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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방
바울 복음과 제국의 복음
홍성철 2007-02-07 21:40:41 | 조회: 3721
기독교는 로마 제국주의 통치 가운데 태어났다. 흥미로운 것은 로마 제국이 공인한 기독교가 초기에는 로마 제국의 이데올로기를 반대하는 운동으로 출발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는 로마 제국과 제국의 질서에 거슬리지 않고 조심스럽게 행동한 종교 지도자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분은 예루살렘 제사장의 귀족 정치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의 통치에 대항했다. 그리고 그분은 갈릴리에서 시작한 예수 운동의 지도자로서 이스라엘 회복 운동을 주도하는데 촉매 작용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사도 바울이 유대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한 인물로만 보면서 사도 바울은 유대주의를 반대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유대교를 반대하였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로마가 통치하는 악한 시대의 종식을 기대하며 로마 제국의 질서에 반대했다. 그래서 그는 데살로니가 (Thesslonica), 빌립보 (Philippi), 고린도 (Corinth), 그리고 에베소 (Ephesus)와 같은 로마 대도시의 “도시 공의회였던 에클레시아 (ekklesia)”에 반대한 대안 (代安) 사회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긴박성을 믿으며 열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에클레시아 (ekklesia)인 교회를 로마 대도시 가운데 세우기 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에클레시아인 교회는 당시의 로마 계급주의 사회에 대항하여 평등한 교회 공동체의 건설을 그 목표로 하였다. 바울 사도는 그 당시 멸망해가고 있는 로마 사회가 이제 갓 태어나 출발한 대안 사회인 예수 그리스도의 에클레시아라는 평등한 교회 공동체들로 말미암아 정복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8).” 그리고 바울은 로마가 지배하는 사회는 점점 멸망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고전 7: 29-31절).
그러나 신약 성경의 기록 시대가 끝날 무렵에 그리스도인으로 알려진 예수 운동의 변증가들 (Apologists)은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체제를 전복할만한 심각한 위협을 주는 공동체가 아니라고 강조하기 시작했다. 후에 기독교 변증론자들이나 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것을 거부한 사자에게 던져질 운명인 순교자들은 로마 황제를 주님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예수 리스도를 주님으로만 섬긴다고 고백했다. 그 결과로 로마인들은 크리스천이 로마 제국의 질서와 숭배 사상에 배타적인 태도를 취한 사람들로 여겼다. 그런데 마침내 A.D. 313년에 콘스탄틴 (Constantine) 로마 황제는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공인하였다. 그때부터 교회와 국가 사이에 규칙적 긴장들과 명백한 갈등이 있었지만, 제도화된 교회는 로마 제국 황제의 세속적 권력과 협력하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의 부르조아 혁명 (the bourgeois revolutions)의 결과로서 교회와 국가는 서로 분리되었을 뿐 아니라 각자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고유의 영역을 서로 간섭하지 않기로 각기 동의했다. 교회와 국가가 서로 간섭하지 않고 고유의 영역을 주장한 결과로 크리스천 신학과 성경 연구들은 오직 종교 영역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그 결과로 크리스천 신학과 성경연구는 성경이 관심을 기울이는 정치, 경제, 그리고 삶을 포함해야 하는 균형 잡힌 시각을 잃어 가는 경향이 있었다. 1) 서양의 대학 연구 기관에서 학자들은 신약 성경 연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영적인 문제만 한정하여 연구하였다. 성경 연구처럼 국가의 후원으로 19세기 일어난 영문학에서도 2) 소설들의 주제는 국가와 제국주의 정치를 배제하고 오직 문화 영역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3)
19세기의 신약 연구는, 특히 바울 신학은 기독교를 편협하고 배타적인 유대 종교로부터 파생된 우주적이고 순수한 영적인 종교라고 보았다 그리고 학자들은 신학연구에 있어서 신약 시대에 탄생한 기독교의 등장에만 그 연구의 초점을 맞추었다. 학자들은 신약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1세기에 기독교를 로마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 아래 압제 당한 정치 상황을 안티오쿼스 에피파네스 (Antiochus Epiphanes)가 유대인을 박해 (B.C. 175‐163)했던 유사한 상황으로 보았다. 그리고 학자들은 로마 제국주의 숭배 사상은 A.D. 70년에 발생한 로마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로 말미암은 유대주의의 박해 가운데 기독교 기원을 제공하는 ‘배경’ 정도로 생각했다. 따라서 학자들은 로마 제국주의 숭배 사상을 기독교의 ‘역사적 상황을 구성’하는 배경 정도로 편협하게 보아왔다. 이 연구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와 바울은 정치 아닌 종교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였다고 생각한다. 이 연구에 따르면 바울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는 로마 사회의 사회적, 정치적 암시들만 있을 따름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특히 1세기 로마 제국주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는 도구였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것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도 바울이 로마 제국에 대한 관심은 그의 살해 위협을 피하기 위해 가이사 (Caesar)에게 호소한다는 정도로 밖에 로마 제국주의 사상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 제 3세계 지식인들은 제국주의의 중요성을 연구해왔다. 4) 제 3세계 학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나는 신약 성경 연구를 위해 1세기 로마 제국의 중요성을 현대의 제국과 관련시켜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5) 구약 성경의 역사가들은 구약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고대 근동 지역의 제국들의 중요성, 이스라엘을 둘러싼 제국들의 공적인 역사들, 그리고 그 상황 가운데 계시된 예언적 계시를 다루어 왔다. 그러나 신약 성경의 연구는 신약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그 당시 시대적 정치적 배경이 되었던 로마 제국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역사적 예수 연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예수 운동과 복음의 전통이 전개된 로마 제국주의 배경에 대해서 이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것 중의 하나는 팔레스틴 (Palestine)지역에서 로마 제국주의의 정치, 사회, 문화, 그리고 역사적 배경을 다루며, 다른 하나는 헬레니즘 로마 세계에서 그 당시 로마 제국주의 상황을 다룬다. 6) 그리고 바울 서신에 관한 약간의 연구들은 사도 바울이 로마 제국주의 사상에 반대했다고 주장했다. 7)
우리는 학자들의 연구가 바울의 선교 사역의 현장에서 로마 제국주의 배경에 대해 관심이 적었다고 여긴다. 나는 현재 관련된 질문들과 연구를 통해 바울 신학을 로마 제국주의의 사상의 배경을 통해 연구함으로 그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도하고자 한다. 이 책에 수록된 다양한 연구 논문들로부터 발췌된 이 글들은 로마 제국주의 숭배 사상이 어떻게 기독교의 복음과 초대 교회의 예수 운동과 관련되는지를 분명히 보여줄 것이다. 이 책의 제1부 (로마 제국주의의 복음)와 제 2부 (로마 황제 숭배와 제국주의 그리고 그 후견인과 수혜관계의 체계)는 어떻게 로마 제국주의의 후견인과 수혜 관계들이 전 로마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 로마와 로마 지방 사이에 그 조직을 잘 갖추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로마 제국주의 권력 관계가 어떻게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경제적인 모든 분야들로부터 출발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제3부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사용한 중요한 용어의 단어들과 상징들은 로마 제국주의 숭배 사상의 용어들로부터 유래되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리고 나는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어떻게 로마 제국주의 이데올로기 용어들을 채택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바꾸었는가를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로마 제국주의의 용어들은 예수 운동과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변형되어 사용되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따라서 우리는 사도 바울은 로마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에 사용된 용어들을 사용함으로 유대주의에 대항한 것이 아니라, 로마 제국의 종교와 정치 이데올로기에 대항했다는 것을 주장한다. 제4부에서는 사도 바울이 건설한 교회 공동체는 단순히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 것뿐만 아니었다는 것을 주장할 것이다. 나는 사도 바울이 로마 지방에 흩어져 있던 지역 교회인 에클레시아가 지역 사회에 기반을 두면서 국제적인 반 제국주의 대안 사회로서 교회 공동체를 건설하려고 했던 것이 그의 기본적인 의도였음을 제시하고자 한다. 나는 여기에 수록된 내용들은 신약 성경에서 간단하게 요약되고 있는 중요한 내용들을 순서대로 배열하였음을 알리고자 한다.

I. 로마 제국주의 구원의 복음: AD 50년 무렵, 바울 사도는 로마가 지배하는 대도시인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 그리고 에베소와 같은 대도시들을 이동하며 조직적으로 선교 사역을 수행하였다 (고전 9:12; 고후 2:12; 9:13; 빌 1:27; 살전 3:2). 그러나 사도 바울이 사역하고 있던 당시, 로마 황제 가이사는 전쟁을 마감하고 온 세상에 평화와 구원을 가져다 주었다는 가이사)의 복음 (the gospel of Caesar)이 로마 대도시에 이미 널리 보급하였다. 그리고 이 당시 모든 도시들 가운데에 확실하게 로마 제국주의 이데올로기가 그 사상적 기반이 터를 잡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 빌립보서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할 때,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황제를 믿는 믿음을 상징하는 ‘믿음 (pistis)’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시도 바울은 크리스천들은 로마 황제가 식민지 도시들을 방문하는 것 [파루시아 (parousia)‐바울은 이 용어를 예수님의 재림으로 사용한다]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도 바울은 크리스천은 하늘로부터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그들의 재림의 믿음을 그들에게 확신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1세기에 로마 제국주의 ‘구세주’로 묘사되고 알려졌던 로마 황제들은 그들이 오래 전에 세계에 평화를 주었고, 로마가 그들을 안전하게 지키고 있다는 ‘로마의 복음 (the gospel of Caesar)’을 지중해 세계와 그리스도 도시들에게 선전하였다. 그리고 소아시아 백성들은 그들의 구세주인 로마 황제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신전과 사원을 건축하였고, 축제들을 그들의 도시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였다. 그리고 소아시아 도시들은 도시 상호 간에 황제를 위한 충성과 도시 연맹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로마 황제 가이사를 경축하기 위한 가이사 국제 경기를 정기적으로 가졌다. 이런 역사적 배경 가운데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높였고, 로마 황제들을 포함한 모든 무릎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무릎을 꿇어야 하며, 그리고 로마의 언어를 포함한 모든 족속의 방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하신 주님 (the Lord)이시라고 고백해야 한다고 선포하였다 (빌2: 9‐11). 그러나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은 로마 황제에게 순종했고 충성과 믿음을 맹세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으로서 신성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주 (lord)는 로마 황제이며 그들은 로마에서 세상을 통치하기 위해 즉위했고 주 (lord)로서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었다는 역사적 상황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바울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당시 1세기의 예수 운동은 로마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못한 미신종교였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신약 성경 연구에 따르면 요한 계시록은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보다 로마 제국과 더 많은 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요한 계시록뿐 아니라 신약의 모든 책들이 초대 교회와 함께 경쟁 관계에 있었던 가장 중요한 종교로서 로마 황제 숭배 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특히 소아시아 백성들은 로마 황제를 신(a god)으로 여겼고 그를 신으로 숭배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을 향한 크리스천의 믿음처럼, 소아시아 백성들은 로마 황제들이 신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Augustus)는 로마 최고신인 쥬피터 (Jupiter)의 신적 대행자라는 믿음을 선전했다. 그리고 그의 후계자인 로마 황제들도 그들이 지상의 신적 대행자로서 세상을 통치한다는 이데올로기를 선전했고, 그 결과 황제는 백성들의 믿음의 대상이 되었다. 8) 어떤 책에 따르면 로마 황제 숭배 사상의 용어와 관용구는 실제로 사용되지 못했고 진부한 언어들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황제 숭배 사상은 1세기, 2세기에는 새로운 종교가 결코 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9)
그러나 최근 고전 역사가와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로마 황제를 위한 축제와 예식들은 널리 퍼져 있었을 뿐 아니라, 특별히 바울이 사역했던 소아시아와 그리스 도시들에 황제 숭배 사상이 널리 보급되었다고 주장한다. 10) 이 책에서는 학자들은 로마 제국의 종교와 정치는 서로 분리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로마 제국주의 황제 숭배는 후견인과 수혜의 종속의 관계가 시작되었던 그리스 도시들 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논쟁한다. 그래서 학자들은 로마 황제 숭배 사상이 바울의 선교 사역의 세계 안에 하나의 주요한 주제로 재평가되는 일은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II 후원자와 수혜 관계, 제사장 직임, 그리고 권력: 학자들은 오래 전에 “기독교는 지역 사회에 영향력 있는 후원자들에 의해 후원된 하나의 운동”이라고 여겼다. 11) 로마 제국의 권력에 후광을 받고 수혜를 받은 사람들이 세운 비문들이 최근 발견되었다. 우리는 이 비문에 기록된 내용을 살펴볼 때, 어떻게 우리가 신약에서 표현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charis)’라는 용어를 새롭게 조망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우리가 비석에 새겨진 이 문구들을 볼 때 이 ‘은혜’라는 용어는 로마 황제가 세상에 평화를 주고 백성에게 베푼 은혜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로마 지방의 귀족들은 이 ‘은혜’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황제의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비문에 새김으로 황제를 칭송했다는 것이다. 12) 신약 성경 해석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사회 과학을 채택한 사람들은 로마 제국의 후원과 종속 관계의 조직 (patron-client relations)을 연구해왔다. 우리가 이 로마 제국의 후견인과 수혜 관계에 대한 연구를 통해 아는 것은 로마 황제가 백성들과 지역 엘리트 귀족들을 보호하고, 엘리트 귀족들은 황제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종속적 사회 조직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로마 제국의 후견인과 수혜관계는 어떻게 황제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그 은혜를 갚아야 하는가를 설명하는데 도움을 준다.
사도 바울은 이 로마 제국의 수직적 종속 관계(patron-client relations)를 모방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크리스천의 관계를 설명한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에게는 로마 황제가 로마신의 지상 대행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진정한 유일한 중보자이시고, 하늘에서 크리스천의 보호자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며, 생명의 은인이신 하늘의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는 점을 그들에게 상기시킨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제국과 다른 후견인과 수혜 관계를 가진 사람들로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13)
게다가 로마 제국의 보호와 종속의 조직 체계(patron-client relation)는 예수님과 크리스천의 관계의 기원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이 보호와 종속의 조직 체계는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결정적인 사건의 정황들을 이해하도록 도움을 준다. 우리는 초기 로마 제국과 제국주의 사상의 연구를 위하여 그 당시 현실에 입각한 보호와 종속의 조직들이 지역의 도시 엘리트들과 심지어 로마 제국의 황실에서도 수직적인 위계 질서를 이루어졌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 결과로 이 조직은 로마의 권력의 심장부와 권력 관계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로마 제국은 이 수직적인 보호와 종속의 조직들을 통해 로마 동쪽으로 그 세력을 확장하였고, 로마 황제는 바로 이 보호와 종속의 계급 체계를 통하여 그의 권력을 널리 확장하였다. 그리고 1세기에 로마 황제는 이 보호와 종속의 계급 체계를 통하여 로마 지방 엘리트들에 의해 숭배되기에 이르렀다. 로마 제국은 로마 동쪽으로 그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로마 황제는 정치적인 행정의 한 방식으로서 이 수직적인 보호와 종속의 조직들을 채택하였다. “이 수직적인 보호와 종속의 관계 제도는 로마 지방들이 로마 제국에 의존하여 살도록 하는 제도를 형성하도록 도움을 주었고, 이 제도는 로마 제국이 광대한 로마 제국을 통치하기 위한 방식으로서 중요하게 여겨졌다.” 14) 이전에 수세기 동안 로마는 지방의 엘리트들과 정치적 경제적 보호와 종속관계를 맺음으로 로마 사회를 통치하였다. 초기 로마 제국 아래 후원과 종속의 사회적 경제적 권력의 체계는 피라미드식의 계급적인 위계 질서였다. 그 조직은 고린도, 에베소, 마케도니아, 그리고 헬라 사회에 널리 보급되었다. 그러나 바울 사도가 말하는 교회 공동체는 로마의 수직적 보호와 종속의 체계와는 정반대로 달라야 한다고 역설한다. 바울 사도가 세운 예수 운동의 지역 교회 공동체는 교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건 서로가 동등한 수평적 공동체이고, 상호간의 신뢰를 따라 자발적으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 사회 경제 관계를 이루는 공동체였다.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은 예수 운동의 지역 교회 공동체는 로마 사회의 공동체와 정반대되는 대안 사회로 시작되었고, 그런 공동체를 세우기를 원했다.

III. 바울의 반 제국주의 복음: 이제까지 사도 바울은 유대교로부터 탈출하여 새로운 종교인 기독교로 회심을 경험한 대표적인 인물로 주로 이해되어 왔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사도 바울은 인간의 행위에 의해 의롭게 되는 것으로부터,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종교적인 인간이 겪는 고통이란 변천의 과정을 겪은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서 평가되어 왔다. 그런데 지난 세대 동안 이 견해는 심각한 비평을 겪어왔고, 이 견해는 해체되어 왔다. 크리스터 스탕달 (Krister Stendahl)은 바울의 회심에 관하여 연구하면서 사도 바울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유죄 판결을 받은 불안한 양심으로부터 예수님의 죄 용서를 경험한 양심으로 변화되었다고 주장한 “내향적인” 어거스틴주의자 (Augustinian)와 루터주의자 (Lutheran)를 비난했다. 15) 바울에 관한 이 새로운 관점 (New Perspective)의 연구는 행위에 의한 칭의에 대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칭의의 영웅으로서 사도 바울을 보는 바울의 루터주의적 신학적 접근을 해체하고, 바울 신학을 새롭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새로운 관점 (New Perspective)은 중요한 사고 체계의 전환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이전에 그가 몸담고 있던 유대주의에 대항하여 기독교란 새로운 종교를 세웠다는 주장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었고, 이미 고정된 신학적 견해를 계속했기 때문이었다. 16) 바울 신학의 “새로운 관점” (New Perspective)이란 연구는 이렇게 인용될 수 있다. 이것을 요약하자면 “사도 바울이 발견한 것은 유대교는 완전히 잘못된 종교이고, 기독교는 아니다”라는 주장이었다. 17) 바울 신학의 이 새로운 관점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주로 격론되고 있는 “크리스천” 안에 있는 믿음, 의, 죄, 그리고 율법에 대비하여 “유대인”의 믿음, 죄, 율법, 그리고 죄라는 유대교의 형태를 서로 대비하여 생각한다는 것이다.
최근 바울 서신의 연구 경향은 사도 바울이 사용한 기독교의 복음, 십자가, 구원, 그리고 믿음 같은 중요한 용어들은 로마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에서부터 빌려왔고, 바울 사도는 이 용어들은 사용하여 로마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 반대했다고 주장한다. 최근의 이 연구를 통해 사도 바울이 무엇에 대항했는지를 알기 위해 바울 서신을 다시 연구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18) 사도 바울은 죄와 죽음에 대해 확실히 반대하였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유대주의” (Judaism)에 대항하여 주로 극단적으로 반대하였는가? 그것은 확실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바울 서신중에 일찍 기록된 데살로니가 전서 (살전 1:10; 2:19; 3:13; 4:13‐18; 5:3)에서 사도 바울은 홀연히 다가오는 멸망이 로마 제국주의의 ‘평화와 안전’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선언된 반면, 다가오는 진노로부터 신자들을 구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이야기 한다. 고린도 전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바울이 반대한 것은 이 세상의 통치자의 지혜와 멸망의 운명에 처해 있는 이 세상의 로마 제국의 통치자들이고 (고전 2:6‐8), 곧 멸망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이다 (고전 15:24). 빌립보서에서도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은 로마 제국의 관리들과 복음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순교자들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으며,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시민권을 자랑하며, 로마 황제와 비교될 수 있는 우리의 진정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늘로부터 기다린다 (빌 1:15‐30; 2:14‐18; 3:20‐21)고 말한다. 최근 연구는 로마서가 특별한 정치적 상황 아래에서 기록된 것을 고려할 때, 다른 서신들과 마찬가지로 로마서는 유대인과 유대주의에 대항하여 기록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어떤 학자들은 바울은 로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취임된 종말론적 사건들의 완성을 기다리는 예수 운동 공동체 안에 이방인과 유대인이 인종적인 갈등 관계를 겪는 상황 중에 그들에게 서로 연합하고 일치하는 것을 강조하는 의도로 로마서를 기록했다고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로마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해 임한 종말론적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완성되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상황 가운데 이방 크리스천들이 유대인 크리스천들을 자기들의 공동체에 받아들이도록 권면하는 복지 문제가 이 편지의 의도이기도 하다. 고린도 후서에서 사도 바울은 그의 사도권을 대항하여 그를 비방하는 유대인의 수퍼 사도 (super‐apostles)들을 비난한다. 바울 사도는 로마 제국주의의 이해 관계로 꾸며진 수직적 사회 관계에 대항하여 수평적 상호 관계의 평등 사회를 꿈꾼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신자들에게 예루살렘 교회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에게도 헌금이 전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후 8장 9장; 롬 15:25‐29). 갈라디아서에서는 교회에 침투한 유대교화하는 사람들 (Judaizers)에 대항하여 바울은 이 로마가 통치하는 현재의 악한 시대로부터 우리를 건져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아브라함의 약속의 성취를 강조한다 (갈 1:4 그리고 3장). 따라서 바울의 복음은 유대교와 율법 위에 멸망과 심판을 선언한 것이 아니라, 로마가 통치하는 이 세상의 통치자 위에 선포된 것이다. 바울의 복음이 로마 제국의 역사적 상황 안에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어떤 함축된 암시를 끄집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9장‐11장과 갈라디아서 3장에서 인간 역사가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 제국을 통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정복당한 이스라엘에게 약속을 주신 하나님이 그들을 아직도 붙들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통해 역사가 흘러간다고 주장한다. 또 인간 역사에 있어서 위대한 약속의 성취는 로마 제국의 황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고 주장한다. 풍자적으로 바울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의 중요한 단어들을 빌려 사용하고 있으며, 사도 바울의 복음은 “멸망해가는 이 세상인 로마 제국주의 체제”에 대항하고 로마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반대한다.

IV. 로마 제국을 반대하는 대안 사회를 건설하는 것: 사도 바울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다. 그래서 바울 서신에 관해 많은 연구가 있어왔다. 왜냐하면 그는 기독교의 주요한 정경이 되는 신약 성경 대부분을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유대교를 버리고 새로운 종교 (a new religion)인 기독교를 창시한 인물로, 그리고 기독교로 개종한 개종자로 인식되어왔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소위 새로운 관점 (New Perspective)이란 바울 서신 연구는 이런 근본적인 가정들과 이런 지배적인 사고의 틀을 가지고 연구를 지속하였다. 1세기 중반 무렵 유대교와 기독교는 이미 현대 신학자에 의해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이미 표준적 규범들을 가진 종교들이었다.
그러나 많은 역사가들은 세 가지 관련된 문제들을 인식해 오고 있다. 첫째로, 고대의 생활의 종교적 차원과 제도들은 일반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윤리적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대교는 대제사장이 있는 예루살렘의 성전은 유대 사회의 종교적 기관일 뿐 아니라, 가장 두드러진 종교적 경제적 제도의 중심이었다. 디아스포라 (Diaspora) 유대인 회중들은 종교적 공동체일 뿐만 아니라 부분적으로 정치적, 윤리적 공동체이었다. 후기 유대 진영에서는 종교적 문제들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사회적 윤리적 주제들에 관심이 있었다. 1세기 유대주의는 사회적 경제적 문제들은 종교적 문제로부터 분리될 수 없었다.
둘째로, 이전에 학자들이 제시한 것처럼, 유대주의를 연구한 학자들은 이미 존재한 유대주의를 무엇으로 인식하여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지 무척 어렵다고 말하였다. 사실, 어떤 유대 역사가들은 유대주의를 정의하고자 할 때 율법의 규범에 따라 이미 완성된 규범주의 (Normative Judaism)에 반대되는 의미로 형성되고 있던 유대주의 (Formative Judaism)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학자들은 이 형성되고 있던 유대주의 (Formative Judaism)는 1세기 유대 랍비적인 유대주의와 후에 완전히 그 형태를 갖춘 유대주의 사이에 관념적인 형태의 중간적인 유대주의를 말하기도 한다. 또한 이와 비슷하게 중간기 시대에 제 2 예루살렘 성전 시기에 있던 다른 유대 공동체와 유대 사회 안에 존재했던 다양성을 인식하면서 유대 역사학자들은 중간기 시대의 유대교의 유대주의를 언급하고자 한다. 그래서 유대 역사가들은 다양한 시대에 존재한 유대주의를 “유대주의들 (Judaisms)”이라고 말한다.
나는 우리가 유대주의를 말하고자 할 때 사도 바울이 1세기 중반에 유대교에서 도망쳐 나온 유대교를 본질적인 유대주의 (an essentialized Judaism)라고 말한다는 것은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를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유대교에 헌신된 어떤 종교적인 사람을 고대 유대인의 생활과 제도의 다른 차원들부터 분리하고자 하는 것은 또한 문제가 많은 것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리가 유대교의 정의를 말하려고 할 때, 유대교의 생활을 유대교의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것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유대교를 말하려고 한다면, 유대지역에 사는 유대인의 서기관 그룹들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들과, 그리고 유대인의 시골 농부들을 고려할 때,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지역적으로 다른 다양한 그룹들과 인물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고대 유대교의 공동체의 다양성을 역사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분명히 중요한 작업일 것이다.
셋째로, 기독교가 유대교에 대항하여 1세기 중반에 종교의 형태로서 역사적으로 이미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크리스천’ 이란 용어는 1세기 중반에 공식적으로 공인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던 사람들의 예수 운동들은 각양각색으로 다양하였다. 게다가 유대인이 아니었던 이방인들을 포함한 예수 운동의 추종자들은 그들 자신들을 이스라엘 역사의 성취와 구약 성경의 약속의 성취라는 연장선상에서 그들을 인식하였다. 심지어 ‘크리스천’ 이란 용어가 유행하게 되었을 때 이방인 크리스천들은 이 예수 운동의 일원으로 유대인들과 함께 동일시하였다. 그 증거로서 사도행전에서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과 그의 공동체들은 이 예수운동에 대항하는 유대인들과 어떻게 다른가를 유대인에 계속해서 증명하고자 하였는지 엿볼 수 있다.
그래서 1세기 중반에 사도 바울이 소위 유대교라고 불려진 종교를 박차고 나와 기독교란 종교를 새로 설립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대 착오적 발상이다. 로마 제국에서 바울과 그의 공동체들은 그의 동시대 사람들에게 유대교와 분명히 전혀 다른 종교적 그룹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사도 바울이 그의 공동체를 위해 일반적으로 예수 운동을 위해 사용한 용어는 에클레시아 (ekklesia)였다. 바울의 교회 공동체는 로마 제국 안에 있는 에클레시아 (ekklesia)와 다른 대안 사회였다. 그가 사용한 ‘에클레시아’라는 용어는 주로 그리스 도시들의 시 의회 (Greek polis, city-state)를 의미하는 로마의 정치적인 용어이다. 로마 역사가 배로 (Varro)가 에클레시아의 세 가지 범주들과는 달리 바울 사도의 공동체인 에클레시아는 헬라 도시들의 종교와는 다르다. 사도 바울은 로마 제국의 소아시아의 의회들이 사용한 용어인 ‘에클레시아’를 교회 공동체를 위해 비유적으로, 사회 윤리적 용법으로 사용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신자들에게 로마서 12장 1절에서 산 제사 (a living sacrifice)로서 너희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진정한 영적 예배라고 가르친다.
헬라의 도시 공의회인 에클레시아가 종교적, 정치적인 면을 가지고 있던 것처럼, 어떤 면에서 교회 공동체인 에클레시아도 예수님만 섬기는 종교적 공동체였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공동체였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의 에클레시아는 로마 제국주의, 사회에서 고린도 교회에서 성도 간에 일어난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교회의 문제를 세상 법정에 재판에 가지 않아야 하며, 세상의 우상 숭배에 참여하지 않은 배타적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전 5:9‐13; 6:1‐13; 10:14‐22). 그는 물론 로마가 지배하는 이 악한 세상과 사라져 가는 이 세상의 즉각적인 심판을 기대했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며 다가올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면서 그는 이미 존재하는 사회에 대안의 공동체 사회로서 소아시아에서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데 바빴다. 우리가 갈라디아서와 고인도전서 후서 편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그에게 준 지상명령은 그의 재림을 기다리며 그의 공동체를 완전하게 보존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재림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 그의 사역을 결산하여 보고할 것을 생각하며 교회 공동체를 위해 사역하였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부활의 완성과 주님의 날에 오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은 로마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지역 사회에 기반을 둔 평등의 공동체 (assemblies)로서 국제적인 대안 사회 (an international alternative society)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2007-02-07 21:40:41
221.xxx.xxx.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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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창대 | 2007-03-05 13:53:55 삭제

홍박사님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제게 한 번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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