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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제안 - 여자 목사 제도
박창진 2008-05-28 08:31:35 | 조회: 4809
먼저 저의 견해를 밝히겠습니다.

여자목사 제도는 성경적인가?

여자 목사 제도에 대한 견해는 교단에 따라 극명하게 나누어집니다. 가능하다고 생각하여 허용하는 교단이 있는가 하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허용하지 않는 교단이 있습니다. 여자 목사 제도에 대한 견해는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바른 이해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허용하지 않으면 잘못된 것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지키려는 수구 보수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허용하면 잘못된 전통을 깨뜨리는 개혁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특히 여권이 신장되는 시대적 상황과 맛물려서 허용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시대적 상황과 상관없이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바른 해석과 적용으로 결정되어야 합니다.
이 주제는 성경 기록에 있어서 성령님의 역할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성령님은 주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예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성령님의 역사 안에서 성경이 기록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공생애 때의 예수님의 여성을 대하시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일치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중에 여성을 대하시는 방식은 그 당대의 형편에 비추어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성령님을 통하여 동일한 원리를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바울 사도의 글은 그 당대의 문화적인 틀-남존여비- 안에서 여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의 생각이 그대로 반영된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따라서 글을 적었습니다.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고전 14:34-38 이해

문맥과 고린도 교회의 상황
본문의 문맥은 고린도교회의 전교회적인 모임(고전 14:23)에서 이루어지는 예언과 방언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이는 교회 회의(오늘날로 말하면 공동의회)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예배에 관한 것입니다. 매주일 첫날에 이루어졌던 전교회적인 예배 모임에 관한 것입니다. 공적 예배입니다. 바울 사도는 은사를 논하기 이전에 성찬에 대하여 논하였습니다. 성찬 또한 전교회적인 예배 모임에서 시행되었던 예식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예배 모임에서의 예언과 방언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고린도교회에서는 예언과 방언의 은사를 가진 성도들이 공적 예배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한다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방식에 있어서 질서가 없음으로 혼란스러움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여자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서 그것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들의 모습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라고 이야기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는 남녀 구별 없이 예배 모임에서 예언과 방언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본문 이해
그런데 바울 사도는 공적 예배에 있어서의 예언과 방언에 대하여 교훈하면서 여자들은 잠잠하라고 말씀합니다. 여자는 복종하여야 하는데,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서 남편에게 물으라고 합니다. 교회에서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도 합니다.
원래 성경은 두루마리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과 같이 구절의 구분도 없었습니다. 빽빽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공적 예배에서의 예언과 방언을 하는 것과 관련하여 권면하면서 여자는 "잠잠하라"라고 적었습니다. 글이란 언제나 문맥이 있습니다. 그 문맥 안에서 이해하여야 합니다. 여기에서 “잠잠하라”는 것은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는 의미일 수가 없습니다. 예언과 방언을 금지한 것입니다. 공적 예배에서 예언과 방언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언과 방언은 계시의 전달 방편입니다.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며 방언은 다른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공적 예배에서 예언과 방언을 한다는 것은 곧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여자는 잠잠하라고 하는 것은 여자는 설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의 고린도교회는 예언과 방언 곧 오늘날의 설교를 한 사람이 전부 맡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언과 방언의 은사가 있는 모든 성도들이 자유롭게 행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예언과 방언의 은사가 있는 성도들이 하되 질서 있게 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여자에게는 금지시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부분을 바울 사도의 가르침이 아니라 그 당시 고린도교회 내에서 있었던 주장이라고도 합니다. 고린도교회의 상황과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딤전 2:11-15의 가르침을 고려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두 부분은 모두 바울 사도의 가르침으로서 그 내용에 있어서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그는 원리를 확장하여서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서 남편에게 물으라고 합니다. 아내가 궁금한 것이 있어서 교회의 지도자에게 직접 물을 수도 있지만 남편에게 물으라는 것입니다. 이는 남편의 주관 아래 자신을 두는 것입니다. 동시에 자신의 남편을 세워주는 길입니다. 가장으로서 주어진 직무를 바르게 수행하도록 돕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대답하지 못할 정도의 물음이라면 남편은 교회의 장로나 지도자들에게 가서 배워서 대답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갖추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말씀이 고린도교회에서 나지도 않았고 그들에게만 내린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36절). 바울 사도의 가르침은 이전에 고린도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허용하였던 바와 상충하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 사도는 자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고 자신이 하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가르침은 그 당시에 다른 모든 교회에서 실천되고 있었던 것이기도 하였습니다(34절).
바울 사도는 자신의 가르침이 주님의 명령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37절). 그는 스스로를 예언자이거나 성령을 은사로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주장을 주님의 명령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단순히 그 당대의 여자들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남존여비나 남성 우월주의의 결과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성령을 은사로 받은 사람이라면 기꺼이 즐겁게 받아들일 주님의 명령이었습니다.
바울 사도의 글(고전 14:37)이 진리라면 그의 가르침과 다르게 말하는 성도는 예언자나 성령을 은사로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만약 그의 글을 남존여비 사상의 결과물로 이해하고 주장을 펼치는 이들의 생각이 옳다면 바울 사도의 그 글은 틀린 것입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 가르치는 사역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임에도 바울 사도의 글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성령님의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한 바울 사도의 글이 옳습니다.

딤전 2:11-15 이해
바울 사도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를 주관-지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가르친다는 것이 교회 내에서의 모든 가르침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제한을 가진 가르침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관-지배-하는 것에 대한 바른 이해도 필요합니다.
바울 사도는 곧 이어서 직분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감독직에 대해서 그리고 (안수)집사직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감독직은 전교회적으로 다스리는 직무와 가르치는 직무를 하는 직분입니다. (안수)집사직은 재정과 행정 사역을 하는 직분입니다. 집사직은 감독직과 함께 교회의 지도자 그룹에 해당되며 그들 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도들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집사직에는 여자가 있습니다(딤전 3:11). 헬라어로는 귀나이카스(명사, 목적격, 여성, 복수 - 여자들도)입니다. 이 단어에는 아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만 여기에서는 집사의 아내들로 번역될 수가 없습니다. 정동수 교수는 흠정역 성경 영역본에서 'their wives'로 번역하였는데, 이는 오역입니다. 소유격이 아니기에 ‘그들의’라는 개념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집사의 아내들을 언급할 이유도 없습니다. 앞의 감독직에서 그들의 아내들을 언급하지 않았는데, 집사직에서 언급할 이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이어지는 직분에 대한 가르침에서 집사직이 여자에게 허용되었음을 말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앞에서 금지시킨 ‘가르치는’ 것이 제한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교회 내의 모든 가르침에서 여자를 제외시키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특정한 경우를 염두에 두고서 가르치는 것을 금지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관-지배-를 세상적인 관점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지배는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아내와 생각이 다를 때에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확신 하에 상대방에게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켰다고 할 때에 그것은 주관-지배-입니다. 이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표현으로는 다스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다스림이 내용 면에서 옳았느냐 잘못되었느냐는 차후의 문제입니다.

바울 사도는 여자가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 제한적으로 금지하고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금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창조와 타락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후에 여자(하와)가 지음을 받습니다. 아담이 하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런데 뱀이 하와에게 다가와서 거짓으로 유혹하였습니다. 하와는 아담이 옆에 있음에도(창 3:6) 자신의 생각-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움-을 따라 따먹습니다. 아담에게 주어서 먹게 하였습니다. 하와가 자신의 의사를 아담에게 관철시킨 것입니다. 바로 주관-지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을 다스림의 주체로 삼으셨기에 하와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시고 회복의 역사를 행하셨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회복되었습니다. 회복이란 하나님의 창조 때의 의도대로 돌아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남편이 아내를 주관-지배-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사람들이기에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는 여자가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을 지니고 정숙하게 살면 아이를 낳는 일로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딤전 2:15). "여자가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을 지니고 정숙하게 살면." 이 말은 남자를 주관하였던 하와와 다르게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바를 따라 생활하는 것을 다양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여자가 금지된 바를 넘어서 가르치거나 남자를 주관하지 않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이를 낳는 일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결혼하게 하심의 중요한 한 이유로 삼고 계신 언약의 계승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입니다. 자자손손 언약이 계승되도록 하는 것이 자녀를 낳는다는 것의 한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범죄로 인한 심판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피하고 싶은 일이기도 합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고통 때문에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그것이 인간의 범죄에 대한 심판으로 인한 것임을 알기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이 여자로 태어났다는 사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여자로 태어나게 하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게 고통이 있지만 하나님의 뜻 안에 거하는 것이 결혼한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여성이 결혼하고서는 불가피한 상황이 아님에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악행입니다. 아이를 낳는 일은 고통이 있지만 하나님 뜻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영원한 구원은 순종함으로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히 5:9).

이어서 직분에 대하여 교훈하는데 감독직이 먼저 언급됩니다. 그 요건에는 어떤 은사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자가 나오지도 않습니다. 한 아내의 남편이라는 요건은 어떻게 이해하든지 간에 가장이어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는 다른 직분에 비하여 감독직이 더 특별해서가 아닙니다. 여자들이 열등해서도 아닙니다. 그런 것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사람들에게 있어야 하는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주관하고 지배하여 이루어진 첫 범죄 때와는 달리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질서가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일 뿐입니다. 가정에서는 남편이 주관자로 세움을 입어 그 역할을 감당하고 교회에서는 남자가 감독이 되어서 교회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결론
바울 사도가 제 2의 모세가 아님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바로 그 바울 사도가 공적 예배에서 계시의 전달로서 오늘날의 설교와 같은 예언과 방언 하는 것을 금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율법일까요? 아닙니다. 주님의 명령입니다. 바로 그 바울 사도가 집사직은 여자에게 허용되었음을 말하면서도 감독직은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율법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사랑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여러 모양으로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받아들이는 교리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음에도 자신들의 전통이기에 고수하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시대 조류에 편승하여서 성경이 금하고 있는 것도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말하고 가르치며 그 위에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2008-05-28 08: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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