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 목사의 권유로 교회를 개척하다(2)

천헌옥 목사 자전 에세이, 이끌려 살아 온 세월/9

 

문전박대 교인이 중심 교인이 되다

두 번째로 교회를 찾아온 사람은 남편과 그 손을 잡은 아들, 아내와 그 품에 안긴 딸, 그리고 친정어머니, 그렇게 한 가정이 지하교회를 찾아왔다. 천하를 얻은 듯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등록은 하지 않았다. 그들이 돌아가고 우리는 일주일 내내 행복한 걱정에 빠져 기도하고 있었다. 과연 다음 주일에 다시 올 것인가 하는 것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다음 주일에도 다시 찾아왔다. 그러나 여전히 등록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있었다. 우리는 수소문 끝에 그들이 어디에 사는지를 확인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심방을 갔다. 초인종이 울리니까 안에서 누구세요라는 음성이 들렸다. 온유한교회 목사입니다. 분명히 그렇게 말했기에 문을 열어줄 줄 알았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안에서 뭐라고 궁시렁거리는 말만 들릴 뿐이었다.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 그냥 놔둘걸. 괜히 건드려 교인 하나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에 교회 안 나오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더 걱정하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주일에 교회에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아무 일 없는 듯 예배를 드리고 돌아갔다. 그리고 또 몇 개월이 지났다. 등록카드만 내지 않았지, 이제는 제법 우리교회의 교인이 다 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를 받아 주겠지 하고 그 집을 다시 찾아갔다. 그러나 역시 문은 열리지 않았다. 똑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음 주일에 똑같이 교회에 출석하였다. 그렇게 6개월이라는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드디어 그 집의 문을 활짝 열게 하는 사건을 만들어 주셨다.

어느 날 교회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 부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나더러 길병원에 좀 올 수 없느냐고 물었다. 아들이 열이 40도까지 올라가 응급실에 왔다는 것이다. 전화를 끊자마자 부리나케 달려갔다. 병원에서는 40도까지 열이 오르면 뇌 손상도 염려가 되니까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겁을 주었기 때문에 부인은 부들부들 떨기까지 하였다.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내 마음은 평안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아무 일 없습니다. 내일이면 퇴원할 것입니다.” 황당하다는 표정을 뒤로 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그들은 다음날 퇴원하여 교회에 나왔다. ! 그랬으면 이제 우리를 자기 집으로 부를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내심 그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그렇게 버려두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인가 11시가 되어 막 잠자리에 들었는데 전화가 왔다. 그 부인이었다. 나더러 자기 집에 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게 무슨 일일까 하며 달려갔다. 거실이 아니라 안방까지 바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딸아이가 열이 펄펄 난다는 것이다. 일찍 나를 불렀을 텐데 늦어진 것은 남편과 아내가 의견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병원에 가자고 우겼고 부인은 목사님을 부르자고 한 것 때문이었다. 결국 목사님을 불러 기도를 받고 안 되면 병원에 가자는 걸로 합의를 이루어 그 시간에 나를 부른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 바보들 하나님이 네 집 문을 열라고 하시는 일을 모르고 허둥대는구나 하면서 딸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기도를 시작하는데 하나님이 벌써 평온한 마음을 주시면서 아무 일 없다는 응답을 주셨다. 기도를 마치자 아이의 이마에서 땀이 주룩 흘러내렸다. “내일 아침이면 말끔히 나아서 일어날 것입니다.” 남편은 반신반의하였지만, 아내는 내 말을 믿는 것처럼 보였다. 후담을 들으니 그래도 병원에 가자는 남편과 목사님 말씀을 믿어보자는 아내가 한참을 다투다가 밤을 지냈는데, 아침에 아이가 말끔히 나아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 길로 그 집은 교회에 대해 자기 집 문을 활짝 열었고 새신자공부와 구역공과공부를 통해 신앙이 일취월장하게 되었다. 다음 해 그들은 집사 임명을 받고 교회의 핵심 멤버가 되었다.

첫해 성탄절을 맞아 주일학생들의 발표회와 함께.
첫해 성탄절을 맞아 주일학생들의 발표회와 함께.

 

교회당 구입과 함께 찾아온 위기

7천 세대 아파트를 그리 벗어나지 않은 동네에 교회당을 매각한다는 광고가 났다. 가보니 동네 가운데이고 우리 형편에 딱 맞는 곳이었다. 덜렁 계약하고 잔금을 치렀다.

개척 일 년 만에 교회당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개척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작지만 내 집을 가지게 되었다는 기쁨이, 하늘에라도 날아가기에 충분하였다. 그때가 1988년 올림픽을 하던 그해의 초여름이 시작되는 6월 하순경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 기쁨이 깨어진 것은 닷새 뒤인 새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는 첫 주일 오후였다. 물론 우리의 방심한 탓도 있었을 것이다. 전도사가 주일학교 오후 예배를 인도하고 있었고 나는 사택에서 성도들과 아직도 남은 기쁨을 나누고 있었던 때였다. 갑자기 이층 교회당이 왁자지껄하더니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이 아닌가? 나는 심상찮다는 예감을 하면서 급히 교회당으로 뛰어 올라갔다.

아마도 동네 모든 사람들이 다 몰려온 것 같았다. 성급한 사람들은 벌써 전도사의 멱살을 움켜잡고 있었다. 총각 전도사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는 얼른 그 틈에 끼어 들어갔다. 그들은 이제는 나의 멱살을 움켜쥐고 있었다. 나는 웃으면서 제가 이 교회의 목사입니다. 사과할 일이 있으면 제가 하겠습니다하였다. 그랬더니 서로가 떠드는데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여기저기서 떠드는 그들의 말을 종합해 볼라치면 교회가 너무 크게 떠들어 자기들의 낮잠을 깨웠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교회당은 주택가의 한 복판에 위치하고 있었고 전도사는 교회당 창문을 다 열어 놓고 마이크 볼륨을 최대한 올려서 열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집이다. 얼마나 좋은가. 전도사도 신이 났다. 그것이 온 동네에 우리가 교회당을 인수받아 이사 온 것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머리를 숙여 정중히 사과를 드렸다. 그러고 있는 동안에 동네 사람들은 한 사람 한 사람 모여들어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한목소리로 교회를 향해 공격과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하였다. ‘한 놈 쫓아내니 한 놈이 들어오고 또 한 놈을 쫓아내니 또 한 놈이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1시간쯤 실랑이를 치더니 그리고 모두가 통장과 반장은 책임을 지라고 하면서 화살통을 통장과 반장에게 위임하고는 흩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한 놈 쫓아내니 한 놈이 들어오고 또 한 놈을 쫓아내니 또 한 놈이 들어왔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통장과 반장은 무엇을 책임지라는 것인가? 그것은 통장을 만나 이야기하면서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원래 이 집은 교회당으로 지은 것이 아니었다. 일반 주택이었는데 6개월 전에 이 집을 산 목사님이 이층을 올리면서 근린생활시설물로 허가를 받았던 것이었다. 사람들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으니 목사는 무슨 학원이나 미용실을 할 것이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완공을 하고서는 교회를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온 동네 사람들이 몰려나와 교회당을 습격하여 목사를 보자기로 둘러씌우고 실컷 두들겨 패고 성경과 찬송은 다 찢어 버렸다는 것이다. 또 주일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서 교회당 문을 가로막고 출입을 못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는 삼 개월 만에 떠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로 이사 온 사람도 역시 교회를 하는 목사여서 자기들이 그 목사도 온 지 2개월 만에 쫓아내었는데 이제 또 우리가 왔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육 개월 만에 세 번째 목사로 이 교회당을 구입하여 들어온 셈이 되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에 반상회를 할 터이니 나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주택가에 교회를 이사하고 난 뒤 주일 예배를 마치고 단체사진
주택가에 교회를 이사하고 난 뒤 주일 예배를 마치고 단체사진

반상회를 하는 날이었다. 과일과 떡, 음료수를 좀 준비하여서 내어놓았다. 어떤 이들은 교회 것이라고 먹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이들은 먹고 따지자면서 먹었다.

회의 중간에 교회 문제가 본격 거론되면서 비로소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게 되었다. 나는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렸다. 어떤 이들은 나를 조소하고 어떤 이들은 공격적인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있는 것을 나는 머리 위로 확연히 느낄 수가 있었다. 한두 사람만이 내가 목사라고 답례를 하는 분이 있었다. 내가 머리를 들자마자 그들은 내게 다짜고짜로 퍼붓기 시작했다. 그들의 말을 요약하면 대강 이런 것이었다. ‘주택가에 교회가 있으므로 시끄럽고 집값이 하락되었으니 당장 교회를 그만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주 낮은 음성으로 참으로 정중하게 사과부터 시작하였다. “저의 불찰로 인해서 주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서 참으로 죄송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피해를 주고자 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리고 또한 한 20여 평 되는 작은 장소에서 숨을 죽이면서 교회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이 집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더 넓은 장소를 구하면 곧 옮길 터이니 그때까지만 참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때까지는 에어컨을 달고 창문을 봉쇄하여 절대로 시끄럽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민 여러분의 깊은 아량과 이해가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낮은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은 반반으로 나누이기 시작했다. 그 사람 참 신사 같아 보이는데 모르고 왔으니 나갈 때까지 기다려 주자는 쪽과 그래도 나갈 때까지라도 교회는 할 수 없다는 쪽이었다. 기다려 주자는 쪽은 서서히 자리를 뜨기 시작하여 열한 시쯤 되니 극렬히 반대하는 몇 가정만 남고 다 흩어지고 말았다.

끝까지 반대하며 교회를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가정은 여섯 가정이었다. 교회당 바로 뒷집에 사는 통장 집과 한 집 건너 사는 반장 집, 그리고 통장과 반장 집 사이에 사는 집, 교회당 바로 옆에 사는 세 집이었다. 여섯 가정 중 두 가정은 천주교 교인이고, 한 가정은 기독교인 집이고, 세 가정은 불교인이었다. 나는 열두 시가 넘도록 시달리다가 결론을 얻지 못하고 돌아왔다.

보통 실망이 아니었다. 팔고 간 전임자는 나에게 한 마디도 이런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없었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개척은 여기서 마감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이렇게 나는 나대로 중병을 앓고 있는데 개척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교인들은 누구도 힘이 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교인들 모두가 나를 비웃기나 하듯이 다들 떠난다는 말을 퍼뜨리고 있었다. 떠난다는 사람밖에 없는 교회에서 위로를 얻지 못하고 나는 며칠을 그렇게 앓고 있었다. 그때 나를 일으키는 한 통의 고지서가 왔다. 그것은 전임자가 내지 않고 간 수도세 독촉장이었다.

나는 마침내 속풀이 할 근거를 얻었다. 그리고 지금 모든 근심을 내려놓고 웃고 있을 그에게 전화를 돌렸다.

목사님 계십니까?”

지금 안 계신데요

수화기에 들리는 음성은 아직은 처녀 같아 보이는 여성이었다.

사모님이신가요?”

아닌데요. 저는 목사님 처제입니다

목사님 어디 가셨는가요?”

아직 모르십니까?”

아니 뭘 모른다는 말인지요?”

목사님이 화요일에 돌아가셔서 사모님이 장례를 치르려 가셨습니다.”

그것은 청천벽력이었다. 이사 가서 채 열흘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 무슨 날벼락 같은 이야기인가? 그녀의 이야기는 대강 이러했다.

목사님은 부흥사였다. 전라도 어느 기도원에 집회를 나갔다. 연로하신 그의 어머니가 아들의 집회를 보고 싶어 월요일 저녁에 참석을 하였다. 화요일 오전 공부를 마치고 어머니는 집으로 가시고 싶어 하셨다. 아들은 자신의 차로 어머니를 역까지 태워 드리고 돌아오고 있었다. 커브 길에서 버스가 정차를 하고 있어서 그 뒤에 같이 정차를 하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크레인이 커브를 돌아오다가 핸들을 너무 꺾어서인지 버스 뒤에 정차해 있는 목사님의 차를 들이받아 버렸다. 목사님 차는 강에 빠졌고 크레인 트럭은 그 위에 깔고 뭉개어 버렸다. 119 구조대원이 와서 차를 건져 올려 절단기로 차를 절단해서 시신을 꺼내보니 비참해서 뭐라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그것은 목사님은 세 번 죽음을 당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크레인 트럭에 운전석을 들이 받히면서 충격을 받았고, 물에 빠져 두 번 죽음을 당했고, 크레인이 깔고 뭉개면서 세 번 죽음을 당하신 것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갑자기 구토증이 일었다. 교회당으로 올라갔다. 강대상에 엎드렸다. 그리고 애먼 하나님께 해대기 시작했다. “도대체 하나님은 목사도 아끼지 않으십니까?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이래가지고 성도들에게는 무슨 낯이 있겠으며 또한 불신자들의 조롱을 어찌 들으려 하십니까? 하나님은 저 같은 것도 아끼지 않으시겠습니다.”

그 말을 반복하면서 하나님께 항의를 하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점심을 먹지 않았다는 생각조차 할 겨를도 없이 해는 서산에 걸리고 있었다. 정말 하나님이 나도 아끼지 않으시는 것인가?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그렇지 않았다. 그 기도는 너무 과한 기도였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었다. “아닙니다. 주님 적어도 저에게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그렇게 기도를 수정해 가다가 결국 이렇게 결론 짓고 있었다. “주님! 저는 견디겠습니다. 떠나지 않겠습니다. 피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이 가라 할 때까지 여기 있겠습니다. 기어코 이기겠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나의 기도가 이렇게 변하기까지는 주님의 음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제까지 너와 함께한 것처럼 지금도 너와 함께 한다. 나는 너를 아끼고 사랑한다.” 갑자기 내 마음속에 힘이 솟아올랐다. 나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었다.

주께서 저를 사랑하시면 나는 여기서 맞아 죽어도 영광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기도하였다. “주님 저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죄인에 불과합니다. 저에게는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주님은 말씀 한마디로 바다를 잔잔케 하시었지만 제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주님이 저들을 향하여 조용히 하세요.‘하면 저들은 바다가 잔잔해진 것같이 잠잠해질 것입니다. 이제 주님이 저들을 잠잠케 해 주시기를 빕니다. 저는 그들이 교회에 대해서 하는 일에 대해서 주님에게 모두 일러바치겠습니다. 들으시고 주님 뜻대로 처리해 주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용기백배하여 자신만만하게 집으로 내려왔다. ‘이놈들 주님에게 다 이를 거다. 너희들 하는 모든 것을 주님에게 이를 것이니 두고 봐라

참으로 하나님은 나에게 든든한 백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 버렸다. ‘이것은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내가 책임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오직 심부름만 한 것뿐이다그렇게 생각했다. 어느 날 기도하는데 문득 성령께서 이런 마음을 주셨다. ‘먹은 놈이 물켠다고 하는 말이 있잖냐?’ 그래서 나는 속히 선물을 수십 개를 사 와서 교회당 이웃들에게 돌렸다. 당시 5천 원 정도 하는 것이니 제법 괜찮은 것이었다. 주인이 없는 집은 셋방에게 맡기면서 주인이 오면 교회에서 드리는 선물이라고 하라 하였다. 그런데 다 저녁이 되어서 두 여자가 찾아왔다. 이웃집 주인 여자들이었다. 그러면서 마당에 선물을 툭 던지면서 하는 말이 누가 이런 것 준다고 봐줄 줄 알았어요? 이런 것 주려 하지 말고 속히 떠나는 게 좋을 거요협박성 말투였다.

자기들의 집이 교회 때문에 팔리지 않는다고 반상회 하는 날 끝까지 남아서 따지던 사람들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당해 주는 것뿐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날그날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이르기 시작했다. “주님 뒷집 통장이 오늘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 아내가 부엌에서 설거지하면서 찬송을 하는데 그것이 듣기 싫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제 아내에게 찬송을 부르지 말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찌해 주십시오.”

주님! 통장이 또 이런 말을 합니다. 자기 방에 누우면 교회당 십자가의 네온이 빤히 보이니 그 불을 좀 끌 수 없느냐고 합니다. 십자가의 불을 어찌 끕니까? 저는 그리 못합니다. 하나님이 어찌해 주십시오.”

주님! 옆집 사람이 교회 때문에 자기의 집이 안 팔린다고 야단입니다. 정말 아주 좋은 값에 집이 속히 팔리게 하셔서 교회 때문에 하는 말이 들리지 않게 해 주십시오주로 그런 식의 이름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은 의외로 속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루는 우리 둘째가 울면서 뛰어 들어왔다. 대문 앞에서 놀고 있는데 앞집 아이가 문을 여는 순간 그 집의 개가 갑자기 뛰쳐나와 등을 물었다는 것이다. 그 개는 참으로 덩치가 큰 개였다. 웃옷을 벗겨보니 제법 상처가 있었다. 겁도 나고 화도 나고 분이 치밀었다. 천주교를 나간다면서 그렇게 교회를 핍박하더니 이제는 개까지 그러는구나 싶었다. 당장에 좇아가서 혼 줄을 내주고 싶었다. 그러나 성령께서 내 마음에 말씀하시기를 이는 네 일이 아니고 내 일이다. 이제 그를 얻을 좋은 기회가 아니냐?’하는 것이었다.

나는 기도했다. 지혜를 달라고 했다. 참으로 좋은 기회가 되게 해 달라고 했다. 주께서는 아무 염려하지 말라고 나를 안심시켜 주셨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그 집을 찾아갔다. 벌써 자기 아이한테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지 놀라면서 황급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았다. 개를 잘 묶어 놓았는데 그렇게 되었다면서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는 아이의 등을 보여주며 심각성을 깨우치면서도 일부러 웃는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안심하십시오. 하루를 기다려보고 이상이 있으면 병원에 가도 늦지 않을 겁니다. 개를 키우다 보면 그럴 수 있겠지요. 이웃 간인데 잘 지내봅시다.” 하고 나왔다. 그리고 난 뒤에 우리는 아무 트집도, 아무 요구도 하지 않았다. 성령님이 하신 일이니, 아이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상처를 보아서는 개를 죽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많은 비용이 들것이라 예상하였던 그 집은 이제 교회에 대해서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 집의 개를 통하여 그 주인의 입을 꾹 닫아 주신 것이었다. 첫 번째 집은 그렇게 넘어갔지만 그래도 다섯 집이 남았다.

나머지 다섯 집은 교회당 지하실 공사를 시작하면서 해결되기 시작했다. 전에 있던 분들이 조그마한 연탄 창고 같은 지하 창고를 기도실로 쓰기 위하여 제법 크게 파 놓고는 마무리를 하지 않고 그냥 가버린 것이었다. 여름철이 돌아오면서 비가 오기 시작하니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잘못하다간 집 전체가 위험하였다. 속히 공사를 마무리 지어야 했다. 나는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공사를 전문하는 집사님 한 분을 알게 되었다. 그 집사님이 우리 사정을 알고는 모래 한 트럭을 실어다 주었다. 나는 반만 해도 된다고 했지만, 하나님께 바치는 것 반만 하는 게 어디 있냐면서 억지로 한 대 분을 주시는 것이었다.

모래는 큰 트럭의 한 대 분이었으니 골목길의 절반을 차지하였다. 아이들은 날마다 모래를 가지고 놀았다. 그러니 모래가 온 길에 늘리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교회가 미운데 모래까지 그렇게 되었으니 그들은 길을 지날 때마다 욕설을 퍼붓는 것이었다. 모래 때문에 욕설을 날마다 바가지로 얻어먹는 것이었다. 마음은 급하고 지하실 공사는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고 죽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울면서 공사를 서둘러 끝냈는데 모래가 절반이나 남는 것이 아닌가? 처치 곤란이었다. 그래서 이참에 옆집에 시비하던 그 집의 담을 새로 고쳐 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 담은 자기네들 쪽으로 기울어 진지가 상당히 오래되었고 갈라진 틈을 보니까 이끼가 낄 정도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는데도 그들은 교회가 집을 증축하면서 그렇게 되었노라고 생떼를 쓰는 것이었다. 나는 그 집 담을 새로 해주면 그 사람의 마음도 얻을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그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나는 그 집 안 주인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목사님! 우리는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이사를 갑니다. 그러니 새로 오시는 분과 의논을 하셔서 하시지요.” 하는 것이다.

아니 이사를 하다니요?”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집이 팔렸습니다.”

그래요? 얼마에요?”

예 길 쪽에 붙은 앞집은 4천만 원인데 우리는 45백을 받았어요.”

나는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은 사람처럼 서서 두려움에 떨었다. 하나님의 임재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가 준 선물을 도로 던지면서 누가 이런 것 준다고 봐줄 줄 알았어요?’ 하던 그 여자였다. 나는 하나님께 그 집을 좋은 값에 팔고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는 잊고 있었는데 불과 채 두 달도 되지 않아서 집을 팔고 이사를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의 이야기가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이다.

목사님! 동네에 교회가 서면 처음에는 다 그런 겁니다. 그래도 있어 보세요. 목사님도 집을 잘 사왔습니다.” 그러면서 웃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 하나님! 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렇게 놀라운 역사를 하셨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나는 두려움으로 감사를 드리고 그 집을 나오는데 발이 구름을 밟고 있는 것 같았다. 두 번째 집은 그렇게 소리 지르는 입을 다물게 해 주셨다.

여름성경학교를 영종도로 가서 수련회를 함께 진행하면서...
여름성경학교를 영종도로 가서 수련회를 함께 진행하면서...

그해는 여름철에 건축자재가 공급이 안 되어서 애를 먹고 있었다. 모래 한 리어카가 오르기 전에 한 트럭의 값으로 뛰어올라 있었다. 우리 모래는 금모래로 변하여 있었다. 열 리어카도 족히 넘을 양이었다. 나는 그 모래를 필요한 분에게 그냥 주겠다고 광고를 하였다. 그랬더니 교회를 핍박하는 데 맨 앞장을 섰던 통장이 부인을 보냈다.

목사님, 참말로 모래를 그냥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우리 아이가 서울서 이사를 오겠다 하는데 방을 좀 키우고 방바닥도 새로 해야 하는데 모래가 없어서 일을 못 합니다.” 나는 이때다 싶어서 얼른 대답했다. “! 얼마든지 필요한 대로 갖다 쓰십시오. 감사합니다.” “아이고 목사님, 참말로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하고 나가는 뒷모습을 보노라니 참으로 이상야릇하였다. 찬송을 부르지 말라, 십자가 네온을 끄라는 둥 그렇게 온갖 말로 별별 간섭을 다 하고 또 모래 때문에 얼마나 욕설을 노래로 퍼붓고 다녔는데 그가 지금 모래 때문에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다니 이것이 어찌 사람이 하는 일이겠는가?

통장 집이 모래를 갖다가 방을 잘 수리하고 나니 이번엔 반장 집에서 사람이 왔다. “목사님, 우리도 모래를 좀 써도 되겠습니까?” “! 쓰십시오. 남는 모래 이웃끼리 갈라 써야지요. 놔두면 뭣하겠습니까?” 그러니 나머지 한집도 모래를 갖다가 썼다. 그렇게 모래가 필요한 이웃들이 나누어 갔다. 모래는 깨끗이 정리가 되었다. 그들은 고맙다고 과일을 한 광주리씩을 보냈다. 그리고는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았다.

우리는 그 집에서 좋은 이웃의 관계로 일 년 반을 살았다. 누구도 아무 말도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일 년 반이 지났을 때 통장이 나를 만나자고 하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목사님이 기다려 달라고 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기다렸습니다. 어떻게 이사할 생각은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하는 것이다.

저는 사실 집을 사고팔고 하는 것을 잘 모릅니다. 누가 살 사람이 있으면 팔아야지요.”

그때는 한참을 불경기여서 집이 전혀 매매되지 않는 때이었다. 그래서 나는 집을 팔려 해도 팔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자신 있게 살 사람이 있으면 팔겠다고 했던 것이다.

팔면 얼마나 받으시려고 생각합니까?”

글쎄요 저는 집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요.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

그래도 대강 이야기해 보시지요.”

우리가 36백에 샀으니 한 5천은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값을 많이 부르면 집이 팔리지 않을 것 같아서 딴에는 많은 값을 매겼다.

그러면 안 팔릴 건데. 그래도 살 사람이 있으면 내가 소개를 해 드릴까요?” 그래서 그러라고 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살 사람이 생겼다. 통장은 내가 매겨놓은 값에다가 5백을 더 얹어서 55백을 불러 사람을 데려왔다.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그렇게 핍박하던 통장을 통해서 좋은 값에 집을 팔고 아파트 상가를 분양받아 교회당을 꾸미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제 돌아보면 그해 여름의 일은 꿈만 같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개척하는 작은 목사에게 신나고 보람 있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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