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우 목사[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담임]
김학우 목사[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담임]

1446년 조선의 4대 왕, 세종은(세종28) 집현전 언어학자들과 더불어 28개 낱자로 구성된 훈민정음을 반포했다. 훈민정음은 600년이란 긴 세월이 지난 지금,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로 발전했다. 만약 한글이 없었다면 한국은 아마도 문화적 식민지는 물론 지금과 같은 경제개발이나 선진국 대열에 오르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1521년 보름스 의회는 루터를 단죄했다. 루터의 관할 영주 프리드리히 현제는 루터를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피신시켰다. 루터는 성에서 피난 생활을 하면서 15229,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신약성경(2)을 단 11주만에 번역함으로 독일어 신약 성경이 출판되었다. 암흑시대에 희미한 불빛 아래서 병약한 몸과 싸우며 이뤄낸 위대한 업적이었다

루터는 번역작업을 하면서 히브리어 원문을 최대한 독일어답게 표현하고 싶어 했다고 고백했다.

우리는 선지서를 독일어로 옮기느라 비지땀을 흘렸습니다. , 주여! 성경 저자들이 독일어로 말하게 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요. 우리는 욥기 전편에 흐르는 격한 감정을 표현한 말들을 번역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심지어 욥이 친구들에게서 위로를 받는 것보다도 우리가 욥기를 번역하려드는 게 더 고통스러운 것 같아 보입니다. 우리의 번역을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재 위에 드러눕겠다고 할 것 같습니다.”

그림/ 김학우 목사[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담임] 편집
그림/ 김학우 목사[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담임] 편집

“9월 성경이라 불린 루터의 번역판은 곧바로 구텐베르크가 만든 인쇄술로 말미암아 두 달여 만에 5,000부 이상 팔려나갔다. 루터가 번역한 성경은 열두 번 이상 인쇄를 거듭할 정도로 성공적이었으며,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당에 붙인 “95개조 논제또한 인쇄되어 불과 2주만에 독일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두 달 만에 전 유럽에 배포되었다.

이같은 위력을 목격한 루터는 인쇄술은 가장 고귀하고 복음 전파를 위해 하나님이 내리신 최대의 선물이다.”라고 극찬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잠자는 유럽인들의 눈을 크게 뜨게 했고,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되었음은 물론이었다.

유럽에서 독일 또한 오랜 기간 언어로 인한 불편함을 겪고 있었다. 16세기 당시 독일에는 20여 개의 지방 언어들로 난립하여 의사소통에 큰 혼란을 겪고 있었다. 또한 독일 정신이나 정체성까지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루터 성경번역본의 출현으로 표준 독일어의 통합은 물론 독일의 정신적 문화유산과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루터 당시에는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소수였다. 그래서 가족 또는 농가에서는 저녁마다 한곳에 모여서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성경을 읽어주었다.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은 점차 각 가정마다 비치하게 되었고, 학교에서는 교재로 사용되었고, 작가들은 작품에서, 음악가는 오선지에서, 목사들은 강단에서 루터가 번역한 성경을 인용하였다.

루터 이후에도 독일의 여러 방언을 초월하여 성경에 등장하는 구절이 일상의 표현이 되었고, 성경이 말하는 언어가 일반인들이 사용하므로 현대 독일어를 형성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마르틴 루터는 종교개혁자로만 인식되고 있는 경향이 있는데 그는 실로 다양한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우선 그는 신학자로 설교자였으며, 또한 음악에 대해 뛰어난 자질을 가진 작곡가였으며, 그리고 위대한 언어학자로 번역가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루터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은 누가 뭐라 해도 독일어 성경을 번역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동화 작가 야코프 그림(Jakob Grimm)루터의 독일어는 그 순수함과 엄청난 영향력으로 인해 현대 독일어의 기초를 제공했다.”라고 말했다. 훗날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도 루터를 가리켜 독일 민족정신의 화신이라 할 정도로 칭송했다.

독일어 성경의 영향은 국경을 넘어 유럽의 여러 나라, 네덜란드와 스웨덴, 아이슬란드와 덴마크 등지에까지 끼쳤다.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을 근거로 네덜란드어(1523), 덴마크어(1524), 아이슬란드어(1540), 유고슬라비아어(1584), 크로아티아어(1562-1563), 헝가리어(1541), 폴란드어(1551), 핀란드어(1548) 성경 등이 차례대로 번역되었다. 루터는 독일어를 발명한 것은 아니지만 독일 역사와 독일어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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