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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 윈터의 '내부자운동'을 비판한다
정양호 2015-11-16 03:14:33 | 조회: 2044
*이글은 10년전에 기고했던 글인데 "내부자운동의 이해를 돕기 위해 뉴조에서 퍼온 글입니다
랄프 윈터의 '내부자운동'을 비판한다(1)
- 복음의 핵심 요소가 변질된다면 분명히 혼합주의요 영적 간음 행위이다

국내의 선교계 일각에서 Mission Frontier의 한국어판(2005)을 곧 간행한다고 한다. 한국교회의 선교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리라는 기대에 앞서, 랄프 윈터(Ralph D. Winter, the general director of FMF)와 그의 팀이 지향하는 문제점을 냉정하게 노출시키는 것은 한국교회의 바른 선교를 위해 긴요한 일이다.

그는 20여 년을 미전도종족 선교운동에 헌신해오면서, 이 잡지를 통해 구체적으로 선교의 남은 과업과 목표를 제시함은 물론, 정직하게 서구 선교의 잘못을 통찰하고, 탈서구화, 상황화를 외치며 어떤 면에서 세계선교의 나침반 노릇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그가 외치는 ‘내부자 운동’(Insider Movement)이라는 발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몇 년 전 오늘날의 세계선교 동향을 다음과 같이 코멘트하였다. “한 그리스도인이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언제인가? 누군가가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언제 말할 수 있는가? 예수께서는 ‘그의 이름이 아니라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라고 하였다. 이것은 교회에 출석하는 어느 누가 참 그리스도인이라는 의미도 아니다.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모두가 다 참 그리스도인이 아니요 교회를 다닌다고 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이 사실인 것처럼,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찰을 달지 않았다고 해서 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한 예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나 아직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하지 않는 ‘Messianic Jew’는 어떤가? 한편 자신들이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안식교, 여호와의증인, 몰몬교, 카톨릭은 어떤가? 보통 신앙의 입장에서 이들은 적어도 성경을 넘어섰거나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여기에 넓은 시야를 필요로 한다. 크리스천과 무슬림이 함께 예배하는 시리아의 한 교회의 예나, 힌두크리스천, 유대크리스천, 무슬림크리스천이라는 라벨을 붙여 언급하기 시작했었다. 물론 카톨릭이나 몰몬교, 여호와의증인 등도 성경에서 조금 멀리 나갔을 뿐 예수를 믿는 신앙을 인정하는 넓은 시야가 필요함을 역설한다.(Mission Frontier Vol.22, No.2)

랄프 윈터를 추종하는 KWMA의 H 목사도 최근 ‘한국교회의 전방개척 선교세미나’의 발제에서 “하나님의 시각과 범기독교적 관점에서 세계교회에 주어진 전방개척 선교지를 말할 때 개신교를 뛰어넘어 독립교회(아프리카), 카톨릭교회, 그리고 정교회를 바라보는 조금 넓은 시각 내지는 약간의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그들이 적어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 중 상당수가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복음 선교의 우선점을 찾아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여리고 성의 라합이나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 같은 숨겨진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중에 있음을 믿는다. 선교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랄프 윈터의 지적에 부분적으로 공감하나 참 그리스도인의 잣대를 불필요하게 카톨릭이나 기독교 이단이나 다른 종교에까지 들이대면서 자칫 돼지 앞에 진주를 던지려는 것과 같은 어리석고 위험한 발상으로 간주한다.

복음의 연속성(連續性) 문제는 기독교와 혼합된 거대한 아프리카 전통종교에서 보듯 오십보백보처럼 그 옥돌을 가리기 힘든 한계를 인정한다 해도 성경적인 복음운동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오히려 다른 이방종교나 성경말씀의 궤도에서 이탈한 혼합된 신앙운동을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 거대한 흐름, 운동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참다운 선교학자다운 태도가 아니다. 도대체 무엇이 넓은 시각이고, 무엇이 하나님의 시각인가? 성경대로 오직 예수를 얘기하면 편협하고 배타적이어서 하나님의 시각이 아니고, 개신교를 뛰어넘어 모든 종교를 포용하는 에큐메니칼 시각이어야 너그러운 우주적 하나님의 시각인가? 그들 중에 상당수가 비성경적, 비복음적 모조품 예수를 부르짖어도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선교할 필요가 없는 양 말하는 그 논리가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윈터는 같은 저널 2005년 10월호에서는 마치 미전도종족 선교의 결과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려는 듯 이른바 ‘Insider Movement’을 노골적으로 집중 거론하였다. “초대교회의 헬라그리스도인들, 갈라디아 교인들, 로마교인들은 자신들의 의복, 언어 문화를 그대로 간직한 채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었던 것처럼 (롬 9:32 롬 1:16) 문화와 우주적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유효한 버전이 무엇인지 인지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미국에 전파된 유럽의 기독교는 몰몬교, 여호와의증인 등에서 보듯 아주 성경적이든 그렇지 못한 것들이든, 아주 다른 약 200종을 생산하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성경적인 믿음이 어떤 문화나 언어로 옷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은 흥분되는 일이면서 어지러운 일일 수 있다. 요즘 아프리카나 인도 중국에서는 진짜 예수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교인으로 보이지 않고 문화적 측면에서 여전히 무슬림이나 힌두교도로 간주되고 있다. 오늘날의 선교필드의 사람들은 서구적인 정서가 있는 기독교의 문화, 신학, 성경을 좋아하지 않는다. 많은 전문가들은 일본교회가 성장하지 않는 원인 중에 아직도 기독교가 일본풍으로 번역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인도에는 실제로 가정교회에서 매일 성경을 읽고 예배하는 수 백만의 힌두교 예수신자들이 있다. 어떤 곳에는 마음과 영혼으로 예수를 따르면서 모스크로 신약성경을 가지고 다니면서도 무슬림으로 간주되는 수 천의 예수신자들이 있다. 아프리카에는 결코 그리스도인이라고 여기지 않으면서 몰몬교 신자들보다 더 순수한 5천만 이상의 아프리카독립교회 신자들이 있다.”

그는 이어서 결론적으로 이러한 ‘Insider Movement’들은 모두가 다 이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그 이름으로만 불리기를 원하는 기독교는 성공적으로 이런 내부(inside) 상황화에 적응하지 못한다. 선교사들의 교회 개척도 결코 ‘체제내부자운동’(insider movement)이 아니다. 이 운동의 경우에 따라 세례를 주기도 하고 아예 없기도 하는데, 나는 가끔 선교사들에게 ‘세례가 없는 예수신자’라는 아이디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다. 우리는 그들이 따르는 실천들이나 그들이 반영하는 아이디어를 모두 지지하고 있지 않다. 성경의 힘은 실로 비밀히 타오르는 불꽃이다”라고 하였다.

한편 “그리스도인은 번역되지 않는다”(“Christian does not translate” F. Decker, United Methodist) 글에서 어차피 불완전한 인간사회에 혼합주의(syncretism)란 당연한 것임으로 교회 지도자나 선교사들은 더 이상 혼합주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목청을 높인다. 랄프 윈터와 그의 팀은 세계선교를 위한 새로운 선교 이슈를 생산하려고 이른바, ‘Insider movement' 논의를 한창 띄우고 있는 것 같다. 선교의 상황화를 강조한 나머지 마치 예수 신앙을 문화적 야합의 한 부류로 몰고가는 인상이 짙다. 예수 신앙이 그 문화를 변혁하고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혼합, 통합 내지는 포용한다는 논리는 비성경적이다. 그의 주장은 성경이 말하는 절대 예수가 아닌 보편적인 예수, 상대적인 예수, 가짜 예수, 사이비 이단에서 말하는 예수든 상관없이 예수 이름만 들먹거린다면 ‘Insider Movement’라는 하나의 거대한 선교의 불꽃으로 그 정당성을 인정하고 봐주자는 논지로 들린다.

‘오직 예수’라는 신앙은 본질적으로 철저히 배타적이고 절대적이어서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그리스도인(Christianus)라는 별명은 때때로 죽음의 대명사로 자처해왔다. 복음이 어떤 이질적인 종교를 배경으로 하는 한 문화권에 들어가 토착화 내지는 수용 과정에서 형태의 변질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마리아상 앞에서 마리아 찬송과 기도를 하고 불상 앞에 절을 하고 모스크에서 함께 절하면서 예수 믿는 신자라고 자처하다면 그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거짓 선교이며 타협이다. 개혁자들이 외치던 오직 성경, 오직 예수, 오직 예수 믿음, 오직 은혜 같은 복음의 핵심 요소가 변질된다면 분명히 혼합주의요 영적 간음 행위이다.

오늘날 서구의 기독교가 죽어가고 아주 배타적인 이슬람이 그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바로 혼합주의 때문이 아닌가? 한국에서도 최근에 군 입영 문제에 대해 자신들의 신앙양심 문제로 기꺼이 감옥에 들어가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배타적인 여호와의증인이 법의 판결에서 승소하는 모습을 보며 정작 기독교인들은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랄프가 말하는 ‘Insider movement’ 같은 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면 선교를 함에 있어서 아마 다른 종교와 갈등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며, 선교사가 구태여 개종을 강조할 필요도 없고, 더 나아가 선교를 그렇게 강조할 필요도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보편적인 예수, 상대적인 예수, 변질된 에큐메니칼 복음이라는 잡초가 온 세상을 뒤덮어 과연 성경적인 바른 선교를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따라서 효과적인 선교를 빙자하여 성경에 기초한 기독교의 정체성을 깨뜨리고 성경의 독특한 가르침을 모두 양보하면서 엄청난 선교운동이 이방인 가운데 진행되고 있는 양 분별없이 떠벌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성경적인 바르고 순수한 선교를 약화, 변질시킬 뿐만 아니라 선교지를 교란시키고 세계복음화를 막으려는 사탄의 계산된 고도의 책략으로 세계선교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지도 모른다. 차제에 에큐메니칼운동과 로마카톨릭은 성경적 선교개념을 거추장스럽게 여기고 그 대신 사회학적, 정치학적, 문화인류학적, 심리학적인 그럴 듯한 옷을 입혔다. 즉 인간화, 교회가 아닌 세상, 하나님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 죄의 회개가 아닌 용서와 화해 등으로 대처하였음을 상기해야 한다. 2005.11.04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3723

랄프 윈터의 ‘내부자 운동’을 비판한다(2)
-혼합주의나 옅은 믿음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합리화시키는 운동

요즘 국내외 선교 일각에서 ‘내부자 운동’(Insider Movement)에 대한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내부자 운동의 정의에서부터 일관된 초점이 없고 의견이 분분하다. 국내 전방개척선교단체에서 내놓은 자료에는 ‘다른 종교의 울타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그 내부에 머무른 채 예수께 향하는 운동’이라고 애매하게 정의했다. 일반적으로 내부자 운동이란 자신이 속한 종교·세계관·관습· 이방문화를 떠나지 않고도 진실로 예수를 따르는 운동으로 이해한다.

내부자 운동을 지지하는 자들은 기존의 자기 종교적인 표현들을 계속 사용하고 그들의 사원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는 성경적인 모델로 열왕기하 5장에 등장하는 ‘나아만의 이야기’를 거론한다. 죄에 대한 신양 양심의 가책은 정상적인 신앙의 발로이다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당에 들어가 거기서 숭배하며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너는 평안히 가라. 저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진행하니라.” (왕상 5장 18~19절)

하나님의 특별한 만져주심을 체험한 나아만의 신앙 양심은 즉각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신앙고백과 동시에 하나님 중심의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당해야 하는 고난이 그를 압박해옴을 고백하고 상담을 요청한다. 곧 18절에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당에 들어가 거기서 숭배하며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거듭난 자라면 누구든지 죄를 지을 때 오는 양심의 가책을 받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신앙인이요 용서를 구하는 것이 거듭난 자의 바른 자세이다. 전혀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멀리 선교지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서도 ‘오직 한 가지 일’이라는 이름표을 단 많은 예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이는 현실적인 신앙문제이다. 특히 주초문제, 주일성수문제로 직장에서 갈등하고, 신축공사 현장에서 벌어지는 미신행위들, 명절 때 가족의 제사 지내는 문제로 갈등하는 신자들의 상황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일제 때 한국교회의 많은 무리들 가운데 신사참배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국민의례라고 하면서 교묘히 죄를 정당화시켰다. 그렇다면 신사참배도 한국판 내부자 운동으로 볼 때 잘 되었던 내부자 운동으로 볼 것인가? 초신자라 할 수 있는 나아만 장군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나님 앞에서 이미 저질러온 죄와 앞으로 다가올 죄악의 압력 즉, 이렇게 하자니 하나님께 죄를 짓게 되고, 저렇게 하자니 세상의 주인을 거역하게 되는 상황이었다”세상의 왕을 기쁘시게 할거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행 4:19)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데 문화적·정치적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함 대해 정직하게 용서를 구하였다. 아마도 첩첩 산중으로 꽉 막혀 숨막힐 듯한 상황 속에 사도 바울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하며 죄의 고통과 현실의 암담함에 울부짖으며 괴로워하고 아파했을 그의 모습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평안히 가라!”는 의미는 ‘내부자 운동’과 별개이다 나아만의 두 번째 요구는 우리가 다루는 유대교가 아닌 다른 종교 가운데에 머무른 채, 내부자 운동의 가능성에 대한 성경적 모델이 있는가 하는 질문과 직접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자신이 앗시리아에 돌아가면 자신의 왕을 따라 림몬의 당에 들어가서 거기에 절할 것인데, 그것을 용서할 것을 요청한다. 이에 엘리사의 반응은 어떠한가? “평안히 가라”(Go in peace!)고 한 것이 사죄의 요구에 대한 답변이다. 여기서 참 하나님을 발견하고 믿게 되었지만, 극단적인 현실 상황이나 인간의 나약성 때문에 부득이 자신이 처한 종교생활과 관습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진솔한 고뇌를 발견한다.

나아만이 처한 상황은 죤트라비스의 ‘C1 to C6 spectrum’의 분류를 적용한다면, C4(무슬림 권에서 예수신자로 무슬림으로 보지 않음) 단계를 지나 C5(자신들을 무슬림인데 예수를 믿는 신자, 또는 선교사가 전략적으로 전도하기 위해 무슬림이 되는 경우) 상황이라 할 만하다. 신앙을 고백한 순간부터 신앙은 성장하고, 성장에 따른 열매가 있기 마련이다. 나아만은 어떤 면에서 아주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특별 섭리로 태어난 신자라 할 수 있다. 감당할 만한 실력도 없는 어린 신자에게 술과 담배를 당장 끊어라, 주일 성수하는 직장으로 옮겨라 혹은 찬양대·주일학교 교사 등 봉사를 하라고 요구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결국 “평안히 가라”는 인사는 이방종교를 떠나지 않고 하나님을 섬겨도 괜찮다는 이른바 내부자 운동을 허용한 것으로 볼 수 없다. 이 인사는 신앙의 난제여서 대답하기 곤란하니 그냥 가라는 뜻인지, 하나님이 당신의 사정을 이해하실 것이니 염려 말라는 뜻인지 명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축복의 인사 한마디로 대답을 대신하며 떠나보내야만 하는 나아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엘리야는 마치 어린 교인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목자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런 엘리야의 심정이 어린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심정으로,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예수님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간혹 신앙생활 출발부터 모든 것을 정리하고 죽을 각오를 하는 신자들도 있지만, 어린아이의 특권인양 똥오줌을 아무데나 싸는 사람들도 있다. 어른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데 어린아이에게는 걱정거리가 되기도 한다. 부모는 어린아이의 철없는 행동을 한시적(限時的)으로 는 용인하지만, 성장을 해도 계속 그런 철없는 행동을 반복한다면 마침내 그를 낳은 부모에게 짐이 되고 말 것이다. 나아만의 이야기를 다 알 수 없다. 하지만 예수님의 언급에서 보면(눅 4:27), 특별 섭리로 부름 받은 그는 이방종교의 틀 때문에 그의 신앙생활이 순탄치 않았을 것이다. C5를 지나 C6(핍박 받는 지하신자 또는 순교자)에 이르는 신앙인이 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아마 택자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 섭리로 순조롭게 피하는 길을 만났든지, 아니면 다니엘처럼 불같은 시험을 통과했을지 모른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신앙이 성장해서 ‘보이는’ 왕보다는 ‘보이지 아니하는’ 왕을 기쁘시게 하는 자리까지 이르렀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교회운동은 거추장스런 서구풍(form)이 아니라 성경에서 출발했다 이런 관점에서, 랄프 윈터가 주창하는 내부자 운동을 말할 때 소위 무슬림 예수신자·힌두 예수신자·부다 예수신자·카톨릭 예수신자·정교회 예수신자·몰몬교 예수신자·여호와의증인 예수신자 등으로 불리는 사례들 속에 본질적으로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을 배격해야만 하는 신앙 양심의 가책을 떠올리지 않는 데 큰 문제가 있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항간에 북한의 봉수교회의 진위(眞僞)가 논의된 바 있었다. 金 씨를 살아 있는 신으로 받들면서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한다. 어쨌든 이런 교회도 중요한 내부자 운동이라고 관련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편 관제된 봉수교회와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지하로 들어간 지하교인들, 순교자들과 같은 질과 레벨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북한의 지하교회에서 울부짖는 기도를 하나님 외에 누가 알아주겠는가? 아마 봉수교회 교인들은 지하교인들을 보고 “당신들은 땅속에서 마음이라도 편했겠지만 우리들은 마음에도 없는 절을 하며 신앙을 지키느라고 당신들보다 맘고생이 더 심했다”고 큰소리칠지도 모르는 현실을 일제시대를 지나온 한국교회는 이미 경험했다.

G. Cowin(SIM-USA)은 ‘전방개척선교’(Mission Frontiers,vol.28,No.1)의 지상논쟁에서 내부자 운동의 어떤 내용들이 분명히 크게 잘못 인도하고 있다고 랄프 윈터의 이 운동을 신랄하게 공박하였다(Some of content seemed highly misleading or clearly wrong on the subject of Insider Movements). 또한 그는 오늘날 선교 필드 경험이 많은 선교 지도자들은 진실한 그리스도인도 무슬림·힌두교·불교인이라고 실제로 응답할 수 있다는 이 발상을 거부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 내부자 운동은 기본적으로 모슬렘권 선교필드에 초점이 맞춰진 맞춤전략의 하나로 계발된 아이디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이 기독교의 정체성을 짓밟으면서까지 선교의 상황화를 추구한다면 본질과 수단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운동이 윈터 자신도 우려했듯이, 혼합주의나 옅은 믿음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합리화시킴으로, 전투하는 지상교회의 순교신앙을 욕되게 하고 복음과 거리가 먼 이단까지 정통성을 부여해줄 수 있다. 그러하기에 극히 위험하고 비복음적·비신학적 사상으로 경계하는 것이다. 이 운동은 2000년간 진행되어온 교회운동이 마치 거추장스런 서구풍(Western Form)인양 동일시함으로 현대 선교 필드의 여기저기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는 서구(미국)선교의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노력의 하나로 엿보인다. 하지만 내부자 운동 같은 “교회 없는 기독교”(Churchless Christianity) 운동이 새로운 대안인 것처럼 무분별하게 떠벌리는 것은 선교 전략에 크게 혼란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마침내 세계선교의 역량을 무력화시키고 말 것이다.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5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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