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0.1.26 일 03:14
상단여백
토론방
방언에 대한 성경적 원리를 찾아서
박창진 2008-04-09 08:21:47 | 조회: 5298
오순절의 성령강림에 제자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오순절을 지키기 위하여 천하 각국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모인 큰 무리가 모였을 때에 각기 자기의 방언으로 말하는 것임을 확인하고 소란스러워집니다. 제자들이 방언을 하는 것이 능력의 또 다른 내용입니다. 방언은 다른 지역의 말입니다(J. Sttot, 땅 끝까지 이르러, 정옥배 역(서울: IVP, 1993) 77).

방언은 옛 언약 백성인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아듣지 못할 말씨와 다른 나라 말로 말씀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사 28:11). 그 결과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생각을 따라 여러 경계와 교훈을 더하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현재의 유대인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면서 율법에 자신들의 생각을 덧붙여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불순종이며 하나님께 대한 반역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그들 앞에서 방언으로 구원의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 것은 그 사실에 대한 분명한 증거입니다. 방언이 제자들을 통하여 유대인들 앞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가는 길을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 길만이 유일한 생명의 길입니다.

또한 방언은 바벨탑 사건으로 혼잡케 된 언어의 초자연적인 극복을 가시화한 것입니다(상게서, 73). 하나님을 반역하여 인간의 제국을 이루려던 인간의 시도는 하나님에 의해 무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서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 이후로 사람들의 언어는 각기 다른 여러 언어로 나누어졌고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권의 사람들과만 의사소통이 이루어졌습니다. 방언은 이러한 다른 언어의 장벽을 넘어 하나님과의 교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히지 않고 구원의 복음이 전파되어 하나님과의 교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제국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방편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되도록 하시는 방편입니다.

제자들이 전혀 배운 적이 없는 다른 지역의 말을 합니다. 제자들은 자기의 문화권 내에서만 복음을 전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다른 지역, 다른 문화권,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여야 합니다. 비록 당시에 헬라어가 로마의 지배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기는 하였지만 모든 사람들이 헬라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였던 것은 아닙니다.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자기들이 사용하던 말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복음은 유식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미련한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지혜롭지 못하며 권력이 없고 가문이 훌륭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것(고전 1:26-27)이기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배운 것이 없는 갈릴리 사람들인 사도들이 복음 전파 사역을 감당하기 위하여서는 그 지역의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헬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만 복음을 전파하고 만족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여야 하는데, 성령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복음을 전파하려는 지역의 말 곧 방언을 함으로 가능합니다. 특히 배운 것이 없는 무식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방언이 그들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된 것임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됩니다.

그 후에 고린도교회에서는 은사로 나타났고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지만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고전 14:5). 고린도 교인 중에는 공적인 예배에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는 교회에 덕을 세우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않은 자들을 위하는 표징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교회 내에서 예언 곧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기를 권하였습니다. 그러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고 인정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고전 14:25).

바울 사도가 언급하고 있는 고린도교회에 주어진 은사로서의 방언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오늘날 교회에서 기도하는 방편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소위 천국 언어일까요?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방언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어떤 사람들의 기도 때의 말은 다른 믿는 사람들을 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도 못합니다. 그와 같은 말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것일 뿐입니다. 소위 천국 언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기도 때의 이상한 말은 고린도교회에 나타난 방언과는 다른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주어진 은사로서의 방언은 오순절 성령 강림 때에 나타난 것과 동일한 다른 지역의 언어입니다. 다른 언어권에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도록 하시는 성령님의 나타나심이 바로 방언입니다.
바울 사도가 방언에 대하여 가르치는 고전 14장에는 방언이라는 단어가 15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15번의 방언이라는 단어는 모두 동일한 의미입니다. 어떤 단어는 다른 지역의 말을 뜻하고 다른 어떤 단어는 소위 천국 언어를 뜻하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방언에 대하여 교훈하면서 21절에서 구약 성경(사 28:11 이하)을 인용합니다. 구약 성경에는 소위 천국 언어라는 개념의 방언은 없습니다. 모두 다른 지역의 말입니다. 그렇다면 고전 14장에서 방언은 모두 다른 지역의 말을 뜻합니다. 그리고 방언과 관련한 구약의 예언이 오순절 성령 강림 때에 성취되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인용한 사 28:11 이하의 내용도 오순절 성령 강림 때에 성취된 것입니다. 곧 오순절 성령 강림 때의 방언과 고전 14장의 방언이 동일한 의미라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의 어떤 성도들은 그 방언을 교회의 예배에서 기도 때에 사용하여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기도할 때에는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공적인 기도에 방언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를 야기시키는 것입니다. 은사로서의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징이지 믿는 자들을 위한 표징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어떤 내용으로 기도가 이루어지는지 알지 못하는 지체들이 어려움을 겪도록 하는 것입니다. 물론 통역의 은사를 가진 이를 통하여 통역이 이루어질 때에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고전 14장은 바울 사도가 방언에 대하여 바르게 가르치고 교회에서의 방언 사용을 바로잡고자 하여 쓴 것입니다.

방언은 옛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심판의 표징이었는데, 그들에 대한 심판은 이미 집행되었습니다.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과 돌성전 파괴로 언약 관계가 완전히 끊어졌습니다. 현재의 이스라엘은 성경의 이스라엘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한 불신 국가일 뿐입니다. 또한 복음이 만민(골 1:23)에게 전파되었습니다. 방언을 통해 나타내시려고 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다른 문화권에 복음을 전하러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 지역의 언어를 배우는 실정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복음을 증거하고자 하면 그 지역의 말을 열심히 배워 그 언어를 익혀야 합니다. 언어를 제대로 익히지 못하면 그곳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에 언어를 익히는 것은 선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소위 천국 언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방언은 어떻게 생각하여야 할까요? 이전에는 교파에 따라 금기시되기도 하였지만 이제는 거의 모든 교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방언은 성경에 기록된 은사로서의 방언과는 다른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기도의 방편으로서 방언을 은사인 것처럼 생각하여 구하는 것은 재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개인기도 때에 더욱 깊이 기도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친밀히 하는 방편으로서는 인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의 방편으로서의 방언을 전적으로 무시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수용할 수도 없다고 하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전 13장에서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방언)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사람의 방언이란 다른 지역의 말이 분명한데 천사의 방언이란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사람의 방언과 동일한 의미의 반복이라고 주장되기도 하지만 그렇게 설득력이 있지는 않습니다. 이 천사의 방언이 오늘날 교회에서 행해지는 기도의 방편으로서의 방언과 관련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같은 단어를 계속 반복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보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기도가 하나님과의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대화의 방편으로 우리에게 같은 말만 반복하도록 하신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어떤 훈련을 통하여 방언을 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거부되어야 할 것입니다. 특별한 방식으로 혀를 훈련하여 방언을 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악행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이야기되는 방언은 성경적인 근거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2008-04-09 08:21:47
61.xxx.xxx.182
답변 수정 삭제
목록 글쓰기
유휘경 | 2008-11-27 19:00:24 삭제

불민한 사람의 결론은
방언을 장려하고 조장하고 바로 가르치지 않는 것은
성경을 기초해서 교회가 정한 교리, 법규 또는 관례에 위배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1장에 보면 ...만약 소리를 내어서 기도할 때는 알려진 언어로 해야한다 또는 알아 들을 수 있는 일반적인 언어로 해야한다.라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박창진 | 2008-05-31 08:32:09 삭제

방언은 성령세례라는 전체적인 틀 안에서 이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세례와 관련하여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약속하신 성령님의 권능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나고 이해하게 하는 성령님의 역사,
핍박 가운데서 할 말을 입에 담아주셔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도록 하는 역사,
표적과 기사를 행할 수 있도록 하는 역사 그리고 방언입니다.

성령세례를 잘못 이해하니 성령님의 권능도 잘못 이해하게 되고 방언도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쓴 '성경해석 잘해야 부흥이 보인다'에서 이 부분을 상세하게 밝혀두었습니다.

유휘경 | 2008-05-25 22:43:25 삭제

박목사님 저도 동감합니다.
너무 어지럽고 혼란의 현실입니다.
검정도 할 수 없는 체험, 경험담의 글들로 엮은 책들이 범람하고...읽혀지고...말씀 위에 올려 놓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다음과 같은 책을 추천해 봅니다...
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옥성호 지음)
무질서한 은사주의(존 맥아더 지음)

박창진 | 2008-05-23 09:57:17 삭제

불분명하다는 평가 자체가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신앙에 도움을 주고 깊은 기도의 방편으로 분류되는 기도 때의 이상한 말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의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성경에서 말씀하는 방언은 아닌데... 오늘 국민일보에 "오늘날 교회에 대한 최대 위협은 체험이 말씀 위에 있는 현실이다"라는 기사가 났네요. 저는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김인광 | 2008-05-14 19:41:36 삭제

박목사님의 글을 보면 방언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불분명합니다. 다양한 성도들의 모임속에서 일어나는 신앙의 상황들을 칼로 재단하듯 이분법으로 구분 한다는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공동체 속에서 적게는 5% 많게는 8%의 사람들이 방언의 신비함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아니다'라고 이야기 할수있을까요?
신비함을 체험하지못한 내가 오히려 "아니다" 에 속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박목사님이 말씀하신 초대교회의 방언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지라도 이러한 방언이 본인의 신앙에 도움을 주고 깊은 기도의 방편이라면 권장해야 될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박창진 | 2008-04-17 08:02:53 삭제

사람들의 삶에는 대세-민심-라는 것이 아주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고요.
그 대세가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하면 그것은 아름답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심각한 문제가 뒤따르지요.

오늘날의 방언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방언에 의해 평가되어야 하는데, 정반대의 현상이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 방언이라고 불리는 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방언이라고 볼 수 없음에도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전 14장의 가르침에 기도의 방편으로 말씀되어 있다는 것 하나를 도식적으로 일치시키고는 말입니다.
좋은 것이 좋다고 그것을 추구하는 상황이지요.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 힘들지 않습니다. 전혀요.
사람들이 생각과 평가가 아니라 주님의 생각과 평가가 중요하니까요.
긴 글은 이미 정리된 글을 옮긴 것이고요.
성경이 말씀하는 성령 세례를 바르게 알아야 하는데...

유휘경 | 2008-04-16 16:32:10 삭제

목사님 고맙습니다...개인적인 문제로 힘드신 가운데 긴 글을 주셔서~~
목사님 그렇다면 오늘 날 우리교단의 지도자 -목회의 길을 걷기 위해 배움의..훈련중에 있는분들 포함-들께서는 왜 잠잠하실까요.어린 초등학생에게 방언을 가르친다?기도회에서 앞장서서 방언?으로 기도한다..옆사람에게 방언하라고 강권한다...입모양을 어떻게하면 된다..교회에서 시도때도 없이 똑 같은 이상한 소리로 중얼대는 통에 조용히 참 기도하시는 분들의 어려움은...교회에서 행하여지고 있는 이런 현상들에 대하여 왜 잠잠할까요?예수님도 방언으로 기도..아니 방언을 가르치시지 않았는데...교회에서의 혼란스러운 현상들은 어떻게 가르쳐야하는지...이 토론 제목을 올린지 일주일이 지났건만 달랑 목사님 한분 뿐이시니...바른 가르침이 없기에...어떤 분들은 성령충만 기도 많이 하는 사람, 기도에 불붙은 사람이라고들 합니다만..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서 제21장에서는 알아 듣는 말로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박창진 | 2008-04-09 08:55:52 삭제

이 주제는 성령세례라는 전체적인 이해 안에서 이해되어야만 합니다. 성령세례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방언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만듭니다. 성령세례에 대한 이해는 '성경해석 잘해야 부흥이 보인다'(영교회), 51-111 쪽에 있습니다.

번호 제 목 닉네임 날짜 조회
공지 자동등록방지를 알려드립니다. (1) kscoram 2014-10-17 26284
공지 게시판에 대한 안내 (1) 코닷 2014-05-28 31272
42 삼위일체와 함께 춤을 박창진 2008-06-09 4714
41 삼위일체, 1+1+1=3=1 인가?(3) 박창진 2008-06-07 4285
40 삼위일체, 1+1+1=3=1 인가?(2) 박창진 2008-06-05 4268
39 삼위일체, 1+1+1=3=1 인가?(1) (1) 박창진 2008-06-03 4652
38 토론 제안 - 여자 목사 제도 박창진 2008-05-28 4808
37 방언에 대한 성경적 원리를 찾아서 (8) 박창진 2008-04-09 5298
36 방언에 관하여...활발하고 유익한 토론 기대합니다 유휘경 2008-04-08 4732
35 온전한 복음(whole Gospel), 온전한 사람(Whole Person), 온전한 교회(Whole churches) 홍성철 2008-03-05 4666
34 예수 그리스도와 대제사장직 (5) 조동천 2008-02-14 4739
33 진화론이 과학일 수 없는 핵심 근거 박창진 2008-01-11 4216
32 과학이라고 말할 수 없는 진화론(2) 박창진 2008-01-09 4174
31 과학이라고 말할 수 없는 진화론(1) 박창진 2008-01-07 4311
30 십일조, 성경적으로 정당한가?(4) (3) 박창진 2007-10-28 5222
29 십일조, 성경적으로 정당한가?(3) 박창진 2007-10-27 4338
28 십일조, 성경적으로 정당한가?(2) 박창진 2007-10-25 4407
27 십일조, 성경적으로 정당한가?(1) (1) 박창진 2007-10-24 4995
26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9) 박창진 2007-06-26 4720
25 집과 집에 있는 교회, 그리고 박창진 2007-05-25 4457
24 유해무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보낸 질문 메일 (1) 박창진 2007-05-22 4722
23 선교지 신학교육 강화 전략 남후수 2007-05-21 4047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