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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의 특성과 기능
이철호 2015-11-22 20:45:28 | 조회: 1703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의견은 이데올로기(혹은 이념) 문제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아래의 글은 본인이 2012년 4월 <복음인가 이데올로기인가>란 제목으로 다른 인터냇매체에 실었던 것인데,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찬성 혹은 반대 주장을 파악하는데 조금이라도 참고가 되길 바라서, 부족함이 있더라도 제목만 바꾸어서 그대로 여기에 게재하고자 합니다.


이데올로기의 특성과 기능

신자의 인구에 회자되는 기독교적인 중심 상징이나 가치들이면서도, 여전히 그 실체 파악이 쉽지 않아 합의 도달이 어려운 개념들이 몇 가지 있다. '하나님나라', '하나님의 형상', '은혜의 수단', '팔복', '복음'과 '성령 충만'이 이에 해당된다고 여겨진다. 소위 보수나 진보로 운위되는 신앙 노선도 이런 개념들에 대한 개인적인 이해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동일한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신자들 사이의 의견이 매우 첨예하게 대립되는 경우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이신칭의의 복음인 로마서의 요약으로 간주되는 로마서 3장 21~26절에 근거해서 표현하면,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및 화해 사역에 관한 기쁜 소식'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공관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은 주로 하나님나라의 복음(마4:23, 24:14, 막1:15, 눅4:43, 16:16)이지만,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롬3:24~25, 고전1:23, 갈3:13, 6:14, 살전5:9~10)이다.

이에 관해 김세윤 교수는 하나님나라의 복음 선포와 십자가의 복음 선포 사이의 차이는 구원사적 시점의 차이에서 유래한 것이므로 약속과 성취의 관계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나아가서 김 교수는 본래 성경에서 '의'는 법정적인 개념일 뿐만 아니라 보다 근원적으로 관계론적인 개념인데-루터 이후-이신칭의로 표현된 복음을 법정적 개념으로만 이해한 탓으로 구원론에서 윤리가 분리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지적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복음이 하나님나라의 질서만 아니라 의의 관계성도 함께 함축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렇지만 성경에서 복음의 가치를 가장 포괄적으로 암시하는 기독교적인 상징은 '희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희년법(레25:8~55, 사61:1~3, 눅4:18~19)이 영적인 차원만 아니라-법과 제도 및 이데올로기를 포함한-사회‧정치‧경제적인 차원까지 함의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 혹자는 한국 사회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이중 위기' 상황에서 신자들이 붙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희년'의 복음이라고 단언한다. 특별히 여기에서 희년의 복음을 세상적인 이데올로기에 관한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신약시대 희년의 복음이 진정한 의미의 성령 충만에 의해 성취되었듯이(행4:32), 주로 인간의 잠재의식에서 작동되는 영적 세력인 이데올로기도 성령 충만을 통해서만 제대로 극복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까닭이다.

프랑스 혁명기에 데스튀트 드 트라시가 창안한 것으로 알려진 이데올로기라는 낱말은 본래 어떤 총체적인 목적 달성을 위한 가치, 신념과 규범의 체계를 의미하였다. 하지만 오늘날은 이 낱말이 쓰이는-인식론, 정치‧경제, 사회학, 종교와 같은-분야에 따라 그 전제와 의미가 달라지고 있어 엄밀한 정의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다양한 정의 중에 혹자는 이데올로기를 '환상과 자기기만과 자기 정당화에 근거한 현실 인식인 허위(왜곡된)의식'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유의할 만하다. 여하튼 여기에서 우리는 이데올로기가 마성적인 기만성을 띠는 세상적인 지혜임을 알 수 있다(약3:14~15).

그런데 예수께서 겪으신 광야 시험 중 그 첫 유혹(마4:1~4, 눅4:1~4)과 팔복의 마지막 복(마5:10~12)을 마성적인 이데올로기와 관련시켜 숙고해 보면, 이데올로기가 인간 삶의 가장 절박한 문제인 먹는 문제나 안전 문제를 통해 수월하게 접근하여 하나님나라를 구하는 삶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여기서 팔복에 관해 덧붙이자면, 불의한 기득권의 탐욕, 궤변, 위선, 및 폭력을 다루는 칠(팔) 저주(마23:13~36)와 팔복(마5:3~12) 사이의 연관성이 간과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아래에 요약된 이데올로기의 특성과 기능은 우리 문화가 아닌 다른 어떤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정리한 것이어서 그 타당성에 어떤 한계는 있을지라도, 우리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득세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를 이해하는 데 어떤 참고는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긴다.

1. 이데올로기의 특성

1) 이데올로기란 자기 섬김(self-serving)의 기제(mechanism)이다. 고정된 관념이나 의식 체계로서의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자기 숭배인 교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창3:5). 이론이나 교리로서의 이데올로기는 진리에 봉사하기보다 자체를 유지하려는 속성이 있다. 성경 본문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인 해석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그 본래의 가르침과 상충하기 마련이다(예: 인종 우월주의, 민족주의, 교파 우월의식, 유교적 권위주의 등).

2) 이데올로기는 항상 사회, 문화, 정치나 종교 등의 특수한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특수한 집단의 이익에 봉사한다.

3) 이데올로기는 특정 집단이나 계층을 위한 의미 있는 이론적인 틀을 제공한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프로그램 지향적이다(예: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

4) 이데올로기는 이론만 아니라 실천(praxis)도 구성한다. 이데올로기와-권력이 적법화된-사회 정치적 현실 사이에는 연관이 있다. 이데올로기는 행동이 관련된 사상이나 제도의 체계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데올로기와 정치권력 사이에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5) 이데올로기는 전제(presuppositions)를 가지고 있지만, 그 전제들은 의도적인 모호성을 띠는 경향이 있으며 정직한 비판을 회피한다. 그러면서도 이데올로기는 자체의 전제에 근거한 분석 도구들을 활용한다.

6) 이데올로기는 프로그램화된 세계관이다. 이데올로기는 하나의 특수한 관점에서 현실을 해석하는 유기적인 사상 체계이다.

7) 이데올로기는 어떤 기존 질서를 정당화한다. 신학 이론조차도 자주 기득권을 정당화하는데 봉사할 수 있다. 이것은 이데올로기가 사용권(usage)보다 소유권(ownership)을 선호하는 까닭이다. 이와 관련하여 장진광 목사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소유권을 자발적으로 반납하지 못하는 데 있으며 공산주의의 문제점은 사용권을 적극적으로 쟁취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8) 이데올로기는 자기비판의 결여라는 현저한 특성을 지닌다. 이와 같이 이데올로기가 필연적으로 비판에 불관용적인 속성을 드러내는 것은 우리 현대사에서 이데올로기가 득세할 때마다 언론 통제나 방송 장악이 함께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확인될 수 있다.

9) 이데올로기는 복합적인 현실을 단순화한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빈약하고 일면적이며 왜곡된 견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역으로 이것은 편견(bias)에 대한 타당한 비판 의식 제고를 위해 대학에서의 인문‧사회과학을 포함한 학문 연구의 중요성을 시사해 준다.

10) 이데올로기는 절대화하려는 속성이 있다. 그것은 의미에 대한 질문이 중단되고 그 의미의 한 요소가 절대화될 때 탄생한다. 그것은 사람들로 극단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해 하우츠바르트는 이데올로기를 우상숭배의 통로(conduit)라고 규정한다.

11) 이데올로기는 신화화되기 쉽다. 이것은 이데올로기 자체의 무비판적이며 비합리적인 속성뿐만 아니라 인간 문화에서 신화가 배제될 수 없다는 점 때문으로 볼 수 있다.

12) 이데올로기는 종교의 대체물이다. 그것은 규범(norms)을 재규정한다. 그것은 해당 이데올로기의 목적에 이바지하는 방향으로 선, 진리, 정의와 사랑을 정의한다. 본질적으로 이데올로기는 종교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전체주의적인 주장을 하는 이데올로기는 다름 아닌 복음의 왜곡이다(예: 나치의 국가사회주의, 북한의 주체사상).

13) 이데올로기는 목적을 위해 자주 수단을 희생한다. 이데올로기는 그 목적이 모든 수단을 무차별적으로 정당화하는 와중에서 발생된다. 이와 같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상황에서 독재 체제마저 별 저항 없이 허용될 수 있다.

14) 이데올로기는 사고하는 주체를 대상화(對象化)한다. 지속적인 비판적 성찰이 없으면 인간의 자유(freedom)는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비인간화의 속성은 재물의 소유에 따른 계급사회를 기도하는 신자유주의에 각별히 해당된다.

15) 이데올로기는 결국 자기기만(self-deceiving)의 기제이다(고전 3:18~19, 갈 6:7, 약1:22). 여기에서 이데올로기의 기원이 마성적(demonic)임을 알 수 있다(요8:44, 약3:15). 이와 관련하여, 스토트(J. Stott,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기만과 압제와 타락이라고 하는 사탄의 세 가지 전략은 변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2. 이데올로기의 기능

1) 이데올로기가 어떤 사회 집단이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기정당화를 꾀하는 기제이지만, 이 기제는 바닷속 빙산의 역할처럼 주로 무의식적으로(subconsciously) 기능한다. 이런 점 때문에 신학하기에 심리학이나 사회학과 같은 타 학문제휴 접근이 요구된다고 여겨진다. 이런 인간의 잠재의식의 문제는 진정한 의미의 성령 충만을 통해서만 제대로 다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2) 이데올로기는 제도(institutions) 안에 기숙한다. 이데올로기는 그것에 개연성을 제공하는 교회나 학교, 이익 단체나 정당과 같은 사회적 제도 없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여기서 제도를 뒷밭침해 주는 법과 입법 활동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이 제도들 중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것은 교육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이데올로기와 교육 사이의 연관성 때문에 지금도 특히 역사 교과서 기술 관점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보인다.

3) 이데올로기는 위협적인 상황에서 강화된다. 남과 북의 막강한 군사력이 인접하여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은 불의하고 압제적인 권력이 이데올로기를 통해 득세할 수 있는 호조건을 제공하는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외부의 도덕적 압력으로 더욱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

4) 이데올로기는 사람의 감정에 호소하는 면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감정이란 사랑이나 긍휼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증오, 두려움, 차별, 연고주의, 지역감정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가리킨다.

5) 이데올로기는 언론 매체를 통해 비타협적인 방식으로 선전된다. 자주 선동을 통해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적으로 매도하거나 혹은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 불의한 기득권에 대해 정의와 공평을 요구하거나 고통당하는 북한 동포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만 보여도 여지없이 '종북좌파'로 매도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3. 우리 사회에서 유의해야 할 3대 이데올로기

본인의 주관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신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하나님나라의 복음에 더욱 충실키 위해 우선적으로 유의할 필요가 있는 이데올로기는 다음의 세 가지로 사료된다.

1) 번영(경제) 이데올로기: 물질적 번영의 목표는 번영의 수단인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우리의 행동을 맞추어 나가도록 요구한다. 우리가 경제성장을 의존하면, 그것이 우리가 생존키 위해 해야 하는 바를 우리에게 강요하고 계시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마6:24). 성공과 번영의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번영신학의 주된 문제점은 신약에서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있는 탐심을 방임(放任)한다는 데 있다고 보인다(골3:5, 엡5:5). 모든 가치를 재물에 종속시키는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도 일종의 번영 이데올로기로 볼 수 있다. 이에 관한 이만열 교수의 '일제 식민지 근대화론 문제 검토'라는 정중한 논박은 숙고할 만하다. 실제로 올해(2012년)는 일제의 토지조사령 공포 백주 년(두 개의 희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2) 안보(반공) 이데올로기: 기존 질서 유지를 위해 가상의 적에 대한 집단적인 두려움(fear)에 호소하는 전략이다. 수반되는 폭력은 지배 질서에 순응하길 원치 않는 범법자들을 다스리는 자위 수단으로 정당화된다(예: 긴급조치).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은 '천안함 사건'은 안보 이데올로기의 전형이라 볼 수 있다. 신자의 경우 희년의 복음에는 자유의 정신만 아니라 평등의 정신도 함께 있음을 고려하면서, 특히 반공 이데올로기를 분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행2:44~45, 행4:32~35).

3) 권위주의 이데올로기: 이것은 아직도 동양사회에 팽배한 유교의 가부장적 권위주의 문화를 말한다. 이처럼 명령에는 익숙하고 토론에는 약한 수직적인 문화 속에서는 불공평과 불투명성은 조장되고, 복음이 요구하는 상호 존중과 상호 책임성은 저해되기 쉽다. 이런 권위주의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섬김보다는 지배를 선호함으로써 도리어 참된 권위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막10:45). 또한,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토론 부재 문화는 기득권의 탐욕에 휘둘릴 여지를 더 많이 허용하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혹자는 우리 사회의 주류 기득권은 혼맥(婚脈)으로 형성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유의할 필요가 있는 3대 이데올로기에 대해 대략 살펴보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이들이 상호 제휴관계에 있다는 점일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마성적 이데올로기가 겨냥하는 목표는 '가치관의 혼돈', 혹은 '가치의 혼란'이라고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복음의 가치에 더욱 부응하는 신자의 삶을 위해 분단국의 현실을 도외시해서도 안 되겠지만 사랑, 정의, 평화와 진실이라고 하는 기독교적인 본래의 가치에 대한 우선순위는 흔들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번영(경제)이나 안보(반공) 자체가 필요 없다거나 무가치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들을 고유한 기독교적인 가치보다 앞세워 절대화하는 일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미6:8, 마23:23).

참고 도서

1) 김세윤, <복음이란 무엇인가>. 서울: 두란노아카데미, 2003.
2) 이만열, '일제 식민지 근대화론 문제 검토'(<한국 근현대 역사학의 흐름> pp. 524~573). 서울: 푸른역사, 2007.
3) 장진광, <희년과 복음>. 서울: 두란노, 1994.
4) 하우츠바르트 / 김재영 옮김, <현대‧우상‧이데올로기>. 서울: IVP,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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