랜 시간 코로나로 인해서 전 세계인들의 마음이 피폐해지고 있다. 가장 고통받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한 금융 전문가의 강의가 크게 인기를 얻고 있다. 특별히 많은 교회와 기독교방송들이 그분을 초청하여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금융 지식에 대해서 강의를 듣고 있다. 최근에 한 기독교 방송의 ‘새롭게 하소서’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이분의 경제철학을 다뤘다.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이 시대의 요셉이라고 이분을 찬양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참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미혹되어 가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보며 참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