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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제해설] 성경에 근친상간(incest)과 같은 성범죄를 범한 사람을 사단에게 내어주고, 그의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한다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고전 5:1-5)
PAUL 2018-05-25 02:15:36 | 조회: 804
[질문]
성경에 근친상간(incest)과 같은 성범죄를 범한 사람을 사단에게 내어주고, 그의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한다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고전 5:1-5)

[난제가 되는 이유]
이 구절에서 난제가 되는 것은 “육신은 사탄에게 내어주어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한다"는 것인데, 그 사건이 무슨 뜻인지에 대하여 본문을 살펴보면, 교회의 권징에 관련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육체를 사탄에게 내준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라는 것이 난제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교회에서 징계로 끝날 문제이냐?” 아니면 “정말 사탄에게 내주어 죽게 하느냐?”라는 것이 난제입니다. 이 문제를 풀기 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본문에 나타나는 성경의 전문용어들(Biblio-technical terms)의 의미와 용법을 신학적으로 정확하게 정리한 후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 엄청난 혼선과 해석에 있어서 실수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서 본문의 “육신”(肉身)이라는 말이 “육”(flesh)이라고도 하고, "몸"(body)이라고도 하며, 그리고 “영”을 “영”(spirit)이라고도 하고, "혼“(soul)이라고도 하며, "영혼"(soul), 또는 ”마음“(mind, heart)이라고 하는 용어들로서 교호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때그때 문맥에 따라 그 용어들이 의미하는 정확한 뜻과 용법을 이해하지 못하면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더구나 어원학적인 접근(etymological approach)을 통하여 성경의 전문용어에 대하여 정확이 이해해야 하는데, 이것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신학적인 성경원리에 따라 해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해석 방법론]
고린도전서 5:5의 말씀은 조직신학과 실천신학적으로 접근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말하자면 조직신학적으로 “죄”에 대한 성격과 정의와 결론, 그리고 실천신학적으로는 교회의 “권징”에 관한 교인관리의 문제입니다. 이는 그 죄인에 대한 관리(management)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바울의 권면(exhortation)으로, 바울은 이 문제에 실제적인 고린도교회의 권징(discipline)에 영적인 권위를 개입시키고 있습니다. 이 문제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세상의 관리법칙이 아니라, 교인에 대한 하나님의 관리법칙에 따라 성령의 영적 권위를 가지고 관리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바울이 고린도교회와는 동떨어진 곳인 에베소에 있으면서도 고린도교회의 내막을 훤히 들여다보는 영적인 통찰력(spiritual insight)과 권위를 가지고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핸들(handle)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죄(근친상간)를 범한 사람의 “육신은 사탄에게 내 준다”는 말씀에서 “육신”은 그의 “몸”(소마, σόμα, body)이 아니라, 죄의 성품을 가지고 있는 “육성”(사르크스, σάρξ)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성경들(ASV, KJV, NRSV)이 “육”(flesh)으로 번역한 것을 새국제성경(NIV)에서는 “죄성”(sinful nature)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즉 죄의 성품을 가진 육신을 사탄에게 내준다는 뜻인데 이는 죄를 멸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주 예수의 날에 그의 영은 구원을 얻게 한다는 말씀의 뜻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으로 선택하여 거듭나게 한 사람(중생인)은 회개를 통하여 그의 영은 구원을 얻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영”이 범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혹은 “영”이 구원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관한 이론들이 구구한데 이는 위에서 전제한 “영”과 “육”의 성경적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으면 전혀 난제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신학적으로 올바른 지식을 가진 사람에게는 난센스의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구원과 멸망에 대한 아날로그 방식과 디지털 방식에 대한 이해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설명하자면, 구원은 영육의 분리에서 성화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며, 디지털 방식으로 설명하자면, 영육의 부활인 전인적인 영화로운 구원의 완성이라는 차원에서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답변과 해설]
물론 이 말씀도 까다로운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신학적인 툴(tool)을 가지고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죄에 대한 “판단”과 “권징”입니다. 즉 조직신학적으로 죄를 판단하고 실천신학(목회)적으로 죄에 대한 권징을 한다는 뜻입니다.

본문의 문맥으로 보아 범죄자의 죄의 성격은 바로 “근친상간”(近親相姦)으로 이는 이방인에게도 없는 것이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고전 5:1). 이 근친상간은 계모와의 간통사건입니다. 이러한 죄는 신학적으로 보면 성범죄의 극단으로 어떻게 보면 “성도착증”(포르네이아, porneia)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 죄는 그 성적인 부분에 관한한 습관성에 빠진 것을 의미합니다. 이 범죄가 극단에 이르면 인간적인 도덕성 즉 성적 도덕성(sexual morality)이 상실되어 인면수심(人面獸心, brute with human face)으로 짐승과 같이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 주위에서도 이런 경우를 종종 보게 되어 이런 사람들을 감시하기 위해 전자발찌를 사용하기도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이미 고칠 수 없는 수준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불가불 공동체(교회)에서 권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교회의 성결을 위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초강수로 권면하는 내용이 본문에 나옵니다. 교회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교만해져서 이런 자를 물리치지(권징) 않는다고 교회를 책망합니다(고전 5:2). 바울은 교회를 권면하는 데 있어서 자신의 권위가 아니라 주님의 권위로, 자신은 멀리 떨어져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 이미 판단했다고 영적 권위를 말하고 있습니다(고전 5:3). 우선 근친상간의 범죄를 한 사람을 “사탄에게 내주었다”는 말씀에는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말하자면 신학적 차원과 목회적 차원입니다.

[신학적 차원]
첫째, 신학적 차원에서 볼 때에 이미 회개와 개선의 도를 넘은 상태임으로 일단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의 육신은 사탄에게 내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이는 궁극적인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징벌(히 12:5-13)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마지막 부분에 “육신은 멸하지만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하려 한다”는 말씀 때문입니다.

다음 절에 “육신을 멸한다”는 말씀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육신의 멸망은 영원한 멸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육신은 한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존재가 영원성(eternity)을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영원한 차원에서 다루게 될 것입니다. 육신을 멸한다는 것은 인간의 육성(사르크스, σάρξ)을 죽인다는 뜻으로 그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육신상의 징벌로 고통(육적 환난, 즉 비즈니스 파산, 가정파탄, 가정불화, 육적, 정신적 질병, 각가지 재난, 혹은 금욕과 같은 방법)을 주어 육성을 죽인다든지, 극단적으로 육신을 죽음에 내주어 육신을 아주 죽이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자녀를 고치시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혹은 종들을 통하여 치료하시는 방법과(healing, 마 4:23; 행 4:22), 다른 하나는 사단을 통하여 징계하시는 방법입니다(chastening, 히 12:5-13; 고전 11:32; 고후 6:9; 딤후 2:22)입니다. 본문이 바로 징계의 방법인데, 교회를 통한 권징(discipline, not blaspheme)으로 출교시키고 육신을 사단에게 내주는 방법입니다. 힐링(healing)과 채이슨닝(chastening)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익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예시키기 위함입니다(히 12:10-11). 이러한 방법은 하나님께서 누구에게나 적용하실 수 있고 또 그렇게 하고 계십니다. 심지어 다윗과 같은 위대한 종들과 같이 범죄할 때나(삼하 12:10-12), 바울 사도와 같이 사전에 교만을 막기 위하여 예방치료의 차원에서 그의 육체에 사단의 사자를 주기도합니다(고후 12:7, 참고: 욥 2:6-7; 고전 11:30; 계 2:22; 행 5:1-11; 13:11).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징벌을 집행하는 대리자로 사탄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내주면 사탄은 이런 자의 모든 것을 자유자제로 주장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 구원에 직결되어 있는 영적인 생명만은 건드리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욥은 육신의 생명까지 보장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탄은 이런 사람에게 질병과 불안과 실패 등등 다양한 방법으로 불행을 가져다주고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합니다. 생명을 제외한 육에 관한 모든 것을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육신의 멸망을 초래하게 만듭니다. 일련의 이러한 절차들은 교회의 청결과 개인인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만들어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권징)이 될 것입니다. 육신은 멸하고 영을 살리려는 뜻입니다.

본문의 문맥(context)으로 보면 권징(discipline)이라는 교회의 징벌을 통하여 이러한 자를 버리는 것(banishment)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극단의 권징으로 출교(excommunication)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출교되면 우선 명예와 육신 상으로, 또는 육적인 욕망으로서의 엄청난 제약을 받든가 심한 경우에는 그 육적인 욕심을 죽이는 효과가 있어서 깨닫고 돌아올 수 있는 회개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의 경우에 살아 있는 동안 돌아오지 못할 시에는 사탄으로 하여금 육신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고 마지막 주 예수의 날 즉 심판의 날에 부활의 몸으로 구원을 시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하나님의 궁극적인 구원입니다.

신학적으로 다시 정리하자면 육신을 사탄에게 내준다는 것은 궁극적인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임시적인 채찍(권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구원을 얻게 하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작정이십니다(고전 5:3). 여기에서 “육신”은 그의 "몸"(σόμα, soma, body)이 아니라, 죄의 성품을 가지고 있는 육성(σάρξ, sarks, flesh)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내준 것은 죄인의 죄의 성품을 멸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방법으로 육신을 죽이는(멸하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사탄에게 내주는 것이 육성을 죽이게 되고 결과적으로 영을 살리는 것이 된다는 패러독스(paradoxical)한 진리입니다. 우리도 육성을 죽이게 될 때에 영성이 살아나는 법입니다. 궁극적으로 육신이 완전히 죽으면 우리의 영은 자유롭게 훨훨 날을 것입니다. 그 후에는 주 예수의 날에 부활의 영광입니다.

여기의 범죄자는 영원한 멸망을 받을 자가 아니라 임시적인 보응을 받는 사람으로 궁극적으로는 구원을 받게 되는 소위 택한 자로 중생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은 사탄에게 내주어 멸하지만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하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정(hypothesis)에서 출발할 때에 “사탄에게 내준 것”은 영이나 영육 모두가 아니라, 오직 육신이므로 육신은 죽었다가 부활하여 다시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멸망은 영원한 멸망이 아닙니다. 이는 징벌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육을 징벌함으로써 영을 살린다는 것입니다.

영이 살아 있으면 주 예수의 날에 그 영의 구원에 육신을 포함하는 부활의 몸으로 변화될 것이기 때문에 육신의 멸망은 임시적인 것으로, 만일 영이 멸망한다면 문제는 심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의 뜻은 범죄 한 사람의 육신은 사탄에게 내주어 그 육신은 멸하지만 그의 영은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의 작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회적 차원]
둘째, 목회적 차원에서 볼 때, 이러한 상황은 우리의 목회 현장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사건들입니다. 은혜를 받고 중생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이 자신의 육성을 이기지 못하여 자꾸 범죄에 빠지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스스로가 죄악성, 즉 육성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연속적인 죄로 습관성 같이 되기 때문인데 이 경우를 말합니다. 혹시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지나 않으셨나? 하고 의심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우에 교인들은 자기가 성령을 거역한 죄로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떨기도 합니다. 물론,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요 3:5).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중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콘텍스트의 상황에서 자신의 죄를 이해하려고 하니까 여지없이 두려움이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일시적인 타락이나, 육성에 못 이겨 살아있는 동안 계속해서 자범죄를 범할 수는 있지만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과 같은 원죄에 준하는 죄는 지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로 낳았기 때문이며” 그리고 이런 자들은 “하나님이 저를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일 3:9).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는 다 범죄 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8). 하나님께로 나서 중생한 사람은 원죄와 같은 죄를 범할 수 없는 체질로 변화되었기 때문에 자범죄는 범할 수 있어도 원죄와 같은 죄는 범할 수 없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중생한 사람은 타락하여 아무리 세속화되었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예수님에 대한 의도적 부인은 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중생한 사람은 마음 놓고 죄를 범해도 괜찮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그럴 수 없습니다. 오히려 중생한 사람은 (1) 사전에 죄에 대한 경각심이 대단합니다. 말하자면, 죄를 최악의 적으로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고의로 죄를 지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육신을 입고 있는 한 그 육성에 의하여 자신 속에서도 죄의 성품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흔들리며, 더구나 달콤한 환경에 의하여 유혹에 말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죄와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원하는 선은 행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 악만을 행하게 된다고 바울은 자신의 연약성을 실토했습니다(롬 7:15-19). 이 전쟁에서 연약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패전하게 되어 죄를 범하게 되는데, 바울은 죄를 범하는 자가 자기가 아니라 자기 속에 거하는 죄라고 했습니다(롬 7:20). 만약에 누구나 죄가 없다고 한다면, 스스로 속이는 자요,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요일 1:8-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생한 사람도 그 후에 이 죄와의 싸움에서 혈투를 벌리지만, (2) 이길 힘이 없어서 주저앉아 부르짖게 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중생한 하나님의 아들의 애절한 이 부르짖음이 하늘 보좌에 상달되어,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죄와 사망의 몸에서 건져주시고, 영적인 자유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니라”(롬 8:1-2). 할렐루야! (참고: 기독교문서선교회 발행, 성경난제 해석과 방법론, 912페이지 중 369-373 페이지).

THE END

REV. PAUL B. JANG
Email: revpaulja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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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5 02: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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