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이 낳은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Pablo Ruiz Picasso, 1881-1973), 20세기 미술사에서 그를 빼고는 단 한 줄도 써 내려갈 수 없을 정도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걸출한 예술가로 불립니다. “피카소는 미치광이다.” 피카소의 그림은 “부서진 유리의 파편 같다”라는 비판과 함께 “500년 서양 미술사를 한순간에 뒤바꾼 위대한 화가”라는 칭송을 동시에 받고 있습니다.
그는 유례가 없는 참혹한 시대, 세계 1, 2차 대전, 스페인 내란, 그리고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가운데서 그림, 판화, 조각, 도자기 등 방대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한 세기 가까운, 93년의 생애를 살면서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은 지금도 미술 사조를 이끌고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않을 것입니다.
그의 작품은 한때 관리하기조차 어려워 불쏘시개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전해지지만 그럼에도 현재까지 남아 있는 작품은 대략 4만 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빈센트 반 고흐가 남긴 900여 점의 작품과 비교해 보면 피카소의 작품이 얼마만큼 많은가 짐작케 됩니다.
거장 피카소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 가운데, 특히 한국전쟁과 관련된 두 점의 작품은 세계인들에게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피카소는 이미 1937년 “게르니카”를 통해 스페인 내전의 아픔을, 1945년 “납골당”을 통해 제2차 세계 대전의 비극과 참상을 전 세계에 고발한 바 있습니다.
마르크 샤갈이 “혁명”이란 작품을 통해 러시아의 혁명과 제 1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폭로한 것이라면, 피카소의 “납골당”은 제 2차 세계대전으로 희생된 수많은 병사들을 추모함과 동시에 포로수용소의 잔인함을 고발한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프랑스 남동부 지중해 연안, 앙티브와 발레리에 한국인들에게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는 피카소 박물관과 피카소의 그림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피카소는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고발하기 위해 게르니카를 파리박람회에 전시한 것처럼 1951년 “한국에서의 학살” 또한 파리박람회에 전시함으로 한국전쟁의 참화를 전 세계에 고발하였습니다.
특히 앙티브에서 그린 “한국에서 학살”은 그가 공산주의자라는 사실 때문에 문제의 작품으로 제기되기도 했지만, 그가 가진 이념과 상관없이 그는 폭력과 전쟁을 극구 반대하였으며 오히려 평화를 갈구하였습니다. “한국에서의 학살”은 로버트와 같은 인간들이 벌거벗은 남녀와 어린아이를 향해 총격을 가하는 모습에서 동족상잔의 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학살”은 피카소가 한국전쟁 중 실제로 일어난 “신천학살” 사건을 배경으로 그린 작품이기에 더욱 충격을 주었습니다. 신천군 학살은 1950년 10월부터 52일간 황해도 신천군에서 주민 1/4에 해당하는 약 35,000여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한 사건을 말합니다.
또한 피카소는 스페인 내전과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통해 전쟁의 비극을 절실하게 느낀 나머지, 마치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소설을 통해 평화를 갈구한 것같이 그 또한 평화를 갈망하여 그린 그림이 바로 1952년“전쟁과 평화”의 작품입니다.
피카소의 “전쟁과 평화”의 작품은 12세기에 건축된 발레리 예배당 내부의 벽에 벽화로 그린 그림입니다. “피카소 전쟁과 평화 박물관”으로 불리는 이 예배당 왼쪽에는 “전쟁”과 오른쪽에는 “평화”의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전쟁의 그림에는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와 그와 함께 살았던 “프랑수아 질로”의 얼굴이 오버랩 되어 있고, “평화”에는 한국을 상징하는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박물관 안내 팸플릿에는 “피카소는 특별히 한국의 평화를 염원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어쩌면 피카소가 한국을 전혀 알지 못할 수 있었던 그가 어떻게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한국전쟁에 대하여 붓을 들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미 그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목격한 자로, 전쟁의 참상을 보고만 있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인류애를 가진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어 보입니다.
한국과 한국인들에게 “한국에서의 학살”과 “전쟁과 평화”의 작품보다 피카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입니다. 이런 이유로, 2021년 5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피카소 탄생 140주년 기념과 “한국에서의 학살” 파리 전시회 7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에서의 학살”을 포함 110여 점 피카소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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